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장난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죽음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이 장엄한 것이다.

불란서 문화관에서 ‘금지된 장난’을 오랜 전에 보았다.

실버스크린이라고 쓰여 있는 영화에서 찬란한 흑백을 보았다. 미류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부딪혀 어둠과 밝음이 현란하게 교차하는 그 풍경을 총천연색으로는 표현할 수 없으리라.

불어에 영어자막으로 상영된 16미리 ‘금지된 장난’의 내용을 거의 30년이 지난 이 싯점에서 기억할 수는 없다.

폐허가 된 성당의 뒷 뜰에 죽은 것들과 죽인 것들을 위하여 아이들이 마련한 동물들의 무덤.

.
.
.
.

그 위로 부셔진 성당의 지붕과 담 사이를 지나 섭씨 24도의 은색 햇빛이 시속 4키로의 속도로 내려 앉는다.

.
.
와아~

관객들은 찬란한 무덤의 정경에, 크롬색의 양광 속으로 광속으로 몰려갔다가 신음을 지르며 폭발했던 것이다.

빛의 찬란함은 죽음과 어둠 때문이었건만, 감탄과 기억의 앙금에는 무덤 위에 떨어져 내리는 양광, 성당의 벽에 부딪혀 먼지처럼 비산하는 빛 무더기만 있을 뿐이다.

.
.
.

그런데 왜 제목이 금지된 장난이었을까?

참고> Les Jeux Interdits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