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6 21:31 : 벌레먹은 하루
Beatrice

구스타프 도레 作 천국편, 제3곡, 단테와 베아트리체, 피카르다 도나티, 코스탄차

나에게 천국이란 그런 곳이다. 빈곤한 나의 상상력은 결코 화엄적이거나 선다씽적일 수 없고, 오히려 알레프적인 지옥에 가까울 뿐이다. 천국을 상상 만해도 나는 늘 지옥을 맞이한다.

어머니 : 너 교회 가지 않으면 죽어서 천국 못간다
나 : 천국 가 봤자 기독교인들 뿐인데, 거길 가느니 차라리 지옥엘 가겠습니다.

천국의 끝나지 않는 열락(엑스타시), 천국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결정체처럼 맺혀있는 영원한 미소, 시기나 질투 그리고 탐욕이 없을 뿐 아니라 가슴에는 타인에 대한 이타심으로 가득차 있지만, 온정을 베풀 불쌍하거나 비참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는 가혹한 모순, 배도 고프지 않아서 먹고 싶은 음식도 없을 뿐 아니라, 애닲아하거나 그리워할 사람도 없으며, 끝나지 않는 性적 황홀에 빠져 있어서 누구를 사랑할 염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 상황의 지속.

너무 행복해서 아무 재미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가혹한 조건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공상에 접어들게 되면, 지복이란... 바로 무간지옥이라는 느낌이, 내 가슴을 저며들고 너무 쓰라려서 더 이상 천국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게 만들고 만다.

천국을 희망하는 그 종교적이고도 음란한 상상력으로 부터 엘레아 학파의 불생(不生)·불멸(不滅)하고 유일(唯一 : 시간과 공간 속에 꽉차 있어서 타자가 들어설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하며 무형(無形 : 안과 밖이 없고 부동하기 때문에 형체가 없음)한 존재자(存在者 : 이 존재자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너와 나가 없음)를 떠올리게 된다.

천국이란 이러한 기괴한 존재자에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존재자의 속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뿐 아니라, 나와 너는 사라지고, 나는 단일하고 유일한 존재에 포섭된다. 내가 없으면서도 나인 이 세계는 토끼가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제논적 파라독스로 점철되어 있다. 아니 그 보다는 지금은 시간의 비가역성에 따라 어제가 되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금으로 멈춰 서있고 여기는 저기와의 위상적 차별이 없다. 즉 이 존재자는 거대하고 영원히 죽어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천국의 장엄함과 침묵과 부동 앞에서 차라리 어둡고 음란한 지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유혹을 나는 어쩌지 못한다.




주) 신곡을 읽으면 연옥에 대한 표현은 구체적이지만, 천국에 다다르면 단테의 상상력은 거의 한계에 다다른다. 그 상상력의 한계를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통해서 해소하려고 한다는 것을 간신히 알 수 있다. 구스타프 도레의 그림을 보면 나는 천국과 연옥의 차이를 거의 구분할 수 없다. 저 위의 그림에서 천국에 다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기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천국의 실상인지도 모른다.

2012/09/26 21:31에 旅인...face
2012/09/26 21:31 2012/09/2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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