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3 18:07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이 도시에는 냄새가 없다. 냄새를 맡은 것은 저녁으로 기울어가던 도시의 육교에 올랐을 때, 골목으로부터 짙은 간장냄새가 끼쳐왔던 것이 그만이었다. 타이음식처럼 강력한 냄새를 가진 음식도 드믄 데, 도무지 이 도시에선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남국의 정오에 햇살로 달구어진 공기는 바싹 마르고, 냄새가 스며들 습기가 생각보다 적은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바다에서 불어온 한낮의 바람이 냄새를 내륙으로 몰아간 것일까?

아침은 잠시 미명이 스쳐 지났다 싶으면 대낮처럼 왔다. 언제까지 아침이고 언제부터 낮인지 알 수가 없다. 여섯시 정도가 되면 승려들이 탁발을 위하여 맨발로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 보인다. 간밤동안 이슬이 맺힌 듯 은은한 빛이 수풀 속에 감돌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 저녁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토요일 0시 30분에 이 도시에 도착한 이래, 5시 반에 깨어나 골프장으로 갔고, 정오가 지나 도시로 돌아와 마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방콕 시내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곳을 가도 여기가 세상의 끝이 아닐까 하는 느낌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세상의 끝의 의미와 느낌은 조금씩 다르다. 풍경이 척박하여 도무지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는 느낌에 빠져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지점에서 바라보는 대지와 하늘에 매료되어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떠나가기를 주저하게 되거나, 바깥세상으로 너무 열려있어서 그 넓은 세상의 반대편으로 거기가 끝일수도 있다. 때로는 세상의 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드넓은 세상의 중심을 세상의 끝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끝은 결국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을 말하는 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에 <死의 질주>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너무 오래되었거나,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졌거나, 유럽의 영화라서 그런지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을 해 봐도 나오질 않는다. 국민학교 4~5학년 때, <주말의 명화>에서 보았기 때문에 누가 나오고 줄거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잠시 기억을 더듬으면 이렇다.

태평양이거나 북아프리카의 북단의 한 섬의 모래 위로 활주로가 하나 있고, 거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여관이 딸린 선술집이 있다. 그리고 야자수가 몇 그루 정도는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으로 사기꾼이나 살인 강간범 등의 범법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곤 했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방을 하나 얻은 후, 창 밖의 내다본다. 모래와 한낮의 열기 속에서 빨리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범법자들인 그들에게 도피할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은 어디로 갈까?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덧 자신의 호주머니 안에 다른 곳으로 갈 비행기 삯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태양과 모래와 몇 그루의 야자수 만 남아있는 섬에 갇히고 만다. 그들은 먼저 왔던 범법자들처럼 막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 돈 많은 범법자들에게 아첨을 떨고, 빌붙어 위스키 한 잔을 얻어 마시는 식으로 살아간다. 더 이상 섬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그때 섬의 반대편에 있는 유전에서 대형 화재가 났다. 화재를 진화하기 위해서는 찝차 세대 분량의 니트로글리세린을 유정에 쏟아 붇고 폭발시켜야만 된다. 석유회사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할 사람을 구했고, 범법자 세명이 섬에서 벗어날 비행기 삯을 벌기 위하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액체화약을 찝차의 뒷 칸에 올려놓은 뒤, 길도 없는 섬의 반대편으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채 달려간다.

이 남국에선 모든 것이 싸다. 이 곳의 골프비용은 한국의 십분지 일이다. 골프장의 상태는 필드에도 그린과 같은 양잔디가 깔려 있고, 1인 1캐디에 카트는 필드까지 들어갈 수 있고, 뒷 팀에 밀려 쳐야 하거나 앞 팀을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이 한가하다. 또 서울에선 가볼 엄두도 나지 않는 고급 술집의 비용이 우리의 삼 내지 오분의 일이다. 한달에 열흘을 골프장에서 보내면 30만원, 일주일에 두 번 고급요정에 간다면 40만원, 8평짜리 시내 중심부의 청결한 원룸의 임대료가 한달 15만원, 봉급생활자가 교통비 식대 등으로 하루 3천원 쓴다면 다소 풍족하게 하루 1만원을 쓴다고 쳤을 때, 30만원 도합 115만원에 전기세, 수도세 등 및 예비비를 감안하여 150만원이면 아주 귀족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노후에 부부가 함께 산다면, 골프비용은 더 들겠지만, 요정에 뿌리는 돈은 줄어들 것이니까 200만원 정도면 끽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계산이다. 이 계산은 한국내의 모든 생활을 접어야만 가능하다. 한국에서 집을 비워두어도 발생하는 경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접었다. 식당을 하거나, 조그만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하거나, 아예 그냥 논다. 놀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가? 그들이 버는 돈은 태국에서 살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자식들을 태국의 국제학교에 보낼 수는 있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다. 그렇다고 한국의 대학에 보내기에는 시험이나 입학이 너무 어렵다. 결국 그들의 아이들은 태국의 대학을 다녀야 하고, 졸업 후에는 태국인 대졸자보다 열악한 조건으로 취직을 하거나, 아버지의 가게에서 장사를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태국에 있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도, 한국에선 푼돈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서 머물러야 하며, 거기가 세상의 끝이다.

함께 간 큰처남은 4년동안 서른 번을 넘게 이 곳에 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노후의 생활을 위의 계산대로 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 생활 근거는 있어야지”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아파트 관리비와 비워두어도 돌아가는 전기세와 자산을 보유함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 기타 등등의 공과금들은 태국에서의 풍족한 노후생활에 딴지를 걸어댈 것이다.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려면 그는 결국 한국의 봄과 가을, 이웃과 친구들과 우리말로 담소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며, 때때로 한국으로 장거리 전화를 해서 “너 한번 놀러 와라. 비행기 값만 네가 부담하면 다른 것은 내가 다 부담할테니 제발 놀러 좀 와라.”고 친구들에게 애걸을 하게 될 것이다.

큰처남이 생각하듯, 세상과 생활은 계산기로 계산이 가능하거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은 늘 불합리하고 추하지만 아름답고, 생활은 늘 지겹고 하찮은 일들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교활하게 간간히 기쁨과 삶에 대한 열광을 던져줄 뿐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사모아나 유럽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큰처남은 태국에 왔으니 즐겁게 보내다 가자고 하지 않았다. 한국보다 골프 비용이 싼 만큼 많이 쳐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돈버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훨씬 많이 쳤다. 남들이 18홀을 도는 동안 80~100타를 쳤다면, 나는 140타를 쳤다. 그린피를 3만원이라고 칠 때, 남들은 공을 한번 치는 비용이 평균 333원이라면, 나는 214원이다. 남들보다 36%나 경제적으로 친 셈이다.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번 반면, 남들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오전에 골프를 마치고 우리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별로 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지만, 그는 태국의 안마기술이 탁월한 반면, 몹시 싼데 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밤에 고급 술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지 보다, 그를 기쁘게 한 것은 계산서에 올라온 비용이었다. “이것 봐! 이렇게 근사한 술집에서 나온 술값이 이것 밖에 안 된다니 믿을 수 있어?” 다음날도 술집에 가자고 했지만, 피곤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몇 마디의 태국어를 할 줄 알았고, 방콕 시내의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시내의 모든 호텔의 가격을 알고 있었고, 식당은 어디가 좋고 가격 수준은 얼마며, 주택의 한달 임대료와 좋은 술집과 트랜스젠더가 나오는 나이트 쇼는 어디가 좋은가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3박 4일 동안 그의 소개로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까지 받았다. 지금 여행의 피로감과 스케일링의 후유증으로 잇몸이 들떠 제대로 씹지 조차 못하고 있다.

그에게 방콕에서 가장 훌륭한 불교사원은 어딘가와 수상시장에는 가보았느냐? 태국에 온다면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가를 묻고 싶었다.

무엇이 모든 것을 돈으로 가측하여, 한국보다 싸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도록 만들었을까? 그런 단순 계산방식이라면, 미국과 일본과 유럽은 그에게 지옥이어야만 한다.

서른번을 넘게 왔다는 그에게, 이 곳 사원의 금불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한 아우라 속에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과 사원의 뒷뜰 뱅갈용수 그늘 아래에서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를 듣고, 노란 법의를 걸친 승려들이 독경을 하고, 위파사나 수행을 하는 모습들은 진부할지도 모른다. 또 수상시장에서 파는 것들은 그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을 따라 위태롭게 세워진 수상가옥 속 그늘 아래의 이끼 낀 생활과 강물을 채우고 있는 뚜리앙의 냄새, 남국과일들의 다채로운 색깔들이 가져다 주는 이국의 느낌에 대해서 과연 돈으로 환가할 수 있을까?

큰처남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며, 소공동과 광교, 테헤란로의 사무실 혹은 길을 거닐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관광지나 유적에 당도하면 사진기를 들이대다가, 정작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잊기 일쑤이고, 야시장을 찾으면서도, 정작 길모퉁이의 허름한 찻집같은 곳에서 커피나 시원한 음료수를 시켜놓고 뒷골목의 모습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간을 갖고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큰처남을 따라나선 나는 방콕에서 서울에서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일상들을 지내고 왔을 뿐이다. 골프장을 갔고, 마사지를 받았고, 한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고 이태원 에 있는 태국음식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식당에서 타이음식을 먹었고, 백화점에 들어가 샌들을 샀다. 다를 것이 있다면 싸다는 것,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는 반면, 무지하게 피로하다.

2007/06/13 18:07에 旅인...face
2007/06/13 18:07 2007/06/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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