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9 13:34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잠에서 깨어나 한참동안 생각한 후에야 3시간도 자지 못했다는 것을 간신히 알았다. 머리가 흐리멍텅하다.

3월 26일 21시 45분, 상해 푸동(浦東)공항에서 남쪽을 향하여 이륙한 비행기는 내륙을 가로질러 3월 27일 00시 55분, 호치민 공항에 착륙한다. 차이나이스턴에어라인의 좁아터진 경제석에서 4시간 10분 동안 꼼짝 못하고 보낸 탓에 퉁퉁 부은 발이 구두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다.

네온사인도 없는 남국의 밤은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에 조용히 무르익고 있다. 가난한 공항청사를 벗어나자 달콤한 여름 열기가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어둠에 잠긴 이 도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란 아주 머나먼 옛날의 풍문일 뿐이다. 1969~1970년 즈음, 월남전에 참전한 외삼촌과 아저씨들에게 편지를 보내던 시절의 이야기 수준을 절대 넘지 못한다.

그러니까 도시의 외곽, 평원의 밀림 위로 번개불처럼 번쩍하고 포탄이 터진 한참 후에나 펑하고 야포가 터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데, 미군이 무상지원한 무기를 월맹군에 팔아먹은 부패한 고위관료와 군장성들이 젊은 아가씨를 옆에 끼고 향락의 밤을 보내는 소돔과 고모라같은 도시라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자 차도 없고 야트막한 건물들로 도시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때때로 밤의 그늘 밑으로 불란서풍보다는 서반아풍의 건물 윤곽이 들어오곤 했다.

하루가 끝나가거나 마악 시작하려는 이 시각, 예전에는 사이공(柴棍)이라고 불리웠지만, 1975년 4월 30일 월맹군에 함락된 이후 호치민(胡志明)시가 된 시내는, 골목의 어둠 속에서 두 남자가 나즈막히 속삭이고 있는 모양처럼 은밀하고 조용하다.

호텔방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두시였다. 서울은 새벽 네시, 조만간 깨어날 시간이었다. 피로에 절은 식은 땀을 씻어내고 침대 위로 몸을 쏟아부었을 때가 두시 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여섯시였다. 중국 시간에 셋팅이 된 아이폰은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호텔의 시간은 여섯시였으며 서울 시간으로 환산하자면 여덟시다.

그렇게 한동안 계산한 후에야 세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서울시각은 여덟시,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커튼을 열었다.

창 밖으로 도시는 이미 하루가 밝아올 준비가 되어있었다.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잠겨있다.

호텔의 대각선 방향 아래로 강이 흐르고 있다. 남국의 강답게 범람할 듯 꽉 들어차서 물과 뭍의 구분이 모호한 강, 게다가 물빛이 대지의 빛깔인 황토빛이며, 흐르지 않고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강이다.

우크깍까! 욱끄까까!

열대의 새인지, 포유류인지 모를 짐승이 강 너머 평원 어디에선가 운 것 같았다. 더 멀리에서는 코끼리가 긴 숨으로 울어댈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소리 탓인지 새벽빛은 밀려가고 명랑한 아침 빛이 도시와 평원으로 내습하기 시작했다.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 곳곳, 건물의 벽마다 아침빛이 맺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건물의 밑은 아직도 새벽의 어둠 탓에 어두웠다.

릭샤를 끄는 베트남인이 "헤이 젠트르맨...... 싸이공 리버...... 휘프티인 미니트......" 하며 나를 쫓아다닌다. 간신히 그를 물리치고 강 가에 다다랐을 때, 어제에 그토록 조용하던 도로는 출근하는 오토바이들로 넘쳐났다. 오토바이들이 파도처럼 횡단보도로 덮쳐왔고 요리조리 오토바이를 피하면서 간신히 강변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강이 깊다. 강변에는 2000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 20ft 콘테이너 2000개를 실을 수 있는 배 : 2만Ton급)짜리의 배가 접안해 있다. 강은 찰랑대서 가슴높이처럼 느껴진다. 숨을 쉬면 강물이 허파로 밀려들듯 하다.

황토빛의 수면 위로 나뭇가지며, 풀들이 떠다닌다. 어디에선 온 지 알 수 없는 강물은 100km를 더가서 붕따우 쪽 해변에 닿는다고 한다. 거기가 야자수 위로 십자성이 뜬다는 남지나해이다.

아잉(부 란 아잉)의 집은 이 곳 호치민에서 남서쪽 150Km 떨어진 빈롱(Vinh Long)의 티엔강(Song Tien) 가에 있다고 한다. 아잉이 잘 살고 있는지 가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체류하는 시간은 22시간 40분으로 제한되어 있고, 이미 6시간 가량은 소모했다.

또 이 곳에서 30 여Km가 떨어진 동나이에 있는 논 트랙 공업구에 가서 주제 발표와 함께 회의를 하고 다시 호치민시로 돌아와 곤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녀자다)이 먹었다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11시 35분발 야간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미친 출장질이다.

나는 이 짧고도 미친 출장질 속에서,

회사라는 게젤샤프트 속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다시 만났고, 도강선으로 강을 건너고 베트콩(Viet Cong: Viet Nam Cong San 즉 월남공산)의 후예들이 살아가는 길거리의 남루와 그 가난함 속에 깃든 '사람사는 느낌'을 오랫만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골의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넘쳤고, 먹고 살기 위하여 길 가로 점포를 내놓고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점포를 보았다. 손님이 오지 않아도, 기다림 만으로도, 자신에게 할애된 삶의 일부를 덜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장에 도착했고 주제발표와 회의가 끝난 오후 4시, 공장의 본관 건물 밖으로 나와 남국의 하루가 식어가는 광경을 마주했다.

오후 4시였지만 하루가 저물고 저녁이 오는 모습이 뚜렸했다. 낮의 열기 속에서 먼지가 연기처럼 평야 위로 피어오르고, 먼지 속에서 오후의 해가 흐릿한 빛을 뿌리며 서쪽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공장의 80m 높은 첨탑 위에서 본 남부 베트남의 지평선은 배운 것과는 달리 직선이 아니었다. 시선이 닿는 곳까지 컴파스로 그린 둥그런 원의 지평선이다. 그런 지평선 위로 해가 고도를 낮추며 야금야금 지고 있다. 언덕은 물론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 평야는 아득하게 넓어서 고요했다.

탑에서 내려와 다른 사무동으로 갔을 때, 퇴근 무렵이었다. 하늘은 밝았지만, 이미 낮의 열기는 식어가고 있었다.

그때 직원들이 공을 차는 모습이 보였다. 한무리의 직원들은 통근버스를 타기 위하여 정문 쪽으로 걸어가고, 기숙사에 기거하는 직원들은 공장 앞 화단의 나무 그늘 밑의 벤치나 경계석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하루가 가는 모습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인생이란 찬란하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몰가치하며, 모래처럼 무의미한 하루 하루들 일 뿐이라는 사실이 문득 나를 안도케 했고, 슬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껴안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루한 삶의 한 구석에서 인생이라는 미친듯한 열정의 한 자락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열망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짜피 무의미를 살아가는 이 나날들은 미친 지랄이기 때문이다. 찬란해도, 남루해도, 이 미친 지랄을 탓할 수도, 길 가에 버려둘 수도 없으며 단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껴안고 갈 수 밖에...

...20110327일에 대하여

20110329

2012/03/29 13:34에 旅인...face
2012/03/29 13:34 2012/03/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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