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शून्यता;nothingness

शून्यता

Sunya : Empty = 空
Sunyata : Emptiness = 空性

범본의 불경에는 Sunya와 Sunyata는 다 함께 空으로 번역된다.

Rupa(色)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단지 물리학적 술어와 언어적인 영역을 떠나있어 경험할 수는 있으나 말로 할 수 없는(不立文字) 상태를 말한다.

용수보살의 팔불게로 수냐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겠으나, 그것보다 반야심경에 있는 구절을 억지춘향으로 물리학적인 언어로 풀어보면,

不生不滅 : 시간(생멸)에 제한되지 않으며
不垢不淨 : 존재(염정)처럼 인과나 연기에 얽히지 않고
不增不減 : 공간(증감)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수냐란 존재하지 않는다(emptiness)는 뜻이 아니라, mgs(meter, gram, second) 시스템을 초월해 있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서는 존재도 비존재도 무의미하다.

따라서 현상세계의 언어(依言眞如)로는 말할  수 없어 空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냐 즉 空을 시간도, 공간도,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을 초월한 그 무엇이라고 강변할 수 밖에 없다. 강변할 수 조차 없어 반야심경에서는 “아니다 아니다”(neti neti)라고 말씀하신다.

참고> 나가르주나(용수보살)의 팔불게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 수냐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면 : 프라즈나파라미타의 노래의 미주

<다른 곳에서 받아온 글>

空이란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서 般若經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데, 이 말은 自性(svabhava)과 實體(dravya) 또는 本性(prakrti)이나 自我(atman) 등과 같은 인간들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인연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생겨난 緣起的인 존재에 불과함으로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空의 원어 범어 Sunya를 舜若로 음역하여 ‘부풀어오름’ 또는 ‘속이 텅 빈’ ‘공허한 것’ 등으로 해석하며, ‘무엇인가 없는 상태’ 또는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반야경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불교에서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空의 의미를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을 空思想이라 하고 공사상을 주장하는 논조를 空論(Sunyavada)이라고 한다.

용수는 中論 500偈를 지어 인도에서 대승불교를 크게 일으켰는데, 그가 지은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緣起하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을 우리는 空性이라고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假名이며, 그것은 中道 그 자체이다.’ 라고 하여 반야경이 설하고 있는 空 역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서 공사상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는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因과 緣의 상호관계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일 뿐 고정 불변하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空인 것이며, 自性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망상으로 그것은 戱論(Prapanca)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中論의 중심 내용을 ‘緣起 = 無自性 = 空’으로 연결 지울 수 있다고 하였다.

용수는 중론 제24장에서 ‘여러 부처님은 二諦에 의거해서 법을 설하시는데, 첫째는 世俗諦이고, 둘째는 第一義諦이다. 이 이제의 구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 깊고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한다. 세속제에 의하지 않으면 제일의제는 설해지지 않고 제일의제에 의하지 않으면 열반은 얻을 수 없다’고 설하고 있다.

용수가 二諦說에서 말하는 世俗諦란 緣起와 空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하는 세간의 언어습관을 말하는 것으로 만약 연기와 공을 부정하게 되면 세간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第一義諦 또는 勝義諦는 연기와 공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얻어지는 최고의 진실된 진리로서 바로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