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3 18:53 : 황홀한 밥그릇

유홍준의 詩, '옆구리'를 읽으면 옆구리가 결리거나 쓰라리거나 뭔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옆구리마저 없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내 옆구리가 아니라 내가 막대기나 뾰족한 것으로 찔렀을 때, 텅빈 저들의 옆구리다.

미생 1~6편을 보았다.

살자고 다니는 직장이 그토록 살벌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직장이라는 곳에 입사하려고 안달이다. 그렇다면 직장 밖의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살벌하다는 것인가?

직장 생활이 맵고 쓴 이유는 일 때문이 아니다.

사전에 일이란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해결하거나 처리해야 할 문제. 또는 처리하여야 할 행사"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사장이나 상사에게 일이란 늘 '부하들이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왜 부하들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직원이나 부하들은 늘 게으르고 변명이나 일삼고 머리를 쓰기를 싫어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덜 떨어진 종족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하들이 일이 안되는 이유를 열거하자면 삼박사일 동안 떠들어도 모자라며, 그 대부분의 이유는 상사의 탓에 기인한다.

다시 돌아가 직장생활이 맵고 쓴 가장 큰 이유는

넥타이를 매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도무지 일 같지 않은 탓이다. 일같은 일만 한다면, 자신의 밥값을 충분히 한다는 이유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몸만 고달프면 된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화이트 칼러들은 쓸데없는 일들을 한다. 보고서나 기안서 그리고 여러가지 이름으로 된 문서를 작성한다. 이 화급하지도 일 같지도 않은 서류 일을 전문용어로 페이퍼 워크라고 한다. 이 페이퍼 워크는 대충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여 대단한 실적으로 가장 하거나 혹은 목표대비 실적미달이 나의 무능 탓이 아니라 시장환경과 회사의 사주팔자 탓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과장법이나 문제의 핵심을 모호하게 피하거나 끝을 흐리는 수사적인 기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직원들은 소설을 쓴다며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전공은 '국문과'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직원들은 페이퍼 워크를 줄여달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직원들에게 말한다.

"쉿! 그 쓸데없는 페이퍼 워크야 말로 너희들의 밥줄이다. 쓸데없는 일들을 모조리 없애버렸을 때, 너희들 중 몇십 프로가 짤려나갈 지 모른다. 그러니 잠자코 있어라."

쓸데없는 일에 밥줄을 대고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일보다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몸으로 일을 밀고 나가는 피로보다,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더럽고 지겨울 수 밖에 없다. 자신의 허약한 노동과 지겨움에서 버텨 나가기 위해서는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줄을 대거나 양떼 틈에 섞여 상사를 욕하거나 일 잘하는 놈을 험담하며 리스크를 1/n로 줄이려고 한다.

그러니까 인턴사원이나, 계약직이나, 정규직이나 모두 아직 두집이 나지 못한 미생일 뿐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야 말로 지랄같이 피로하다.

유홍준의 시, 옆구리 읽기



 

2014/11/03 18:53에 旅인...face
2014/11/03 18:53 2014/11/0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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