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티스;Pistis

πίστις

Pistis

그리스어로 믿음, 신념을 뜻함

다소(Tarsus)의 바울이라는 사람의 편지(고린도전서)의 13장에 나오는 믿음(pistis), 소망(elpis), 사랑(agape) 중 하나를 뜻함.

νυνι δε μενει πίστις ελπις αγαπη τα τρια ταυτα μειζων δε τουτων η αγαπη

“And now faith, hope, and love abide, these three; and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사랑 대신 잔혹함 만 있었다.

피스티스는 믿음을 말한다. 피스티스의 대표자는 베드로이며, 그는 정교한 교리나 예수의 케리그마를 이론화하기에는 무력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생애와 사랑, 그리고 박애를 중심으로 전교를 시작하였으며, 그 자신이 신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신의 보혈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피스티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기독교는 교리보다는 조직에 치중하였으며, 그 강령이 단순하여 대중에 대한 어필이 쉬웠다. 또한 신을 알 수 없다는 강령 자체는 신과 인간의 계층구조를 보임으로써 황제와 신민은 같을 수 없다는 호국적인 이론을 제공하였다. 피스티스를 대변하는 오소독스파들은 결국 사도신경을 바탕으로 분파주의에 빠져있던 그노시스파들을 하나씩 각개격파함으로써 카톨릭 정교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사도신경 : 믿음의 잔혹 살벌한 칼날

<이것이>, <내가>, 혹은 <우리가> 옳고 착하다고 할 때, <저것과 그것은>, <너희와 그들은> 그르며 악한 것이 된다. 이것은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으로 그렇다. 우리가 말하는 진리와 선함은 논리적으로 설명되거나 계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와 선함과 같은 것은 우리의 편협하고 불합리한 것들로 가득한 삶의 체험들과 왜곡된 신념에 의하여 판단되는 하나의 가치일 뿐이다. 따라서 진리와 선함은 실체를 지니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인식의 지평이 넓혀지고 경험이 무르익으면서 성숙과 진화를 거듭해 나가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았다고 알려지던(사실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180년경 리용의 주교인 이레나이누스의 이단반박(Libros Quinque Adversus Haereses)이라는 방대한 글을 써서 이단을 극복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도신경의 전신에 해당되는 로마신조(Roman Symbol)라는 것이 소박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 Roman Symbol ]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and in Christ Jesus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born from the Holy Spirit and the Virgin Mary,
Who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and buried,
on the third day rose again from the dead,
ascended to heaven,
sits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whenc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hurch,
the remission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flesh
(the life everlasting)

여기에서 그들은 이단과 정통을 가리기 위하여 징표(Symbol)라는 말을 쓴다. 이것을 볼 때, 사도신경이란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믿지 않는 자>는 이단이며, 척결되어야 한다는 단죄의 칼날일 뿐이다.

313년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을 반포하여 기독교를 인정한 콘스탄티누스1세는 그 후 기독교 내부의 교리 상의 문제에 직간접으로 중재에 나서게 되었는 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유명한 판결이 내려진 325년의 니케아공의회(The Council of Nicaea: 1차 공의회)이다. 이 회의에서 에우세비우스의 주장대로 ‘동질’이라는 판결이 내려지고 니케아 신조(Creed of Nicaea)가 성립된다. 즉 공의회를 통하여 예수는 하나의 유한한 예언자적 지위에서 신으로서의 신격을 비준받게 된다. 또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유보되었던 성령 또한 동일한 신성을 가진다며, 성 삼위일체를 확정한다.

이로 하여 사도신경의 골조는 확정이 되고, 서방교회에 보급되어 미사 전례 절차에 삽입되었는데, 후일 루터와 칼뱅은 그것을 미사 전례에서 떼어내어 교리문답서에 넣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존중하게 되었는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내용은 2세기 후반 성립된 ‘로마신조’를 바탕으로 하여, 5~6세기경에 갈리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양차의 공의회에서 예수가 <신>이 아닌 <인간>으로 하나의 위대한 예언자로 판단되었다면, 그 후의 기독교는 어떠했을까?

정녕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통해서 판단했을까? 왜 예수는 <신>이 되었어야만 했을까?

지금의 기독교인들이란 사도신경을 바탕으로 한 편협한 <교회주의자>들일 뿐이다.

성경이란 텍스트도 사도신경을 넘어서 해석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수를 인간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주의자에 불과하다는 것은, 교회와 사제를 벗어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예수에 다가갈 수 없다는 그들 자신의 불행일 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극히 비극적인 역사적 현장을 그들은 늘 만들어 왔다는 것을 <진실로 진실로> 그들은 모른다.

교부 이레나이누스는 자신이 옳음 가운데 처해 있다며, <이단반박>을 짓고 그것으로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자들에게 테러를 가했으면서도, 자신들의 믿음에 가해지는 테러는 <박해>라고 했다.

전도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은 옳으며, 복을 주는 소식>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옳다>는 전제 하에서는 <저들이 알고 있고 믿는 것>은 늘 그릇된 것일 수 밖에 없다. 저들(이교도와 이단)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저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자신의 판단에 기초할 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앎과 믿음이 과연 <진리>인가 ?????????

애석하게도 교회에서는 그노시스(지식 또는 지혜)는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신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에서, 피스티스(믿음)에 의지하라고 한다. 기독교인에게는 단지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옳다>는 강령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인에게는 자신의 앎과 믿음이 과연 <진리>인가를 판단할 어떠한 장치도 없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150~222)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고 항변하지 않았던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폭력들을 <박해>라고 한다. 그러면 자신들이 이단과 이교도들에게 자행했던 테러를 무엇이라고 규정할 것인가? 그노시스파에 대한 피의 숙청에서 십자군 전쟁과 중세의 카타리파, 보고밀파 등 유사 기독교에 대한 로마교회의 가혹한 살상 등은 무엇이며, 근대와 현대에 남미와 흑인과 아시아와 중동에 자행한 테러들은 또 무엇인가?

사도신경이란… 결국 사악한 믿음의 칼날에 불과한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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