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1 14:05 : 황홀한 밥그릇

때때로 富나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열망이나, 맑은 날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거대한 석조건물, 궁궐들을 바라보며 경탄하기보다, 낮은 지붕과 좁은 골목 밑, 손바닥만한 햇볕 외에는 하루종일 그림자로 뒤덮힌 가난한 생활들에 대하여 소리없이 열광해 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어렸을 적 누나나 형, 동생 모두가 적산가옥의 처마 밑에 깃든 그늘 속에서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할 때에서 부터, 변두리 개천 가의 하꼬방을 지나 등하교를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아직까지도, 나는 가난의 의미와 실체를 모른다.

부유함과 가난함 그리고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가늠하기 이전에 거기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어떤 生이라는 것들의 은밀한 내력(內歷)이 궁금했고 가슴 아팠다.

그런 내력과 가슴 아픔은 결코 재어볼 수도 없고, 말(言)로 풀어내기엔 하고 싶은 말보다 한숨이 많을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 키높이의 스레트와 루핑 지붕 위로 저녁 노을이 내려앉고, 서너뼘 너비의 골목을 뒤덮던 김치찌개 냄새와 깡통을 차며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구 뒤섞이면, 죽지 않고 끝끝내 살아가야 만 하는 '삶의 불가해함'*고작 내가 분석해낸 삶의 불가해함이란 '삶 = 어떤 인간 x 어떤 생활'이라는 불특정의 제곱에 해당되는 것으로 어떤의 제곱은 결국 보편과 개별을 넘어 실존의 불가해함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슴이 들떴다. 아마 그때는 불가해함을 풀어내기만 하면 세상의 온갖 진실과 진리의 두께를 꿰뚫을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세상에 대한 의혹을 풀지 못하고 늘 불가해함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의 위대함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비굴하다는 것과 천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 처절함을 신뢰했다. '처세와 돈이면 다'라는 단순명료함과 지혜와 올바름으로 이끄는 잠언이 나를 단 한번도 매료시킨 적이 없으며, 어리석고 우발적인 존재이며 그럭저럭 가난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것이 경부선 상행선을 타고 오다 저녁이 되고 마침내 어둠의 지평을 맞이하게 된 어느 지점, 막막한 어둠 저 편 너머에 등불이 켜진 외로운 창문 하나를 발견했을 때, 아무런 연고없이 불빛을 따라 내 가슴으로 전해지던 그 아픔의 정체였을지도 모른다.

2012/03/01 14:05에 旅인...face
2012/03/01 14:05 2012/03/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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