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4 22:12 : 찻집의 오후는

그 건물은 성수역과 한양대 사이를 지나는 2호선 교각 위에서 보면 내륙 깊숙히 들어와 있다. 하지만 3호선을 타고 동호대교를 건너다보면 건물은 강에 바싹 붙어 물빛을 닮은 초록색 유리광을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건물이 있는 곳은 서울숲이다. 예전의 서울숲 일대는 지대가 낮아 비가 많이 내리면 물길이 흘러 섬이 되는 곳이라서 뚝섬이라 이름지어진 곳의 한자락이다. 장마철에 전철을 타고 중랑천을 건너다 보면 성수동 일대는 중랑천보다 낮아보여 장마가 길어지면 골목으로 물이 흘러들고 아스팔트 위로 물고기들이 울긋불긋한 웃음을 띄고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세상의 낮은 모습을 보는 것은 좋다. 낮은 곳은 먼 곳까지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이 넓어서 둥그렇게 보인다. 한양대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전철은 뚝섬에서 강변까지 이어진 교각 위를 달린다. 뚝섬에서 성수 사이, 전철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은 낮아서 공장 건물 옥상과 집들의 지붕이 눈 아래로 이어지다 강 아래 마을의 잠실종합운동장과 이어진다. 그래서 어느 처마 사이, 골목 사이로 한강이 흐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오후, 해가 지는 풍경은 한가롭다. 아침에 햇빛이 골목과 건물들의 벽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섬이 아닌 뚝섬은 치우의 깃발을 뜻하는 둑(纛 : 쇠꼬리나 꿩꽁지로 꾸민 깃발)자를 써서 '둑섬'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곳에 있던 둑신사에 둑신기와 헌원씨와 치우가 싸운 탁록전투도가 있었는데, 1940년대초 큰 장마 탓에 모두 떠내려갔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뚝섬에는 유원지가 있었다. 여름이 되면 서울 시민들은 뚝섬의 끝으로 가 강물에 멱을 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뚝섬 앞에 부리도가 있었고 그 옆 상류 쪽에는 잠실도가 나란히 있었다. 뚝섬과 두 섬 사이로 샛강(신천)이 흘렀다. 한강의 본류는 지금의 강변역 부근에서 석촌호수를 지나 잠실운동장 밑으로 흐르던 송파강이었다. 1970년대 초반 송파강은 매립하고 샛강을 넓히는 한강 직강화 사업 이후 한강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후 수중보가 세워지면서 한강 곳곳에 보이던 모래톱은 사라졌다.

이제 넓어진 뚝섬 앞의 한강에 양재천이 합수한 탄천이 흘러들고 중랑천이 흘러들며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앞의 강은 보기만 해도 넓고, 강물은 깊어 잔잔한 것 같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한강의 이 지역을 동호(東湖)라고 불렀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뚝섬의 끝은 한강 안으로 깊숙히 밀려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보는 한강은 무지하게 넓고 조용하다. 그래서 남산을 넘어온 오후의 햇살을 받은 강은 오후의 자동차 차창처럼 나른하게 빛을 반사하고 물비늘이 너머로 보이는 한강의 하류는 아득하다. 중랑천에서 흘러온 물과 탄천 등에서 흘러온 물이 한강과 섞인 동호에서는 강은 차오르기만 하지 도무지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흐르지 않는 강, 동호의 밑까지 만조 때면 서해의 밀물이 강바닥으로 밀려들었을 것이고 그때면 동쪽에서 밀려온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이 일대의 강은 팽팽히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그 위로 바닷물을 따라온 갈매기들이 끼륵거리고 강의 남쪽 압구정에서는 한명회가 그 풍경에 취해 술잔을 들었을 것이다.

이제 섬의 끝에서 본 강의 그 호수 위로 가을이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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