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1 12:17 : 황홀한 밥그릇

화식(火食)을 하게 되면서 인간이 진화한 반면, 퇴화한 기관이 있다.

리처드 랭엄의 ‘화식가설’에 의하면 ‘일부 하빌리스가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게 되면서 직립원인으로 진화하게 됐다’고 한다.

음식을 불에 익혀먹으면 창자의 크기가 줄어들고 유지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도 아낄 수 있다. 같은 양을 먹어도 소화가 원활하여 더 많은 칼로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덕분에 뇌 용량이 더 커질 수 있었다. 직립원인은 그 선조인 하빌리스보다 뇌 용량이 50%나 컸다. 치아의 크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작아졌다.

생식을 하면서 살아남으려면 하루에 5.6~6.2시간을 저작하는 데 써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침팬지와 같은 강인한 턱과 잇빨로 말이다.

나는 호모 바비엔스(Homo-Babiens)에 속하는 유인원이다. 즉 화식 중에서도 가장 씹고 소화하기 좋게 취사된 밥(Bab)을 먹고 사는 유인원이다. 그러다 보니 부실해진 잇빨들이 삶의 그 질김과 거기에 끄달려 있는 하중을 감당하기에 연약했나 보다.

살(肉)이 돌(잇빨)을 자라게 하고 용납하는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면서, 살과 돌은 불화했다. 아마 그 둘이 불화하고 아팠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살에서 돌이 돋아나 밥과 반찬, 그리고 질긴 것들을 씹어 삼켜야 한다는 나날의 현실적 사실에 대해서, 나는 사유했는지도 모른다. 의문을 풀기 전에 살은 자신 속에 박혀 있는 이물 사이로 고통과 고름과 악취를 토해냈다. 치과로 갈 때 마다 한 두개 씩의 돌을 제거했다.

치과에 가기 전까지 칫솔을 들고 입 안, 아픔의 번지수를 생각했다. 아픔은 돌에 있는가, 살에 있는가, 아니면 돌과 살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 있는가? 아픔의 번지수를 찾을 수 없었다. 치과로 가서 살에서 돌을 뽑아낸다. 그러면 돌에도, 살에도, 다른 어느 곳에도 아픔은 없다. 아픔이란 단지 살과 돌 그리고 삶의 질김과 하중 등이 서로 얽히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얽힘이 풀어지면 사라지는 것, 아픔에는 자성(自性)이 없다는 문자선(文字禪)의 한 자락을 얻어 가졌는 지 모른다.

문자선을 깨우치고 난 후, 입 안은 공허해지고, 씹어지지 못한 밥알은 헛돈다. 어쩔 수 없어 살을 째고 드릴로 치주골에 구멍을 내고 임플란트를 박아넣은 다음 뼈를 이식했다. 입 안을 벌리고 있는 두 시간 동안 마취제 사이로 아픔을 흘려보내며, 느껴지지 않는 아픔을 어깨로 감당한 모양이다. 수술한 날 오후 내내 잤고, 깨어나 늦은 오후를 맞이하며 우울했다.

2017/12/11 12:17에 旅인...face
2017/12/11 12:17 2017/12/1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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