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점심약속이 있냐고 물었다.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그 작자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갈 곳이 있는데요.”라며 회사문을 나섰다. 갈 곳이 막연했다. 신촌으로 가 볼까하고 지하철로 내려가 보니 6호선은 신촌을 지나지 않는다. 노선표에 '합정'이라는 지명이 보였다. 지하철을 탔고 합정에 내렸다. 겨울의 찬 공기가 지하 승강장까지 폭풍처럼 몰려왔다. 차디찬 바람을 뚫고 합정동 사거리로 올라섰다. 서울에서 가장 낮은 그 곳은, 예전처럼 갈 곳 없는 햇빛이 넘쳐나고 있다.

그 빛을 맞이하자, 합정동에 잘못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빛에는 여전히 금빛이 감돌았다. 그 빛 속에서, 지금의 현실로는 다가갈 수 없는,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올라가던 각 지점마다 빛과 향기로 버무려진 아련한 동화의 한 귀퉁이를 만날 것이고, 결국 애상이나 침묵 속에 빠져들리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그 곳에 살면서 나는 빛의 이야기를 읽어 왔다. 이른 봄 마당 앞 목련 꽃잎에 부딪히는 고양이 털 같은 햇빛과 가을 오후 치자향기에 물들던 빛의 고즈넉함과 오월 아침 장미넝쿨에 맺힌 이슬 위로 구르던 싱그러운 빛의 향기, 그런 것들을...

하지만 빛 중의 빛은, 제이한강교를 건너온 오후 햇살을 뒤따라온 노을이다. 노을은 어느 날이면 순교자의 묘지 위를 붉게 물들였고, 때론 한강의 끝자락에서 서울을 새까맣게 지워가면서 불타곤 했다.

시장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시장 건물 주변은 전처럼 허접쓰레기가 뒹굴고 있다. 건물의 일부분은 줄무늬 차양이 걸려 제법 현대식이었으나, 미장이 제대로 안되어 울퉁불퉁한 벽과 어두컴컴한 통로 사이에 놓인 좌판, 수지가 벗겨져 나간 방수포에 덮힌 물건들, 그리고 바닥에 흐르고 있는 구정물은 여전히 엉성하고 바라보는 사람을 거북하게 했다. 게다가 외벽은 하늘색 유성페인트로 칠해져 있어 예전의 옅은 초록색에 비하여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건물을 보자, 내부에 있던 음습한 복도와 다방 등이 흑백사진처럼 떠올랐다. 그 속에서 잠시 배회했던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나의 단조롭던 일상과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그곳에서 나는 하찮은 존재였다. 누구나 나에게 반말을 했고, 간혹 다방으로 올라가 커피라도 한 잔 하려고 앉으면, 심심한 레지가 내 옆에 퍼질러 앉아 “예쁘장하게 생겼네” 하며 나의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내 가슴에 머리를 파묻곤 했다. 그러면 깊이없는 욕정이 피어오르곤 했다. 나는 가슴 속에 깃든 수줍음을 가리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부패한 것들을 다 아는 양했고 애써 너저분한 욕지거리를 해대곤 했다. 타락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시절에는 구원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타락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육신은 고결하며, 정신은 부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육신은 땀흘리고 아프며, 사람을 감싸안거나 눈물을 흘리지만, 정신은 추악했다. 자신의 욕망에 대하여 떳떳하지 못하며,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아름다운 것들이 끊임없이 가슴 안에서 불타오르고 있으면서도, 밖으로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가슴으로 아파하거나 기뻐하게 못하면서도, 하염없이 자신의 비굴과 부정직함을 변명하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나의 영혼이라는 것조차 사악하여 정신을 구제할 수는 없었다. 단지 순결한 육신의 타락을 통하여, 마침내 죄에 대한 명증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면, 눈물에 가득한 참회가 가능하며, 구원을 얻으리라는 복음이 줄곧 나를 지배해 왔었던 것 같다. 결코 돌아올 수 없는 탕자가 되더라도 죄인이 되고 싶었다.

그 건물을 배회하던 젊은이들과 어울려 그들의 우울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한끼의 절실함 때문에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단순한 가를 배울 수 있었다.

배고파 본 적이 없고, 표백되어 시시껄렁한 나의 생활을 차마 그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의 생활은 오히려 그들에 대한 모독이었기에,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들은 조용한 나를 좋아했다. 이 놈의 세상이 천박하기에 아귀다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신들의 나날들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천박함과 야비함 속에서, 돈 비린내 나는 세상 건너다가 늘 넘어지지만, 식구들의 얼굴을 보듬으며 그래도 일어서야 한다는 그들의 땀내를 맡을 수 밖에 없었다. 가족과 여자들에 대한 미움과 사랑으로 비벼진 그들의 눈물범벅을 보았다. 돼지갈비를 함께 뒤집으며, 그들이 양아치이거나 잡놈들에 불과하다해도 나는 순박하고 가난한 영혼을 만났던 것이다.

우정을 간직하고 싶었으나, 나 같은 샌님에게는 자신들의 세계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 어깨를 툭 한번 치고 껄껄 웃으며 그들은 시장통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나는 합정동의 노을에 젖어 있었다.

시장 골목이 끝나고 도로가 확 트이는 곳에 다다르자, 순대국밥 집이 보였다. 점심을 사 먹고, 다시 집을 향해 걸었다. 골목에는 삼사층짜리 건물들이 집 사이에 비집고 들어섰고, 옛집 앞의 공터 건너편에는 아스팔트가 깔려있다. 옛집에는 건물이 들어섰다. 아이들이 놀지 않는 공터에는 겨울 햇빛만 뒹굴고 있다.

쓸쓸할 때면 강변으로 나갔다. 절두산의 벼랑 밑, 강변의 뻘과 모래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오염된 강물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서울의 모든 곳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흘러가는 강물에서 도시의 아득한 침묵을 들을 수 있었다. 강변의 뻘을 밟으며 서성이거나,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강둑과 양평동 쪽의 건물 사이로 하늘을 마주하면, 시간이 푸른색으로, 때론 어둠이 점점이 박힌 주황빛으로 밀려가거나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변의 언덕으로 올라가면, 강을 따라 흐르는 낮은 대지와 구릉들이 보였고 하늘이 야트막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 풍경을 마주하면 머리 속이 먹먹하여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변에서 맞이하는 노을이나, 순교자 무덤의 미루나무에 걸친 하루의 마지막 빛을 보면, 죽음 앞에 선 나날들이 막연하게 다가오곤 했다. 아무런 결론은 없었지만, 인생의 찬란함은 노을과 풍경 속에 맡겨두고, 단순함과 고요 속에 깃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줄곧 나를 지배했다.

합정동은 빛과 그림자를 베풀고, 나를 매료시켰지만, 나이가 들자 어린 마음에 입맞춤해 줄 여자를 갈증했던 것 같다. 막연히 여자들이야 말로 일상 속에 깃든 잔잔한 우울과 미성숙을 걸러내 주고, 삶을 다채롭게 하거나 혹은 탐닉의 끝에 절망마저도 맛보게 해주리라고 생각했다. 갈증에 비하여 나는 외로움이나 용기가 없었다. 그저 심심한 우정 속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바깥세상은 나의 세계와는 달리 찬란했고, 온갖 소란과 염문 속에 휘날리고 있었다.

주춤주춤 사랑을 찾아 세상으로 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우정보다 사랑이 강렬한 향기를 가지며, 생활은 무의미함으로 사랑과 진리, 온갖 가치 있는 것들을 무화시켜 버린다는 것을 몰랐다. 한번도 절정에 이르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져, 동화의 높은 세계에서 육신의 갈망 속에 매몰되다, 마침내 시끄러운 시장바닥에 내려앉는 것이 인생이며, 재미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로부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지금의 인생이 재미없는 것에 반하여, 나의 사랑 놀음이 찬란하거나 짜릿한 것 또한 아니었다. 반 장짜리 종이 위에 만났던 여자의 이름을 써 놓고 나면, 쓸 것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 시에 적힌 것처럼 거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마저 지워진, 만났던 여자들이 알았더라면 뒤집어져 버릴 그런 것이었고, 그것이 사랑이라면, 모독이 되는 그따위의 사랑 놀음이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거나, 지나치게 통속적이어서 차라리 신파가 되던지, 자신을 잃고 하염없이 흘러가거나, 또는 나 자바바라~ 콧소리를 내지르는 유치함도 불사해야 했다. 병신같이 나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다. 또 그만큼 비겁했다.

시랑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불륜임을 투명하게 알면서도, 저들이 못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함께 껴안고 사랑하지 못한 채, 나를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들을 짝사랑했을 뿐이다. 사랑이 축복이기보다 하나의 저주였던 셈이다.

차디찬 강바람을 맞으며 양화대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예전에는 웅덩이와 잡초를 헤치고 걸었어야 했던 길들이 이제는 아스팔트와 철제 난간으로 치장되어 걷기에 편했으나 육중한 다리며, 인공건조물들이 하늘을 대각선으로 잘라내고 있었다. 그 건조물의 아래 공터와 둑에서 강물과 하늘을 쳐다보곤 했으나 이제 하늘은 더 이상 여유가 없고, 구조물 사이로 노을이 지는 것은 성산대교가 또 가로막을 것이었다.

어린 시절이 끝나고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 생활을 잠깐 해보니 모든 것이 뻔했다. 자신의 능력을 팔겠다고 들어갔는 데. 웬걸 몸을 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 다음에는 정신을 팔고 마지막으로는 영혼마저 팔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빠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강 가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장엄한 낙조도, 대지의 그림자와 냄새도, 강물의 흐름도, 잎새 사이로 일렁이는 빛도, 강 건너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도시의 모습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대지와 풍경들과 맺어왔던 오래된 우의가 이미 사라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수가 났고 집이 침수가 되었다. 우리는 언덕 위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일상의 업무로 그만 합정동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뻔한 회사 생활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고,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그 어른이라는 것도 성찰과 관조에서 비롯하기 보다 욕구를 채우지 못한 권태와 포기에서 나오는 자조적인 성숙일 뿐이었다. 그렇게 젊음이 가버렸음에도 아무 것도 추억하거나 후회할 것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

한동안 걷다 보니 길 건너로 망원동이 보였고 준희빈 모텔과 홀트 아동복지회가 나타났다. 잠깐 동안의 겨울 산보도 끝날 무렵이 되었다. 신촌으로 가는 도로는 연희동 로터리까지 뜨악하게 열려있었다. 차가운 날씨에도 도로 위로 내려앉는 빛은 곧 봄이 올 것처럼 따스해 보였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거리의 이정표에 양화대교라고 쓰여 있었다.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다리는 제이한강교였다. 주유소 건너편, 여자 친구를 만나곤 했던 카페는 도로가 되어버렸다. 좀 더 거닐고 싶었지만, 점심시간은 끝나 있었고, 옷깃에 스미는 바람이 차가웠다. 어린 시절이 깃들었던 그 곳을 떠나려 하자 아쉬움이 남았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모든 고통들이 세월 속에 정제되고 여과된 고요한 슬픔과 함께 그윽했던 시간들의 빛깔이 가슴 속 그득히 차올랐다. 차분한 단조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여운 속으로 다시 합정동을 채우던 그 빛이 스몄다.

그러자 차분한 마음으로 회사로, 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땅 밑으로 하염없이 내려갔다. 좁은 통로를 타고 찬 바람이 등을 떠밀었다. 바람이 멈춘 승강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두운 심연과 같은 터널 속에서 생활 속으로 나를 잡아가기 위하여 경고음을 울리며 지하철이 서서히 진입했다.

이제 회사로 돌아가고, 집으로 가고, 마누라가 오늘 일은 어땠어요 물을 것이고, 그러면 절대로 합정동에 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 일도 없고, 어제와 같고, 그런데 배가 고프다고 말할 것이고, 밥을 먹고, 아이들에게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소리치고, 마누라의 눈치를 살피며 담배를 피워 물고, 불현듯 옛 애인을 그리워하듯 합정동을 그리워할 것이다.

2002. 6월에 그 해의 2월을 쓰다…

2004/05/23 14:02에 旅인...face
2004/05/23 14:02 2004/05/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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