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곳을 모르다

멈출 곳을 모르다.

그러니까 2001년 1월 28일에 한국, 우리나라로 나는 돌아왔다. 그리고 2004년 4월 8일 저녁 7시 5분, 꽝쪼우廣州에서 九廣列車를 탐으로써 떠나왔던 곳, 홍콩으로 돌아간다.

열차가 출발하자, 일몰 속으로 침몰하는 꽝쪼우의 거대한 시가지가 보인다. 두시간이면 구룡에 도착할 것이다.

희뿌옇게 바래가는 형광등 밑에 승객들은 객석에 몸을 밀어넣고 조용히 속삭이거나 잠을 청했다. 꽝뚱어(Cantonese)라는 익숙한 소리였지만, 이국의 언어는 이방인에게는 무의미성으로 소음이 되고 형체가 없는 장벽이 되곤 했다. 언어로 하여 내가 그들에게 들어설 여지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장벽 밖에서 고립되고 드디어 고독을 맛본다.

그래! 내가 이방인이 되고, 고독을 중심으로 모든 것과 연관을 맺어왔던 항구로 기항하기 위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차는 동관을 지나고 선쩐을 지나 인적이 보이지 않는 변경의 역, 로우羅湖를 지난다. 열차는 속력을 줄였고 어둠이 깔린 신계로 접어들었다. 저 불빛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건데 익숙한 것인가? 불빛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과 도로와 간판들을 애타게 쳐다보았다.

열차는 종점인 홍험에 도착했다.

세관에서 나의 여권을 보고 언제 홍콩을 떠났느냐고 묻는다.

“삼년전.”
“다시 살려고 왔는가?”
“아니다. 하루 만 머물꺼다.”

그래, 홍콩에서 머물도록 주어진 시간은 단지 스무시간 남짓이다. 그동안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잠을 자고, 거리를 배회하고, 식사를 하고, 떠나야 한다.

택시는 크로스하버 터널을 지나 홍콩으로 들어선다. 완짜이에 있는 호텔에서 짐을 풀고 로비에서 기다리는 지인들과 함께 짜페~도에 있는 술집으로 간다. 아! 얼마나 진부하였던 일상이었던가?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는 식당과 술집들. 남국의 습기가 배인 좁다란 도로의 후덥지근한 냄새가 속옷에 배인 땀 냄새와도 같은 뒷골목의 친숙함이다. 불현듯 어딘가로 오랫동안 출장을 간 끝에 지금에야 자신의 동네로 돌아왔다는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객지와 사는 곳 중 어디가 돌아갈 곳인지 이정을 잡지 못하고 모호함 속에 빠져 들었다. 완짜이灣仔란 ‘포구에 사는 놈’이란 뜻 아닌가? 결국 어디론가 떠나거나 다시 돌아오기 위한 장소가 여기이고, 결국 세계 속으로 열려있는 동시에 선창의 뒷골목과 같이 허무하기도 하고, 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 퇴폐적인 감상을 던져주기도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알고 지내던 마마를 만났다. 그녀는 굵은 쌍꺼플 수술을 해서 처음에는 혹시나 했다. 그녀도 나를 잊은 것 같았다. 나를 아느냐고 묻자, “오랜 만이예요” 했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적인 응변에서 나온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요…?’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잊혀진 者라는 것에 서운함을 느꼈으나, 내가 아는 한 나는 지극히 평범하며, 아무런 성격을 지니지도 아니했고, 노래도 부르지 못하고, 조용히 술만 마시는 사람이기에, 조만간에 잊혀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녀의 오랜만이라는 상투적인 용어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래도 서운함을 지우기는 어려웠는 데, 아가씨들의 접대 매너가 나쁘다고 자리를 바꾸자고 하여 그들을 따라나섰다. 새로 간 술집은 내가 있을 때는 없던 곳이었다.

깡마른 마담이 빨간 니트에 참빛으로 빗은 듯 머리를 총총히 뒤로 넘기고 나타났다. 그리고 아가씨들이 왔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

이방인들은 멀리 떠나서 고향사람을 만나도 이방인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 표피적인 대화가 지닌 감정없는 잡담이란 허무하며 또한 매력적이다.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를 어루만지지만, 다음 날 태양이 뜨면 속만 쓰릴 뿐이며, 무엇을 했고 무슨 말을 했을까하고 기억을 더듬을 필요조차 없다.

마담은 자신의 오빠와 가족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항상 그랬듯이 그들은 결국 나에게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식구가 많네요”하고, 약간의 감탄섞인 응대를 하면서 마담이 지닌 나른한 고독의 맞은 편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을 안다. 이 곳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허구의 존재로 꾸며간다. 자신들의 실체의 누더기가 멀리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꾸미거나, 아니면 말할 필요가 없거나 추억하기에 버거운 것들을 매장한 채, 때로는 우아하게, 또는 교만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곳의 많은 한국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저어한다. 그 곳에 돌아갈 때, 자신을 속여가면서 까지 보려고 하지 않던 실체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술김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보니, 호텔에 치약이 없다. 게다가 생수마저 제공되지 않았다. 지척거리며 호텔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부활절 휴일인 관계 상 금요일 9시이나 거리는 한가했다. 우기인 탓에 날씨가 우중충했다. 완짜이와 깜종金鐘 사이에 있는 호텔은 한달동안이나 살았고, 사무실이 그 곁인 퍼시픽 팰리스였기에 길은 집 앞 골목처럼 환했다. 전차가 흑백영화처럼 지나가고 왼짝 핸들의 차가 거꾸로 달리는 도로를 따라갔다. 습기에 퇴락해가는 건물은 아직도 무너지지 않은 채 있다, 이 심드렁한 거리를 얼마나 많이 거닐었던가 ? 이 거리를 거닐어도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나 또한 그들로부터 저만큼 떨어져 있었다. 항구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사람들을 이 곳에 깃들게 하고 인사도 없이 떠나게 하는 것이다.

친구가 왔다. 그의 차를 타고 퀸스로드와 쎈트럴을 지나 서부해저터널을 지나 구룡의 서편, 야우마테이로 들어선다. 이 곳은 손문이 민국 건설을 위한 초기 활동을 하던 곳인데, 청과물 시장이 있어 널판지와 함석등으로 만든 하꼬방이 보인다. 친구의 사무실이 묘가(廟街)에 있어 차를 야우마테이 경찰서 옆에 세웠다. 폴리스스토리로 유명한 이 경찰서를 나는 처음보았다. 영화에서 성룡이 자신을 묘가 출신이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야우마테이가 홍콩의 조직폭력배들의 근거지라는 점을 생각할 때, 묘가 출신이라는 것은 강력계 형사로는 알아준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묘가의 중심이 되는 틴하우묘(天后廟)를 지나 찬팅(餐廳)으로 들어갔다. 나는 월남국수(牛卵河), 친구는 꽁짜이면(公仔麵)을 시켰다, 값싼 국수와 국물에서 우러나는 콤콤한 냄새를 음미하며 먹었다.

친구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창가에는 문죽(文竹)이 놓여 있고, 빅토리아 하버와 홍콩의 전경이 펼쳐보인다. 사무실을 둘러본 후 우리는 홍콩의 기본법과 대만사태, 그리고 한국의 총선과 보혁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아시아의 창 가에서 제국주의 열강이 남겨준 숙명과 같은 파행성에 대해서, 후기 자본주의적인 술어로 논단했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한국의 경기와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었다.

얌차(飮茶)집으로 가서 딤썸(點心)을 먹었다. 메뉴판에 깨알같이 쓰여있는 요리를 보면서 나는 조금 흥분이 되었다. 독해하기 어려운 요리명은 얌차집에 홀로 가기를 꺼리게 했지만, 친구는 인생의 50%를 중국어를 썼으며, 중국, 대만, 홍콩을 합쳐 이십년을 중화권에 살아왔기에 내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주곤 했다. 남방 미나리를 생선젓국에 데친 통초이와 닭발, 새우나 조개로 만든 각종 교자와 만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홍콩 거리를 천천히 거날며 남은 시간을 음미하고자 했으나 공항으로 가야할 시간이 됐다. 구룡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공항특급열차를 타고 홍콩의 뒷면을 돌아, 바다 속에서 아파트와 집들이 솟아오른듯한 동네, 칭이(靑衣)를 지나 란타우섬에 접어들었다. 한 쪽에는 높다란 산과 아열대의 숲이 보이고 해협의 건너편으로는 골든코스트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풍광이 소실하려는 지점에 공항이 있는 것이다.

체크 인을 하고 세관을 지나면 나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계에 서게 될 것이며,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티켓에 쓰여져 있는 곳으로 갈 것이며, 그 후에는 또 어디론가 갈 것이다. 그래서 어디를 다녀왔다고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서 쓰는 기행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지 그 멈출 곳을 알지 못하고 바람에 흩날릴 뿐……

그 날 밤 대련에 도착했다. 황량한 밤길을 달려 낯선 숙소의 침대에 몸을 던졌고, 다음날 업무를 보고 돌아와 낮잠을 잔 후에 어스름 때 광장으로 나아갔다. 거기에 광장이 있음을 알았다기 보다 골목이 있었고, 촌티나는 상점과 술집을 따라가다 노래소리를 들었다. 노래소리가 시작하는 곳에 광장이 있었다. 광장의 앞에서 한동안 멈춰섰다. 그리고 나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광장의 무수한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어갔다. 밤이 폭포처럼 내게로 쏟아졌다. 외로웠다. 그것은 웅장했고 광활한 것이었다.

2004년 4월 8일에서 4월 11일 중 어느 시점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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