2007/06/30 17:54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이혼하자는 아내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편안했다. 오래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담담할 것이었다. 아내의 요청에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부탁이 있다고 말했다.

“한 오백만원이 필요해. 집이랑 앞으로 나올 연금, 그런 것은 당신의 뜻대로 해. 필요하다면 각서같은 것도 써줄 수도 있어. 여기서 많이 생각해 보았어. 그런 것들이 이제 나에게는 필요없을 것 같아. 그러나 지금은 오백만원이 필요해.”

삼사주 후면, 서울에 올라갈 것이고, 이혼서류나 그런 것들은 그때 정리하자고 했다.

아내는 가방에서 봉투 두개를 꺼냈다.

“하나는 그 여자의 여권서류야. 또 하나는 혹시 몰라서 준비해 온 돈이야. 물론 오백만원은 따로 준비해 둘께.”

그것을 받고 아내에게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절까지 하다니 정말 모르는 사람 같아.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뭔데?”
“날 사랑하기는 한거야?”

우리는 국도의 버스정류장 쪽으로 올라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여름이 시들어가는 냄새가 마른 아스팔트에서 피어올랐다.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어. 우리가 스무살이던 4월, 단발머리의 당신이 서관 언덕을 올라오던 그 순간부터, 아직까지, 단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어. 사랑이 영원하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

만으로 노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마당에서 볼 때보다 더욱 장엄했고 늦은 여름에 타들어가던 내륙, 저 너머로 식어가는 어둠이 더 멀리까지 바라보였다. 아내의 얼굴에도 노을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 놈의 사랑이 영원히 스무살의 그 소녀에게 머물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 소녀는 이제 없어. 그러니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당신의 말은 잔인해. 연속극 주인공이 하는 말처럼 그럴듯한 대사야. 마치 내가 오면 말해주려고 준비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일리가 있기는 해. 스무살이기에는 우린 너무 늙어버렸지?”
“그런 것 같아.”
“저 아가씨를 월남으로 보내고 나선 어떻게 할건데?”
“하루 하루 살아가겠지.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잖아. 당신이나 나나...”

읍내로 가는 버스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럼 잘 가.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는 하지마. 언젠가는 못난 아버지에 대해서 알겠지만 말이야.”

아내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른 아내는 창 밖의 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아내는 삐친 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고집스럽게 버스 앞 쪽을 응시했다. 눈물을 씹어 삼키는 지, 그녀의 입가가 깊게 주름져 있었다.

“울지마. 정말 미안해.” 떠나가는 버스의 뒷창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한동안 망연히 서 있던 나는 땅거미가 지자, 주저앉듯 언덕을 내려갔다. 아잉이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눈물이 보였다.

“또 우리 아가씨가 울었나 보네?”
“아저씨 가 버릴까 무서웠어요. 그리고 부인한테 자꾸 미안했어요. 아잉은 나빠요. 아저씨를 보내줬어야 했어요. 하지만 아저씨 안 오니까 무서웠어요.”

그날 밤, 아잉은 밤새도록 내 팔을 잡고 잤다. 아침에는 팔과 어깨가 쑤셨다. 일어나 아잉이 잠든 한쪽 구석에서 여권신청서를 쓰고, 아내가 준 돈을 세어보았다. 백만원이었다.

일어나 아침을 하고, 장사를 나가려는 아잉을 잡아 세우고 읍내로 가자고 했다. 아잉에게 전에 사준 옷을 입으라고 했다. 옷을 갈아입은 아잉은 정말 스물이 갓 지난 처녀 같았다. 그녀의 몸은 하늘하늘 했다.

읍내의 우체국으로 가서, 아잉의 싸인을 받아 등기로 서류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사진관으로 가서 함께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내가 너무 늙고 허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아잉이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잉을 데리고 옷집에 들어가 원피스를 샀고, 쌘달을 하나 샀다. 서울로 올라갈 때 입을 만한 나의 옷가지도 샀다. 삼십이만원이 들었다.

놀란 아잉에게 아내가 돈을 주었다고 했다. 돈은 많으니까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관도 가고, ㄹ에 들어가 햄버거와 콜라도 마셨다. 책방에 들러 책을 몇권 샀다. 마지막으로 시장에 들어가 찬거리와 갈비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 갈비를 굽고 함께 소주를 마셨다. 술이 약한 아잉은 몇 잔에 취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입에 갈비를 넣어 주었다. 아잉은 고기를 입에 담은 채 웅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다 웃곤 했다. 그런 아잉을 보면서 나는 행복했고 또 슬펐다.

넘기는 술잔 사이로 텅빈 거실을 홀로 지켜야 할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그래서 자꾸 술을 마셨다.

서울에서 여권과 비행기표가 내려왔고, 서울로 올라가야 할 날이 다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이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다. 팔월의 끝이라 아직 대지는 자글자글 타고 있는데, 가을은 눈치없이 여기저기 듬성거리며 다가왔다. 연약한 꽃대가 하늘을 향해 활짝 얼굴을 편 꽃 무게를 견디지 못해 코스모스는 주책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의 코스모스는 늘 쓸쓸해 보였다.

“아저씨 뭔 일 있어요?” 아잉이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아저씨 말 없어요. 요즘 아잉에게 아무 말 안해요.”
“떠날 때가 됐어.”
“누가요? 아저씨 떠날 거예요?” 금새 아잉의 눈에 눈물이 감돌았다.
“아니, 아니야. 아잉이 갈 때가 된거야. 이젠 고향으로 가야지.”
“농담 말아요. 아잉한테 농담하면 아저씨 나빠요.”하며 방긋 웃었다.

아잉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비행기표와 여권을 보여주었다.

비행기표를 받아든 아잉은 울었다. 무엇 때문에 우는 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늘 여자의 울음을 알지 못했다. 좋아서 우는지, 헤어져서 우는지, 고마워서 우는지, 그냥 슬퍼서 우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울지 말라며, 달래도 달래도, 울었다. 품에 안아도 가슴 속에서 쿨쩍거리며 울었다.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울음에 겨워 또 울었다.

저녁이 되자 퉁퉁 부은 얼굴을 훔치며, 아잉은 저녁을 지었다. 그녀의 음식솜씨는 늘 형편없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상을 물리고 나자,

“그럼 언제가요?”
“내일.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야 해.”

아잉은 맥없이 티브이를 보고 난 후, 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2007/06/30 17:54에 旅인...face
2007/06/30 17:54 2007/06/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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