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2 16:44 : 찻집의 오후는

한낮이지만, 사방이 막힌 화장실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그 소리는 시간 속에 깃든 어둠을 갉아내는 소리같다. 그래서 귀뚜라미가 우는 화장실은 오히려 어둠으로 적막하다.

어제는 무수한 구름이 떠있었다. 높은 구름은 하늘을 반쯤 가린 채 동쪽으로 서서히 흘러갔고, 낮은 구름은 서쪽으로 바삐 흘러갔다. 대지 위로는 바람이 휘몰아쳤고 추웠지만,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고 투명했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햇빛이 흘러나와 들과 산은 빛과 그림자와 뒤섞였다.

산이 낮은 이 곳은 공기가 투명한 날이면 세상의 끝까지 다 보일 듯하다.

나무들은 바람을 맞이하여 가지를 뒤척였다. 여름동안 어깨를 내리누르던 습기와 광막하여 그 끝을 알 수 없었던 열기는 그만 사라졌다. 오늘 낮 가을햇살은 이렇게 따갑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어둠을 지나 새벽이 오고 아침 햇살이 도로와 골목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다. 가까운 사물과 풍경은 투명하다 못해 생경하여 아득했고, 오히려 산과 같이 먼 곳은 바로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런 햇살은 고추가 빨갛게 익듯 사물이 익고 마침내 자신의 비밀을 풀어낼 수 밖에 없는 투명함으로 가득한 것만 같다.

바람과 빛으로 풍경이 지쳐가는 오후, 무료한 신호등이 보이는 사거리에 서서, 하루가 가고, 오후의 햇빛을 반사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차들을 보았다. 차가 지나간 오후의 끝은 투명하다 못해 가을햇살로 들끓었다.

녹색 신호등이 들어왔고 사거리 저쪽에서 눈을 내리깔고 침묵하던 무료한 차들이, 문득 눈을 부릅뜨고 나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비밀을 알게 되었다. 진리나 사랑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것. 그리고 이제 저녁이 시작된다.

세상의 늦은 하늘 위에는 석양을 담은 구름이 하늘 저편으로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미루나무.

2015/09/12 16:44에 旅인...face
2015/09/12 16:44 2015/09/1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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