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9 09:26 : 황홀한 밥그릇

어느 소도시로 일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숙소에서 자지만, 때론 서울의 집으로 빨랫꺼리를 가져가거나 밑반찬을 들고 다시 이 곳 소도시로 내려옵니다.

이 곳에서 머문 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보았던 반세기가 훨씬 지난 극장 건물에 아직도 붓으로 그린 간판이 걸려있는 것이 보이는 이 곳은, 아주 낡은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무너지고 사라지기 위해서 있는 것 같지만, 제가 어렸을 적 보았던 외갓집 앞의 논과 밭이 있던 자리 위로는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그 집들 조차 낡았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듯, 퀭합니다. 낡은 것 위로 새 것이 들어섰지만 그마저도 낡아버린, 이 도시의 외곽에는 쓰레기와 맨 땅이 구분이 안되는 들 위로는 비닐봉지가 겨울바람에 날아다니고, 헐벗은 미루나무 위로 차디찬 겨울의 감귤빛 노을이 걸쳐집니다.

이 곳에서 아직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막막합니다. 숙소 근처의 중국집의 벽지에 곰팡이가 1/3 쯤 점령한 것을 본 후, 할 수 없이 컵라면의 아직 제대로 풀어지지 않은 면발을 잘근잘근 씹거나, 싫어하는 빵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곤 합니다. 겨우 깔끔한 백반집을 하나 찾긴 했지만, 저녁 7시면 장사를 파하기 때문에 저녁 또한 찾아 먹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퇴근 후 일찍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불현듯 깨어났더니, 방 한쪽 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한동안 들었더니 윗 집인지 아랫 집인지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후 아래 윗 집의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골목에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소리 그리고 도로 위를 하얗게 헤드라이트를 밟고 지나는 차량의 소리등이 들렸습니다. 겨울의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들은 하염없이 많았고, 시계의 인광은 11시 48분을 째깍째깍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숙소에는 TV도 없고, 저에게는 노트북이라든가 하는 것도 없습니다. 단지 스마트폰의 신문기사나 보다가 하루를 마감하곤 합니다.

할 수 없이 소식이 뜸했습니다.

2015/01/29 09:26에 旅인...face
2015/01/29 09:26 2015/01/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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