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9 14:56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1/A. 장미의 이유

앙겔루스 실레지우스는 “장미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 꽃이 피기 때문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단순한 받아들임, 신에게 꽃을 피울 아무 의지가 없고 다만 영원한 침묵 뿐이라는 그의 말이야말로 신비주의다.

사랑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일 때, 사랑은 신비롭다. 돈이나 외모 때문에 사랑을 한다면, 사랑은 합리적이다.

장미는 피고 사랑은 빠지고 볼 일이다.

2/A. 가을안개

포구의 방파제 안에는 안개가 꽉차 있었다. 바다 쪽에서 낀 해무는 아니었다. 안개는 내륙의 산골짜기에서 피어나 새벽 햇살를 타고 산능성이를 내려와 산과 바다 사이의 좁은 들을 채우고 포구의 방파제 안에 고였다. 방파제를 넘은 안개는 바다 위에서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방파제 끝에서 본 포구의 풍경은 그림자와 빛살이 안개 속에서 섞이고 중첩되면서 황토빛 위로 잿빛이 그물처럼 겹치고 스미는 가운데, 포구의 내해에 비친 황금빛 일광이 뒤섞이며 금빛 안개로 변했다. 빛들은 포구를 둘러싼 수협건물과 선창가를 따라 일이층 높이로 나란한 건어물상과 음식점들의 유리창들을 낮은 목소리로 두드려댔고 빛을 받은 유리들이 낮은 조도로 번쩍거리는 탓에 포구 전체가 빛으로 술렁대고 있었다. 포구 너머로는 차령산맥의 검은 끝자락이 내려앉고 있었고, 선창 앞으로는 어선들의 고물과 마스트 그리고 내용을 알 수 없는 깃발들이 서로 부비적거리며 그림자를 그렸고, 아침 햇빛을 머금은 낮은 안개 사이로 갈매기가 포구를 가로지르거나 선회하고 있었다.

물때가 아닌지 혹은 새벽 조업이 끝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선들이 뱃전을 부비적거리는 포구 안에서 어기적 어기적 어선 한척이 발통소리를 울리며 나온다. 배는 안개를 가르고 물살을 가르고 빛을 가르고 나타나 방파제를 지나고 등대를 지나 바다로 들어섰다. 가을이었다. 서해의 끝까지 아득하게 하늘은 멀었고 파랑이 이는 바다는 허연 포말이 토해냈다.

방파제 끝의 우체통처럼 생긴 빨간 등대의 뒷면으로 돌아가자, 하얀 분무기로 '수연을 따 먹었다'라고 커다랗게 스프레이칠이 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2013년 9월 16일. 기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3/A. 짬뽕

맹구(이창훈)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는 짬뽕"이라며 국민을 웃겼다. 짬뽕이, 웃기는 짬뽕이 되고 난 후, 유희경은 "짬뽕이란 단어는 어떻게 발음해도 슬퍼지지 않는다"고 생활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시를 쓴다. '슬플 때는 짬뽕을 먹지 아니한다'라고 식품위생법이 개정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자와 헤어진 사내가 짬뽕의 면발을 삼키다가 울던 오후가 있다.

4/A. 시트러스 향

시트러스 계열의 향기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하다. 여자가 달콤했던 것은 그녀의 로션에는 시트러스향이 들어 있었다. 헤어질 무렵이면 달콤한 향기는 미미해졌다. 사내는 하루가 지나고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게 된 탓에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가 준 레몬향이 감도는 사탕을 입에 넣으면 금새 미소가 떠오르곤 했다.

5/A. 여자와 또 여자

알고 있던 여자가, 한번도 알았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젊을 때와 달리 메마른 몸으로 입 가에 덜마른 슬픔을 지우며 중년의 여자는 웃고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변별해 낸다는 것은 현미경으로 분리해 내야 할 미시적인 것이라기 보다, 느낌의 차원이다. 개연성이라기 보다는 막연함에 가까운..., 일말의 막연함으로부터 우리는 확실함을 이끌어내게 된다.

6/A. 발신

비가 옵니다.
모두 퇴근한 10시 20분, 저는 여기 있습니다.
듣고 있는 음악은 ... 기억하나요? 좋아하시던 드뷔시의 것입니다.
25시 13분입니다. 적적하군요. 당신의 창에는 햇빛이 들고 있나요?

7/A. ATOPIA와 아무 것도 없는 촌 구석

아토피아(Atopia)는 국경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장소(τόπος)가 아니다(οὐ)라는 의미도 있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은 사전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촌 구석, 번거로운 일이 없는 자연의 낙토를 말한다. 장자의 응제왕편에는 여섯가지 끝(六極 : 상하와 사방 즉 공간이나 우주)을 벗어나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노닐겠다以出六極之外 而遊無何有之鄕 는 말이 나온다. 이는 공간 좌표 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노닥거릴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유토피아가 이상향이라면, 아토피아는 무하유지향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낱말들이 만들어진 때는 이천년이 넘었지만, 1984년 명명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개념에 근접해 있다. 데이터와 시계열의 디지털 신호가 구축해내는 광대한 우주에는 IP라는 별이 반짝인다. 132번 은하, 제 11구역의 제 8항성의 주위를 도는 5번째 행성에서 한 사내는 광막한 사이버 스페이스를 향하여... 이메일을 보내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트위터에 정부 비판을 한다.

무하유지향의 세계로 연장을 가진 실체나 물리량을 지닌 아날로그는 틈입할 수 없다. 이 세계는 단지 디지탈 미메시스(복제)만 존재한다.

정신이 이데아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사이버 세계가 가르쳐주는 것은 현실의 미메시스야말로 바로 정신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누추함과 일상의 지겨움 대신에 뽀샵된 복제물을 디지털의 공간에 투사한다. 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야누스적이다. 단일한 자아는 실명과 익명으로 분열된다. 모니터 바깥의 실명의 자아는 아토피아 속으로 스며든 익명의 자아를 부추겨 갖가지 사악한 짓을 자행토록 하거나 혹은 품위있는 위선자로 변신하게도 한다. 모니터 밖 현실의 자아야말로 억압되고 페르소나로 가장된 자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신이 조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익명의 자아야말로 억압되지 않은 탓에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가깝다. 아무튼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는 유인원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정신분열증을 즐기거나 다중인격화된다. 이러한 점이 실재와 미메시스(복제) 둘 중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하는 문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현실과 상상 사이는 내파(內破)된다. 상상은 등차적인 현실을 구축한다. 게임이라 여기고 함부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우리는 은밀한 사랑을 하거나, 채팅방을 열고 옷을 벗는다. 아토피아라는 존재하지 않는 대륙에서 혐오하는 것은 은밀함이며, 가려진 것이다. 은밀함은 처절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서 진실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헛 것이 참된 것을 만드는 때는 참된 것 역시 헛 것이요, 없음이 있는 것이 되는 곳에서는 있음 또한 없음이라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 고 홍루몽은 말한다.

2014/07/09 14:56에 旅인...face
2014/07/09 14:56 2014/07/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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