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12:16 : 황홀한 밥그릇

아버지의 무능을 좋아한다. 당신께서는 돈을 잘 벌지도 못했고, 집에서는 자상하지도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남의 집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뿐이었다.

나도 아버지를 '사랑하되 좋아하지는 않는다'(주1)고 할 수 있다. 대학 졸업반 즈음, 당신께서는 교감이 되셨고, 교감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몹시 앓으셨다.

"아버지 왜 그렇게 아프세요?"
"그러게 말이다. 아마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서류나 만지게 되어 그런가 보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집을 나서시는 아버지의 쳐진 어깨를 보면서,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무능을 이해했다. 만약 아버지가 돈도 많이 벌고 자상한 아버지에 남편이면서도, 나의 아버지는 좋은 선생일 수 있었을까? 아버지께서 할 수 있는 일이 초등학교 선생 밖에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고, 축복이었다는 것을 그때에서야 간신히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의 허약해진 등을 보면서 아버지란 존재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무능을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서 서면 부끄럽다.



주1> 공지영 씨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어느 아이가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한 말

2015/10/24 12:16에 旅인...face
2015/10/24 12:16 2015/10/2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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