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26 18:40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바다의 아침은 고요하고 조금 서글프다. 그녀는 바다를 건너와 남해의 조그만 섬에서 살았다. 뭍으로 나와서 나를 만났고, 넓은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갔다. 그녀의 고향은 멀다. 별만큼 아득하다.

아침 안개가 짙다. 열시가 넘어도 걷히지 않을 것이다. 잠을 좀 자야겠다. 그래야 장사를 나갈 수 있다.

차들은 대충 열시가 지나야 다리를 건넌다. 오후 네시가 지나면 섬으로 들거나 나오는 차는 드물다. 섬과 섬들 사이로 이어지는 다리가 동쪽에 놓인 뒤부터, 낡은 다리를 넘는 차는 부쩍 줄었다고 한다.

커피를 끓여 보온통에 가득 채우고, 뻥튀기, 오징어나 쥐포 그리고 탄불과 청량음료와 얼음을 채운 아이스박스, 색이 바랜 파라솔과 걸상을 구루마에 싣고 열한시 즈음에 다리 옆으로 간다. 몫이 좋은 곳은 늘 옆집에서 차지했다. 그 자리는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그들 자리였다. 밀려난 우리 자리는 지나던 차들이 멈추어서기에 적당하지 않았지만, 그늘과 풍경이 좋았다. 아침 해가 지난 동남쪽 바다는 쪽빛으로 맑고 뭍은 지리산 연봉에서 흘러내려 바다 앞에서 속살을 풀었다. 숲은 낮은 포복으로 동쪽 끝까지 달려 수평선의 오른편 끝에 다다른다. 보리가 패고 봄이 익으면 소쩍새가 울었고, 장마가 그치면 매미들이 햇살인냥 울었다. 낙엽이 지면 물색도 변했다. 겨울이 와도 남녘에 눈이 오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녀, 란 아잉은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코 끝만 내놓고 커피를 팔았다. 두시까지 팔고 들어오라고 해도 네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차들은 퇴약볕 밑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길 먼지를 뿜으며 스쳐 지났다. 하루종일 오백원짜리 커피를 다섯잔이나 열잔 팔았다. 때로 콜라나 사이다도 팔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파라솔 밑으로 발이 젖었지만, 벌이는 없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온 아잉은 나를 보고 웃었다. 벌이가 없어 슬픈 그녀를 나는 안아주었다. 그녀의 어깨는 좁았다.

그녀를 머나먼 고향으로 보낸 나는, 늦게 나가 두시까지 판다. 돈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지만, 벌이가 없는 날에는 가슴이 아팠을 그녀가 그립다.

아직 서른인 그녀는 살아야 할 날이 많아서 돈이 많이 필요했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가지지 못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가 버는 돈은 적었다. 그래서 아주 조금 썼다. 우리는 그날그날 벌어서 먹고 살았다. 날마다 먹고 남은 돈, 천원, 이천원을 동전까지 찬장 위 냄비 안에 모았다. 읍내로 가면 모은 돈을 저금했다. 그녀는 통장을 자주 보았다. 통장의 잔고는 이백만원이 못되었다.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남자였다. 그녀의 외로움은 깊고 넓어서 막막했다. 우리 말이 짧은 그녀의 외로움은 여자들의 수다로 달래기는 힘들었다. 말로 외로움을 풀어줄 수 없어서 자주 안아주어야 했다. 안아주면 웃으면서 울었고, 울면서 웃었다. 그녀에게 그러면 똥구멍에 털 난다고 말해주곤 했다.

이전에도 그녀는 두 번인가 남자와 살았다고 했다. 한번은 자신을 한국으로 데려온 남편이었고, 한번은 지나던 젊은 남자였다고 했다. 그녀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녀가 울 것 같았다. 아잉은 때때로 더듬더듬 옛날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서툴고 짧았지만 서글펐고, 외로움에 가슴이 뻐근했다.

2007/06/26 18:40에 旅인...face
2007/06/26 18:40 2007/06/26 18:40
─ tag 
Trackback URL : http://yeeryu.com/trackback/3
◀ open adayof... Homo-Babiens ▶▶ close thedayof... Homo-Babie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