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5 23:25 : 황홀한 밥그릇

논어의 안연편에 자공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느냐고 공자에게 묻는 구절이 나온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兵足,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于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于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不信不立."

공자: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국방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국민이 정부를 믿는 것이다.
자공: 하지만 부득이하게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 세가지 중 무엇을 먼저 버리겠습니까?
공자: 국방을 포기한다.
자공: 부득이하게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남은 것 중 무엇을 버리겠습니까?
공자: 경제를 포기한다. 옛날부터 사람은 모두 죽는다. 국민이 믿지 않으면 정부는 설 수 없다.

굶어 죽어도 그들의 믿음을 져버려서는 안된다는, 공자의 이 짧은 대화는 한미쇠고기 협상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에 대한 믿음의 문제

이명박 정부는 도덕적 결함을 해소하지 못한 채, 정권을 잡았다. 그리하여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한다는 입장에서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내각과 청와대의 참모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 정부가 도덕적, 윤리적인 측면에서 청결함을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드러냈다. 영어몰입교육이나 입시제도의 개선은 자본주의적 생리에 충실한 것으로 계급구조의 고착화를 심화시킨다는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또 과거사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다 좋은 것이 좋다라는 식으로 과거를 덮어버리자는 미온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대운하 등의 문제는 첨예한 국민들의 관심사임에도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그동안 발생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등 정부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도 못했다.

실리 위주로 나라를 이끌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좋다. 그러나 명분없는 실리는 없다는 점을 이 정부는 간과하고 있다. 지금 이 정부의 정책노선은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의구심들이 국민들에게 가득할 무렵, 한미 쇠고기 협정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국민 보건과 관련하여 볼 때, 광우병 문제는 미래의 문제이고, 당면의 과제는 고병원성 조류독감이다. 방역대책 소홀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양계장, 심지어는 공원의 닭, 오리 할 것없이 땅바닥에 묻어 살처분을 하고, 통닭집을 비롯하여 음식점에 손님이 뚝 끊어졌을 뿐 아니라, 조류독감 환자가 발생하고 어쩌고 하여도 한미 쇠고기 협정 문제에 대해서 처럼 개거품을 물고 흥분하지 않는다.

수입쇠고기를 먹고 죽는다는 한가지 이유로 국민들이 열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안죽는다고 죽어라고 국민들과 대화한다면 국민들과 소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정부는 정말로 2MB 밖에 안되는 졸렬한 정부다.

한미쇠고기 협상과 이후 국민들에게 정부가 보여준 제반 행태들은 끊임없는 말바꿈과 책임전가와 어이없는 실수들로 점철되어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인가 하는 덜 떨어진 대통령을 만나기 하루 전에, 당초 협상의 마지노 카드로 가져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협정문에 싸인을 했는가 하는 의문에서 부터 USTR대표의 말이 단순한 립 서비스에 불과한 내용임에도 그동안의 협상과정의 모든 잘못을 뒤덮을 수 있다고, 전가의 보도마냥 호도하고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왜 그토록 형편없는 협상을 했느냐와 누가 협정문에 싸인을 하라고 시켰느냐이다. 우리 측 협상대표부가 그 자리에서 자유재량에 의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협정문에 싸인을 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한미 관계에 대한 문제

해방 이후 한미관계는 공자가 언급한 경제, 국방, 주권(정부에 대한 믿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육이오를 지나면서 미국은 우리의 절대적인 우방이 되었다.

그들은 식량을 주었고, 원조를 해주었고, 육이오 때 병력을 보냈다. 반면 우리 국민들은 오랫동안 자기의지에 의하여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했고, 독재 속에서 민주는 꽃피지 못했다. 또한 일제시대의 과거사 또한 청산하지 못했다. 그들이 묵인한 군부독재로 부터, 간신히 간신히 벗어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가 꽃피우고 나자, 우리는 미국이야말로 엄밀하게 실리적인 입장에서 세계를 경영하고 있으며,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수호해야 할 주권 중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 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시작전권도 없으며, 우리의 어린 딸들이 저들의 장갑차에 깔려 죽어도, 촛불집회를 벌여도, 미국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The ROK-US Agreement on Status of Force in Korea)에 의거, 식민지의 딸 둘 쯤 죽었다고 무슨 문제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거룩하게 지구 상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씨부린다.  

그동안 경제와 국방이라는 실리 앞에 우리 정부가 미국에 내준 것은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다.

이번 한미쇠고기 협상을 통하여 미국은 세계 어디에도 수출할 수 없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차떼고 포 떼고(일곱가지 위험물질) 할 것 없이 한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우리 정부의 말에 따르면 과학적인 근거에서 전혀 광우병의 위험이 없는 쇠고기를 값싼 가격에 우리 식탁에 올릴 수 있게 된 만큼, 양국의 우호관계는 돈독해진 셈이다.


추가적인 생각

이제 정부가 협정문의 문구를 고치자, 광우병 발생 시 GATT 조항에 의거하여 어떻게 하자 하고 떠들어 대고 있으나, 분명 그들은 '뭐 협정문을 고치자고?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무슨 미친 소리냐? 너희들 광우병 쇠고기 먹었지?'라는 입장일 것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정문을 수정할 이유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재협상 의지가 전혀 없어보인다. 그들은 미국이 재협상에 응해줄 이유가 전혀 없음을 명백히 알고 있다. 그리고 수입쇠고기보다 더 큰 댓가를 지불해야 미국이 재협상에 응할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국민의 의사에 반한 작태를 저질렀다면, 응당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는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업자가 수입을 안하면 된다고 말씀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이 분이 현대건설과 같은 기업에 계실 때, 국민건강과 같은 도덕적 명제를 위하여 돈을 포기한, 정말로 존경할만한 기업인이었다는 것과 살벌한 경쟁체제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인격 때문에 조기 승진을 거듭했다는 것을 간신히 알게 되었다.

정부가 비도덕적이고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데, 한낱 장사아치들 보고 돈을 포기하고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라는 이 도치법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아무래도 광우병 쇠고기가 오래 전에 들어왔고, 각하께서도 벌써 잡수셨기에 가능한 몹시 윤리적인 헛소리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소리만 들어도 얄밉다.

결국 대통령과 정부관료들, 국회의원들의 식탁에도 미국산 쇠고기가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미쳐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식탁에 제대로 검역되지 아니한 쇠고기가 올라오고 있다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잘난 우리 자식 또는 내가 미국에서 쇠고기를 그토록 많이 먹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랫 것들인 니들이 왜 감나와라 대추나와라 지랄이냐?'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잘 모르겠다. 이 놈의 나라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2008/05/15 23:25에 旅인...face
2008/05/15 23:25 2008/05/15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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