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4 15:52 : 무너진 도서관에서

언어라는 낱말에서 언(言)과 어(語)의 차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말(言)과 말(語)이 치달리고 섞여서 서로 가슴에 사무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말(言語)이라는 것은 알지만, 말씀 '언'과 말씀 '어'로 나눌 때, 이 말과 저 말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

Ulm/Diagram

군대의 계급장을 닮은 이 문양들은 울름(Ulm)문자이다. 텐샨산맥과 카프카즈산맥의 준령을 넘으면 힌두쿠쉬 산맥의 만년설에서 발원하여 파미르 고원을 지나고 카라쿰 사막의 북단을 달려 아랄해에 몸을 푸는 아무 다리아 강이 있다. 문자들은 강의 북쪽 유역을 따라 동물의 골편이나 도기의 파편, 때로는 돌 위에 새겨진 상태로 발견되곤 한다. 유목민과 대상들이 지나는 길목에 있기에 방향이나 이수(里數)를 표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정작 커다란 돌이나 바위 등에 새겨진 것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동물의 뼈나 도기, 조약돌 등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정의 표시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한다.

골편들의 조각으로 방사성 탄소연대를 측정해보면, 문자들이 새겨진 때는 AD200년에서 BC1500년까지 소급된다. 이 지역에 쿠샨왕조가 들어설 때까지 이천년 가까이 이 문자가 쓰여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무 다리아 강 유역은 실크로드의 서역 교차점인 사마르칸트와 가깝다. 사마르칸트에서 서쪽으로 가는 대상들은 강의 중류를 가로질러 바그다드로 갔고 페르시아의 상인들은 강을 건너와 산맥을 넘고 넘어 카슈가르, 돈황을 지나 중국으로 갔다. 대상들이 지나는 길은 늘 군사들이 이동하는 길은 포개지는 법이다. 피가 모래바람에 엉켜붙은 냄새를 풍기며 창과 갑옷이 부딪혀 철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사들이 동서남북으로 지쳐 지나면, 먼 곳의 민족과 부족들이 밀려왔다. 이곳에 서식하던 종족들은 밀려나거나, 흘러든 다른 종족 틈에서 피를 섞고 간신히 살아남거나 아니면 멸종하고 말았다. 종족이 사라지면 강 유역으로 다른 부족이 깃들었다. 그래서 이곳의 역사란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민족에 대한 내력이 아니라, 바람처럼 이 곳을 스쳐지났던 부족과 민족 그리고 사라진 왕국의 기록일 따름이다.

여기는 세상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긴 하지만, 집결된 물자와 문명이 다시 세상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문자가 이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발견될 뿐 아니라, 이천년동안 프로토 타잎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글자를 쓰던 종족이 강의 유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악착같이 살다가 사멸되었다고 설명은 할 수 있다. 반면 이천년동안 문양을 유지한 까닭을 밝혀내기란 어렵다. 이에 대하여 언어학자들은 문자였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문양은 임의적이고 작자의 기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개인의 창의성 혹은 변덕에 입각하여 변천과 변모를 거듭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언어와 관련된 낱말이나 문자, 문법의 경우는 무늬와 궤를 달리한다.

세종께서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 탓에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만드셨지만, 일단 조선백성이 한글을 받아들이면 임금이라도 철자를 함부로 바꿀 수 없다. 바꾼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한글이 아니며, 그 사회에서 통용될 수가 없다. 임금마저도 한글의 질서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꽃'을 '달'이라고 바꿔 부르는 소소한 변경도 연쇄반응을 일으켜 언어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킨다.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린 '달'은 대신할 이름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개'가 되든지 해야 한다. 그러면 '개'는 '발'이 되던지 '똥'이 되든지 해야 한다. 이러한 연쇄반응 속에서 언어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고 바벨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언어의 구조 탓에 한번 받아들여진 낱말이나 문자는 바꿀 수 없다. 배(과일), 배(복부), 배(선박) 처럼 다른 의미를 지녔음에도 구분이 쉬운 다른 낱말로 바꾸지 못하고 같은 소리가 나는 다른 단어 위에 난잡하게 얹어 쓸 수 밖에 없는 것은 과일이던, 복부이던, 선박이던 사회가 배를 배라고 받아들였던 탓이다. 누군가 먹는 '배'를 사과와 비슷한 '사배'라고 바꿀지라도, 그 사회가 배를 사배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탓에 결국 의사소통이 안되어 '배'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다.

사회와 언어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언어와 관련된 음운, 낱말, 문자 등 어떠한 변화에 대해서도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길항한다. 언어라는 율법을 범할 경우 다른사람들과 말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사고 또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다. 이런 탓에 사람들은 언어와 관련된 약속과 질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심층 의식에 깔린 변화에 대한 강한 저항과 억지력이야말로 울름문자의 문양이 이천년 가까이 유지된 이유이자, 문양이 아닌 문자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단서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특이한 점은 고대문자들이 다수의 문자가 기록된 문서 형태로 출토되는 반면, 이 문자는 한 글자, 간헐적으로 두 글자 정도 새겨진 상태로 발견된다. 이 점이 의사소통이나 기록을 위한 수단인 문자로 인식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탓에 지역의 학자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다. 출토된 지역 또한 실크로드에 위치하여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대상들이 숫자를 셈하거나 이정을 표시하는 수단 정도로 이해하고 그냥 방치했고 이들 문자는 점차 사라졌던 것이다.

갑골문이 발굴되고 한참이 지난 1960년대에 들어서야 동물의 골편에 새겨진 이 문양들을 보고 혹시 제의나 주문 혹은 점사를 위한 문자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지역의 학계에서 수집을 시작했고, 년대측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발견된 숫자가 너무 적고 발굴되어도, 한 두 글자 즉 한 두 음절에 불과한 관계 상, 언어를 전달하기 위한 문자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이 지역의 학자인 이슬롬 무하메도프(Ислам Атаевич мухаммедов : 1906~1983)는 1970년대말부터 산재된 문양들을 모으고 문양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였다. 430여개의 문양들의 모양을 분석한 후, 이들은 모두 27개의 문양으로 수렴한다고 보고한다. 산재된 문양들이 가진 질서나 규칙들을 볼 때, 단순한 문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문자가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소리나 의미를 모르지만, 문자들이 세개의 음소 혹은 의미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Phoneme/Diagram

하지만 무하메도프의 노고는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울름문자의 운명처럼 잊혀지고 만다.

1960년대 이후 소련은 아무 다리아 강과 북쪽의 시르 다리아 강 사이의 삼각지 유역에 면화생산을 늘리고 밀 생산의 증강을 위하여 대규모 관개를 시작한다. 건조한 스텝지역으로 강물이 흘러들면서 하류로 내려갈수록 강은 바닥을 드러냈고, 아랄해로 유입되기 전에 허연 소금을 남기고 강은 말라버렸다. 관개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나고 21세기로 접어들자 세계 4번째의 내륙호인 아랄해의 수량은 예전의 10%로 줄었고, 마른호수는 사막이 됐다. 호수 바닥에 말라붙은 염분은 바람에 날려 300km 반경의 인근 지역 위로 소금비가 내리곤 했다.

이와 같은 환경문제와 더불어 1990년대초 러시아에서 독립한 인근 국가들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아무 다리아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구스(힌두쿠쉬) 온 땅을 적시는 고대의 기혼(Gihon) 강으로 추정된다는 19세기 아랍학자들의 주장을 떠올리는 한편, 이 지역의 선주 문명의 흔적이라며 무하메도프 문자에 다시 주목한다.

타쉬켄트 대학의 교수 알렉산드르 칸(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Кан : 1957~)은 이 문자를 울름문자라고 부르며, 인류의 원시모어인 바벨문자일 수도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소리도 재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소리에서 각 음소를 뽑아내 조합을 하면 될 것이라고 하며, 명백히 표음문자의 원칙을 따를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가설과 가설을 엮어 진짜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학자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논문을 만들 자질은 부족할 지 몰라도, 우리의 황우석 교수처럼 사회가 바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적인 자질은 풍부했다.

문자는 극동에서 보여주는 예와 같이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에서 '여서(女書)문자'나 우리나라에서 한문을 소리나는 대로 읽어 '이(伊), 가(可), 은 는(隱)' 등 토씨를 다는 '순독구결(順讀口訣)'과 같은 [표어문자]로 진화하고 다시 일본의 가나와 같은 [음절문자]로 진화한다. 시간적으로는 일본의 가나에 비하여 월등히 앞서지만, 소리의 단위가 자음과 모음의 음소단위로 내려가기 때문에 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는 [음소문자]는 셈어계의 조어인 원 시나이문자(proto-sinaitic script : BC18세기)에서 시작하여 우가리트문자, 원시가나안문자, 페니키아문자를 거쳐 아람문자, 히브리문자, 아랍문자로 발전한다. 이들은 모두는 [아브자드(abjad)], 즉 음소에 모음이 없는 자음문자이다. 그리스에서는 자음문자인 페니키아 문자를 도입하여 모음을 삽입함으로써 자음과 모음이 구비된 음소문자, [알파벳(alphabet)]을 만든다. 이외에도 인도, 티벳, 타이, 에디오피아 등에서 쓰는 자음에 딸림모음이 붙어있어서 음절문자의 속성을 가지면서 다른 모음을 덧붙일수 있는 음소문자의 속성을 함께 갖는 [아부기다(Abugida)]가 있다. 이러한 문자는 한글처럼 자음과 모음 둘 이상 모여야 하나의 음절을 만들며, 초 중 종성 등 조음위치가 있는 [자질문자]까지 진화되어 왔다.

알렉산드르 칸은 이러한 문자의 진화와 계통과는 별개로 울름문자는 음소문자로 세계 유일의 모음문자로 추정된다고 한다. 칸은 모음 만으로 내는 소리는 울음과 같을 것이라며 잠정적으로 무하메도프 문자라고 불리던 것을 아예 울름(Ulm)문자라고 이름 짓는다.

우리의 울음과 비슷한 울름이라고 한 것은 칸이 고려인의 3세인 탓이다. 그는 진주 강씨라고 한다.

울음에서 인류의 모어인 바벨어가 생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고대에 기혼강이었던 아무 다리아 강변에 살았던 선주민들이 글자로 고대의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통시적인 입장에서 보면, 언어가 변화에 보수적인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음운의 변화를 초래하고, 글자에 변형을 가져옴은 물론, 의미에 굴절이 가게 한다. 이런 점에서 물경 1700년 이상 자형의 변화가 없이 프로토 타잎을 유지한다는 것에는 문자를 넘어선 다른 요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서 이 지역에 있었던 비의종교의 신명문자(神名文字)가 아닐까 한다. 신은 유일하며 영원해야 하므로 그의 이름 또한 영원하며 변화될 수가 없다는 준엄한 믿음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유태교의 신비주의자들인 카발리스트들은 통칭 여호와라고 부르는 신명문자, 테트라그라마톤(YHWH = יהוה)으로 쉠 하메보라쉬(Shem ha-Mephorash = שם המפורש) 즉 신의 상세한 이름 72가지를 조합해 낸다. 각각의 신의 이름은 고유하고 독특한 에너지 파장으로 치유의 영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이천년 전 아무 다리아 강변에 살던 무당들도 자신들의 신명문자로 27개의 신의 상세한 이름을 기억하고 조심스럽게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글자를 만들어내고, 뼈나 돌맹이에 새겨 품에 품고 병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후한의 허신이 쓴 설문해자에는 "단순하게 말하는 것을 '言'이라 하고, 논란하는 것을 '語'이라고 한다"고 말과 말을 풀이한다. 설문해자주를 쓴 청나라 때 단옥재는 허신의 설에 덧붙여 "단서를 내놓는 것을 일러 '言'이라 하고, 답하고 논란하는 것을 일러 '語'라고 한다”고 했고 '言'은 자기의 일을 말하는 것이고, 남을 위해 말하는 것을 '語'라 한다.'는 다른 출전을 거론한다.

言의 갑골문 등 고문를 보면 䇂+口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 어느 싸구려 자전에는 䇂이 심장의 모습이라며 言은 마음을 입으로 내는 것이라고 멋대로 풀이한다. 하지만 고문 건(䇂)은 허물이다. 높은 곳(|)에 홀로 서(立)있는 모습이다. 타인에 대한 죄가 아니라 자신에 머무는 잘못, 허물이다. 허물이 있을 경우 외롭고 수치스러우며 서럽다. 허물이 입 위에서 입을 짖누른다. 그래서 입은 아아하며 소리를 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나는 言과 語의 차이는 의사소통의 心 → 言 → 語 → 悟 → 心 으로 이해하고 싶다. 마음(心)이 울면(言), 말(語)이 되는데, 그를 알아 들으면(悟), 마음(心)이 울린다.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語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울음 言, 말씀 語라고 풀고 싶다.

문자란 글(文)과 글(字)이 얽혀 단어가 되고 타인에게 의미가 되어 다가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글과 글이 비벼져야 낱말이 되고 문장이 된다. 글이 홀로 서 있을 때, 그것은 울음일 뿐, 말이 되지 못한다.

울음의 기록인 울름문자는 말이 되지 못한 울음인 탓에 문자가 될 수 없고 문(文)이거나 자(字)일 뿐이다. 그래서 Ulm문 혹은 Ulm자로 불러야 마땅하다.

아무 다리아 강 가에서 살았던 고대의 사람들이 바람결에 흐르는 소리를 잡아 문자 속에 의미를 정박시키고 먼 곳과 뒷 날에 올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 울음을 가둬 둔 연고를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울음으로 부르던 신이 어떤 신이었는지 또한 나는 알 수가 없다.

알기 위해서는 다만 그 울음이나 신의 이름을 다시 살려내야만 할 일이다.

2013/01/04 15:52에 旅인...face
2013/01/04 15:52 2013/01/0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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