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9 11:44 : 황홀한 밥그릇

1.

잇빨을 뽑고 염증이 있으니 지어준 소염제와 항생제를 다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약을 다 먹고 난 삼일 후에도 입 안에는 아픔이 감돌았다. 전에 먹다 남었던 약을 먹으며 아픔을 삼켰다. 하지만 통증이 입 안 어디에서 반짝하고 일어나 어느 쪽으로 물결을 지으며 번져나가는 지를 알 수 없었다.

칫솔질에도 아프지 않았던 사라진 잇빨과 잇몸은 미지근한 수돗물에 화들짝 놀랐다. 잇빨을 닦고 치약을 행궈낸 양칫물에 뼈가 삭는듯한 아픔이 왈칵 쏟아졌고 한 5분간 통증은 목과 정수리 부분까지 번져나간 후 서서히 소멸되었다. 아픔의 끄트머리는 따스한 고요함과 서로 뒤섞이며 사라졌다.

블로그의 제목을 'adayof...Homo-Babiens'라고 지은 싯점부터 살(肉) 위에 돌(잇빨)이 자라고 박혀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괴한 일이며, 살에 돌이 끼어 있거나 돌 사이에 살이 섞여 있다는 것이 당연히 아플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서서히 알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머리를 굴리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科의 동물인 Homo sapiens sapiens이기 이전에 Homo Babiens, 밥(Bab)을 먹어야 하는(Babius) 동물(Babiens)이라는 절대절명의 명제는 나의 살 속에서 허물어져 내리는 돌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두 주간 동안 아픔의 번지수가 어디쯤인지를 찾았다. 아픔이 잇빨이 뽑힌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옆의 다른 잇빨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가까스로 알았다. 뽑았던 잇빨 치주의 염증 뿐 아니라 다른 잇빨의 통증 또한 나를 괴롭혀 왔다는 것을 몰랐다. 당면한 고통에 숨어있던 2차의 통증은 잇빨에 뽑혀져 나간 후에 1차 통증으로 현재화되었지만, 나는 아픔의 번지수가 뽑혀져 나간 잇빨에 머물고 있다고 오인했던 것이다.

결국 잇빨을 갈고 돌 속에 촉수를 뻗고 있는 신경을 들어내는 치료를 했다.

의사는 내가 들여다 보지 못하는 나의 잇빨을 들여다 보면서, 늘 그렇듯 혀를 차면서 소식을 전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쓸 수 있을 때까지 써봅시다."

2.

신경 치료를 하고 지하철을 두번인가 갈아타고 올라온 지상은 가을의 폭양으로 가득했다. 볕이 있는 정오는 더웠고, 가로수 그늘 아래 기온은 섭씨 5도 정도 급강하했다.

어금니 깊숙히 찔러 넣은 마취주사 때문에 목구멍 절반이 마비된 채, 건널목에 서서 가을 속으로 햇빛을 쨍쨍 반사하며 질주하는 차들 너머로 몽롱한 거리를 보았다.

"물질이 없는 정신만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나는 그렇게 반문하고 있었다.

존재할 수 있겠지만, 물질과 정신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물질이 정신의 한계를 짓고 정신이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이 사바세계와는 다르리라는 것, 물질이라는 한계가 없는 쾌락과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이 존재하며, 그 쾌락과 고통에는 몸이 없으리라는 것, 그것이 결론이었다.

2014/10/09 11:44에 旅인...face
2014/10/09 11:44 2014/10/0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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