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28 19:58 : 언덕 위의 고물 書店

갑자기 홍콩에 출장을 갔다. 출장을 가는 내가 보아도 출장 갈 이유가 뚜렷한 것은 아니다. 시황이 이상하기 때문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럴듯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었다.

출장 전날은 장인어른의 기일이라 제사를 마치고 처갓집에서 돌아왔을 때, 열두시였다. 잠이 부족했지만,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야 홍콩발 8시 45분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우리 집은 서울의 가장 동쪽이지만, 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노을이 끝나는 서울의 서쪽 너머로 아득하게 멀었다.

흐리멍텅한 의식을 추스르고 공항버스를 탔을 때, 세면도구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짙은 두께의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던 오전 6시는, 이제는 붉고 극명한 아침 햇살로 밝았다. 전조등을 켜고 택시들만 스믈거리며 다니던 거리의 모습이 뚜렷해지자, 공항까지 가는 길인 올림픽대로를 이른 출근 차량이 덮쳐 지체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가는 길에 댄 브라운의 <Deception Point>를 읽다가 잠깐 졸았고, 공항에 닿았다.

7시 20분에 표를 끊고 서점으로 가보니 김훈의 신간, <강산무진>은 없다. 출국수속을 밟고, 어느 나라도 아닌 중간계(변경)로 들어가, 면세 담배 한 보루, 양주 한 병을 사고, 19번 게이트 쪽으로 갔다. 통로의 한 귀퉁이에 가판대가 보였다. 그 가판대의 서가 한편에 <강산무진>이 보였다.

책을 사고, 흡연실로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흡연실의 사람들이 담배피우는 모습은 애처롭고도 몽롱하다. 그들은 기나긴 운항시간을 자신의 흡연주기로 계산하며, 보다 많은 니코틴을 몸속으로 밀어 넣기 위하여, 필터가 타들어가도록 볼을 부풀려가면서 연기를 빨아댄다. 그들은 맞은 편의 사람을 쳐다보거나, 아니면 유리창 밖의 활주로 끝을 망연히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대부분 침묵 속에서 모자라는 산소를 아가미로 흡수하는 금붕어처럼 피운다.

담배를 피우며, 강산무진을 펼쳤다. 그리고 더 이상 Deception Point를 읽기를 포기했다. 그 후 비행기가 홍콩에 도착할 때까지 김훈의 글을 읽었다.

글이 재미있다기 보다, 홍콩에 도착한 후 고객들과 이국어로 소통할 대화가 모래알처럼 서걱이고 들떠있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영어로 된 책보다 우리 글로 된 강산무진을 읽었는지 모른다.

홍콩의 고객들이 내뱉는 까끌까끌한 단어들을 조합해가며 나름대로 시장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할 것이다. 시황은 생물과 같다. 고객들의 해석과 판단은 제각각일 것이고, 늘 꿈틀거리고 있어서 날 것으로 보고할 수는 없다. 시황을 잡아서 토막을 내고 양념을 곁들여 상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아야만 한다.

단편소설집인 강산무진의 주인공들은 색이 빠져 거의 반투명이 된 사람들이다. 삶이 실체가 없어서 그렇게 반투명일지도 모른다. 책의 주인공들은 마치 소외를 통하여 삶의 허무한 실체, 그 투명함에 합치되는 것 같고,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기 보다, 오히려 현란한 색으로 아로새겨진 세상에서 삶의 허무한 실체 속으로 스스로 망명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소외된 주인공들은 외롭고 위태롭기보다, 갯벌을 적시는 안개처럼 편안하고,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린 만큼 만족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강산무진에서 세상은 아득하게 멀고, 삶은 들끓지 않고 먼지처럼 차분하다.

그들이 오욕칠정으로 겹겹이 쌓여진 세상에서 밀려나, 삶의 끄트머리에서 서자, 마침내 풍경이 밀려오고, 그것은 아득하여 텅 빈 삶을 채우고 또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낱낱으로 쓰여진 김훈의 단편들은 소외라는 주제로 가지런하다. 주인공 대부분은 삶의 황혼으로 이끌려가는 오십대, 삶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불현듯 회사가 망하고 배우자가 죽고, 자신이 병들거나 한다. 그래서 문득 외롭지만, 육친의 정을 요구하기에는 다 큰 자식들은 제 살기에 바쁘다.

문득 깨달은 외로움이지만, 알고 보면 세월과 삶 속에 오랫동안 비벼진 것이고, 기대할 것은 없지만 지상과의 혈연은 여전하다. 그래서 찌그러진 세상의 한 쪽 구석에서 기어이 사는 것이다.

소규모 식품업체의 파산으로 택시기사가 되어 예전에 직원이자 살을 섞었던 여자를 자신의 택시로 배웅하며 모자라는 사납금을 고민해야 하는 사십대후반의 남자(배웅), 뇌암에 걸려 죽은 아내를 화장하고 연모하던 여직원의 사직서에 가차없이 싸인을 함으로써 더 이상 자신의 삶이 없이 회사 속으로 밀려난 오십대 후반의 중역(화장), 회사의 파산과 함께 식구를 외국으로 보내고, 회사를 정리한 후 등대의 임시관리직이 되는 55세의 중역(항로표지), 박사학위와 가정에 아무런 애착이 없으면서도 대학을 다니고 술집여자와 살림을 차리는 마흔이 넘은 후배(뼈), 강력범 범죄자를 단지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놓아줌으로써 파면되어 택시를 몰게 된 형사(고향의 그림자),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한 폐경기에 접어든 자매(언니의 폐경), 태어난 절에서 속세로 가서 복서가 된 승려(머나먼 속세), 아내와 이혼하고 간암에 걸려 사직하는 오십대 후반의 중역(강산무진).

김훈의 단편소설에 쓰여진 소외의 모습은 너무도 흔하여 이야기꺼리도 안되지만, 살면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모든 상황의 십분지 일 쯤은 될 것이다.

비행기는 시간이 한시간 쯤 주름져 서울에는 12시 20분인, 11시 20분에 첵랍콕에 덜커덕 랜딩을 했고, 나는 <항로표지> 부분을 다 읽고 책을 덮었다.

회사에서 나에게 더 이상 필요없으니, 이제 쉬라고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남편이 <일>이라는 구체적인 것을 초조나 계산기 아니면 이메일로 짜가면서 힘겹게 힘겹게 하루를 보내는 줄 안다. 나는 그냥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상사의 눈치를 한번 본 후 가방을 들고 지하철에 오른다. 그러면 묽은 하루가 철커덩거리며 회사가 있는 쪽으로 밀려나가곤 했고, 아침이면 집과의 혈연을 끊어지듯 저녁이면 회사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그러나 나는 집에 들어가면 피곤하다고 말했다.

비행기는 엔진을 헐떡거리며, 자신의 육중한 몸을 간신히 간신히 게이트에 연결된 헤치 쪽으로 밀고 갔고, 나는 책을 읽느라 잠을 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만약 집에서 쉰다면, 아내는 나의 느슨한 시간을 보며, 나를 미워하기 시작할 것 같다.

무엇을 할 것인가? 등대로 나도 가봐? 김훈의 소설에 나오는 등대를 생각했다. 그런 곳에 취직이 되고 안되는 것은 나의 상상이다. 그러나 등대로 가서 끝이 없어서 미동도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등대에 점등할 시간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무료할 것인가와. 파랑경보가 울리고 분노한 바다의 흰색 포말이 넘실댈 때의 두려움과, 죽음처럼 다가와 죽음처럼 사라질 여름날의 기나긴 노을을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떨쳐졌을 때, 내가 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띵하고 희미한 종소리가 났고, 서 있던 승객들은 통로를 따라 꾸역꾸역 홍콩으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날 고객과 외국어로 서걱이는 대화를 나눈 후, 지점 사람들과 저녁을 했다. 술을 먹자, 졸음이 깜빡깜빡 찾아왔다. 자고 싶었지만, 좀더 술을 먹고도 싶었다. 그래서 가라오케로 갔다. 젊은 언니는 친해지려고 한 말에 그만 삐져버렸고, 좀 나이가 든 여자가 내 옆에 앉았는 데, 노래를 불렀는 지 술을 먹었는 지를 기억할 수 없이 졸렸다.

나는 졸음에서 깨려고 했는 지 몰라도,

“상무님, 제가 보기에는 본사의 생각이 좀 좁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에서 장사를 해서 버는 돈을 푼돈입니다. 서울과 여기의 금리차가 0.5%만 나도, 그것을 반반만 갈라먹어도 그 금액은 큽니다. 사장이 생각하는 것은 일견 일리가 있지만 축소지향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네요.”

라고 지껄이고 있었다.

새벽 한시인가 두시에 가라오케를 나오자 비가 내렸는 지, 새벽까지 빛나는 네온들이 도로 위에 선지피처럼 흐르고 있었다.

4/26일 05시에서 4/27일 02시까지

참고> 강산무진

2006/04/28 19:58에 旅인...face
2006/04/28 19:58 2006/04/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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