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반중력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렸던 시스티나 예배실의 한쪽 벽면에 ‘최후의 심판’을 그린다. 이 그림의 주제는 추락이다. 예수는 존엄한 지배자(Maestas Domini)로 연옥의 한 가운데서 자비로우신 성모 마리아를 자신의 뒤에 두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한다. 심판의 결과, 천국으로 올라가던지 아니면 구름 아래로 떨어져내리는데, 추락하지 않기 위하여 아직 떨어지지 않은 사람을 붙잡는 등 필사적이다.

승천을 한다고 해도 기쁨에 찬 모습은 아니다. 그림의 인물들은 두려움에 찌들었고 처참하다. 신 앞에서 무죄한 자가 없기 때문인지…

하여튼 천국에 대한 상상은 서양이든 동양이든 늘 빈곤한 법이다.

이 그림처럼 연옥을 중심으로 천국과 지옥이 상하로 나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지옥과 천국은 서로 반대이며 좌와 우로 나뉘어 있었을 뿐, 위와 아래라는 수직적 위계를 갖지 않았다고 한다.

상하로 나뉘게 된 것은 단테의 ‘신곡’ 탓일지도 모른다. 신의 오른편과 왼편이라는 좌우 도상 개념을 바닥의 인페르노(지옥)에서 푸르가토리오(연옥)를 거쳐 파라디소(천국)로 가는 수직 상승의 여정으로 바꿔 놓았다.

PURGATORIO

연옥(煉獄 : Purgatorio)은 12세기 즈음에 만들어진 장소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기독교와 예수가 없었던 시기의 철인들이나 기독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예수가 아닌 이성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선인들을 지옥으로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푸르가토리오를 건설한다. 위대한 고대의 철인들과 선인들을 ‘깨끗하게 하는 불(ignis purgatorius)’로 연단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건설된 푸르가토리오는 13세기에 들어서 공의회 등을 통하여 전폭적으로 지지되며, 이단을 탄압하는 수단이 된다.

알리기에리 단테는 1308년에서 죽기 전인 1321년 사이에 신곡을 씀으로써 바닥인 인페르노 나인에서 부터 열개의 하늘까지 명계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1336년 베네딕도 12세의 교서를 통하여 ‘연옥’은 로마 가톨릭의 공식 교리가 된다.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시절, 교황 레오 10세(1513~1521)는 전쟁비용 조달과 성전 건축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마련키 위하여 엄청난 면죄부를 팔던 중 마르틴 루터로부터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비난하는 95개조에 달하는 논박문(1517년)을 받게 된다.

이런 종교개혁의 와중에 레오 10세의 후임 교황인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심판’을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빛과 어둠

교부철학에 자양분을 공급한 플로티누스는 다른 한 편에서 볼 때, 이단이다. 여호와를 일자(一者)로 보면 로마 가톨릭적인 우주의 질서와 부합한다. 하지만 빛과 이성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악과 어둠에 물들어 있는 물질인 세상을 창조한 神인 데미우르고스(조물주)가 진짜 신인가 하는 질문에서는 그렇지 않다. 조물주란 하급신일 뿐이며, 진짜 神은 따로 있다는 그노시스적인 결론에 빠져들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빨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은 성 이냐시오 로욜라 성당의 본진의 아치형 천장에 프레스코로 그려진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광’을 바라보면 알 수 있다. 안드레아 포초는 미켈란젤로의 승천과 추락의 장면을 벽면에 그린 것이 아니라 천장에 그림으로써 천장 밖에 보이는 하늘보다 더 아득한 하늘이 빛 속에 소실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바로크에 와서 절정을 이룬 트롱프뢰유 1Trompe l’oeil : 눈 속임, 실물을 착각할 정도로 정교한 그림 기법 중 하나인 소토 인 수 2sotto in su : 이탈리아어로 아래에서 위로 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최후의 심판’처럼 무시무시한 시간이 아니라 축제처럼 보이며 이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자신마저 빛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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