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새들 위에도

그녀는 성산동에 살았다. 성산동과 합정동, 망원동이 그녀의 집 근처에 함께 섞여 있었다. 망원동은 그 이름이 아득하게 멀었고, 그 좁은 골목에 난립한 집들과 널린 빨래를 보면,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기란 정말 요원했다. 분명히 망원동의 한 가운데 임에도 간혹 합정동이 있었고, 합정동에 의해 밀려난 망원동이 성산동을 범하기도 했다.

지엽적인 번지수 문제를 덮어놓고 본다면, 대체로 망원동과 합정동은 도로 양편의 상점들로 구분되었다. 성산동과 망원동 사이는, 망원동 쪽으로는 요꼬공장, 함석집, 무슨 설비, 간혹 보이는 선술집과 작부집, 자전거포로 어지럽고, 성산동 쪽은 가정집의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나뭇가지와 계절에 따라 피는 꽃으로 밝았다. 그러니까 출근하러 성산동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목도하는 건너편 아침은 음울했고, 망원동의 공장으로 출근하는 직공들이 바라보는 길 건너의 생활이란 평범하고도 그윽한 것이었다. 성산동과 합정동이 부딪히는 선분은 짧고 모호했다. 그녀와 내가 만났던 그 카페가 망원동이 아님은 틀림없지만, 합정동인지 성산동인지 잘모르겠다.

집이 성산동이라고 그녀가 말했을 때, 나는 안심했다. 음울한 망원동이 아니라는 것과 합정동이라면 마주쳤을텐데도 스쳐 지나다가 먼 곳에서 우연히 만나 통성명을 하게 된 것에 실소를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알아볼 가치가 없었기에 기억할 수 조차 없었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되리라는 씁쓸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정말 그녀를 사랑했던 모양이군요?”하고 말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일 뿐이었고, 그녀를 사랑했느냐는 문제는 별도로 논의될 주제에 불과하다. 그녀가 나를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딴 것은 걔한테 물어봐”하고 짜증스럽게 대꾸했을 것이다.

그녀를 알고도 오랫동안 다가가지 않았다. 지리한 여름방학 동안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해가 뉘엿해지면 동교동을 지나 홍대 앞까지 산보를 하거나, 앰프의 진공관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고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 3악장 위에 바늘을 얹었다. 그러면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음울한 심포니와 지직거리는 LP판 잡음 위로 바이올린 소리가 서서히 올라왔고, 조금 후 높고도 급박하게 춤추기 시작한다. 때론 비올라인지 바이올린인지 현악의 소리가 그 음에 비비적거리다가 사라지고 카덴자 부분인지 바이올린 만 홀로 춤추다가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로 졸도하곤 했다. 그러면 요한복음을 17장에서부터 읽거나, ‘전락’을 펼쳤다. 거기에 “나라는 사내는 보잘 것 없는 놈이라는 것, 나한테 애착을 갖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 내 인생은 딴 데 있고 나날의 행복, 아마도 내가 무엇보다도 더 누리고 싶어했을 그 행복과 나의 인생은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그리고 체념한 어조로 인정하는 것이었지요.”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고 정염은 사그러 들지 않았다.

마당에선 발정난 개새끼가 신음을 흘리면서 앓고 있었다. 신음은 종잡을 수 없어서 뼈를 갉아대는 사각거림이거나 때로는 절정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의 떨림과 같지만 그보다는 한 옥타브로 소리가 낮았다. 흘레라도 붙으라고 놈을 밖으로 내몰았지만 놈은 발정을 해소치 못하고 대문 주위를 맴돌다가 다시 들어와 또 앓았다.

놈의 신음을 외면하기 위해서 사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너무 허무하여 죽음조차 바바리 코트의 깃을 올리고 뒤돌아서고 말, 삐쩍 마르고 볼품없는 에디뜨 삐아프의 연가를 들었다.

나의 정염 역시 이성 속에 용해되지 못했다. 육신은 빠르게 자랐고 허기졌으며, 모든 것을 흡수했다. 갈증은 뼈와 살에 촘촘히 박혔고, 갈증을 편지에 쓰기에는 수치스러웠고, 가벼운 치욕조차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명동의 끝 퇴계로 쪽에 있는 ‘사계절’로 갔다. 친구의 사촌 형이 어느 구석엔가 앉아 있었다. 그는 미팔군 메릴랜드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친구는 ‘그 새끼’라고 했다. 친구는 ‘그 새끼’가 나보다 더 타락했고 더 형편없는 놈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친구의 오산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동안 내가 ‘그 새끼’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어리석음과 철없음 뿐이었다. 친구에게 그것을 말해주자, 놈은 ‘그 새끼’는 형편없지 조차 못한 새끼라고 했다. 친구에게 그래도 순수한 것은 남아있지 않겠냐고 하자, 순수? 개나발 까지마! 너 같은 새끼가 순수를 들먹일 자격이 있냐고 했다. 명동의 한 쪽 구석에서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고, 헤어지는 길에 나는 장발단속에 걸렸다. 풀려날 시간이 되자 통금이었다. 파출소에서 이송된 경찰서 철장에서 날을 밝혔다. 그 밤에 짧은 미니스커트 때문에 단속에 걸린 아가씨가 다리를 꼰 채 아이새도우로 떡칠한 얼굴을 철장 사이로 들이대며 말했다. “아찌! 담배 있으면 한 대만…”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을 뿐이다.

경찰서에서 벗어나 아침에 잠을 잤다. 오후에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편지를 다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우체통에 집어넣었다.

편지를 보낸 것조차 잊은 채 개학을 했고, 플라터너스의 색깔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운동장에 남아 자글거리는 여름의 마지막 열기에 들떠, 다시 나는 것에 대하여 생각했고 날아가기로 결심을 했다.

아주 우습겠지만, 나의 인생은 날아가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무거운 것들의 집요한 방해의 연속이었다. 나는 늘 그 무거운 것들에 져주곤 했다. 날아간다는 것은 내게는 당연한 일이라서, 동생은 이외수의 소설을 읽고서 자신의 형이 날아가려고 퍼득거린다는 것을 그만 알아차렸던 것이다. 형이 아주 현실적인 싸이코라는 것 말이다. 동생이 방바닥에 흘린 이외수의 소설을 읽었다. 이외수는 ‘최소한의 양심’을 ‘Bright Penis’라고 번역했다. 발기된 거시기? 육욕이 세상의 진실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하여 그만 실소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최소한의 양심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때 늘 하던 식으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어디에 있는 데, 시간 있으면 나와!”

일방적 통보였다. 그 목소리에는 보고 싶다거나 하는 아무런 사적인 감정이 없었다. 그냥 심심하니까 나올려면 나오고 말려면 말라는 식이었다. 늘 나에겐 시간이 넘쳐났기에 방바닥에 죽치고 있다가 결국 그 곳으로 나가곤 했다. 늘 한 뭉태기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 가운데에서 웃고 있었다. 그러니 나를 부를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나를 자신들과 같은 그녀의 얼빠진 남자친구 정도로 이해하고 못마땅한 듯 자리를 내주었다. 자리가 끝나면, 같은 방향이기에 광교로 걸어가 7번 버스를 탔다. 합정동에서 나는 여지없이 내렸고, 그녀는 두 정거장인가를 더 갔다.

나오라고 한 합정동의 모퉁이에 있는 흙다방인가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혼자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몰취미를 생각했다. 아무리 하찮게 생각해도 시골 여인숙 방의 도배지로 벽을 바르고, 마담과 건물주인이 임대료를 갖고 테이블을 두드려가며 사흘들이로 싸우는, 뽕짝이 자욱한 이 곳으로 불러내다니?

내가 다방에 들어서도 아무 말없이 성냥개피로 탑을 쌓고 있었다. 얼마 후 성냥통 안의 성냥개피는 부러진 것 몇 토막 외에는 남지 않았는 지 성냥탑을 허물어 통 안으로 후루룩 털어넣었다.

나는 성냥통에서 성냥개피 하나를 꺼내어 담뱃불을 붙였다.

반짝짜리 다방문이 훌떡 열리고, 담배연기가 반짝하는 햇빛 속으로 쑥 말려나갔다. 모든 것이 통속적이었다.

그녀를 남겨놓은 채 “악악 뷰티풀 써언데이”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할 말이 없었고 무료했다. “할 말이 없으면 가지?”하고 말했다.

“잠깐만!” 하고 그녀가 말했다.

지금까지 삼십분 동안 침묵했다면, 까짓 것 좀 더 침묵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둘은 이야기가 없었다. 시내에서 우리가 만나면 나는 그녀의 여자 친구와 이야기했고, 그녀는 딴 남자와 이야기했다. 게다가 나는 아무 것도 아닌 학과를 다녔고, 그녀는 빌어먹게도 수학과였다.

우리는 같이 할 이야기 꺼리가 무지하게 없었다. 더 이상 만나지 말아야 할 정도로 없었다.

 

“나, 너를 좋아하기로 했어.”

 

지금 그녀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나도 할 말이 있는데, 해야 하는데… 도무지 그 할 말이란 게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슬퍼졌다. 너무 슬퍼서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기만 하면 엉엉 울어버리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슬픔은 사나흘 굶은 거지가 첫술 뜰 때 다가오는 오래된 허기의 슬픔, 떠나간 첫사랑에 대해서 라기보다, 첫사랑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 말하지 못한 웅성거림을 뚜렷한 의미로 발라내지 못하고 그대로 묻어놓았다는 것에 대한 슬픔, 어리고 겁이 났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보듬어 주려고 했음에도 창피하여 거부했고 너무 쓸쓸했다는 것에 대한 슬픔. 그리고 나르시스적인 허욕을 방기해 버리지 못한 채 아주 이기적인 자기애라는 틀 속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었다.

울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흙다방에선 울 수 없었다. 레지는 바로 옆 테이블에서 손톱을 또깍, 토칵 깍아대면서 뽕짝에 맞추어 하늘색 샌들의 뒷굽을 흔들어대며 “사랑 바~아껜 모오~ㄹ라”라고 껌을 짝짝거렸다.

만약이 존재하지 못했던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길 건너편 카페의 어둠 속이거나 칸막이가 쳐진 싸구려 경양식집 구석이라면 울었을 지도 모른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머저리같이 하염없이 울었을 것이다. 나의 울음의 막연함에 놀라고 초라한 육신의 흐느낌에 당황하여, 그녀는 도망가거나 아니면 내 옆으로 다가와 나를 안고 달랬을 지도 모른다. 또 눈물은 부끄러움을 가리던 허위와 자기 변명을 위하여 빌려왔던 관념, 하잘 것 없던 나의 껍질들을 흘려보내고, 결국 그녀의 품에서 짙고 무성하여 깊이를 알 수 없는 못 견디도록 아득한 냄새를 퍼 올리고, 눈물의 끝에 “나도 그동안 너를 못견디게 사랑했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빌어먹게도 거기는 흙다방이었다.

흙다방에서 나왔을 때, 이미 그 빌어먹을, 처절하고 아름다운 석양이, 합정동 사거리를 금빛으로 물들이던 오후의 마지막 햇살을, 조금씩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낙조를 보며, 그녀가 나를 좋아하기로 했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여정일까와 도달할 목표가 암울한 것인가를, 또 내가 가진 사랑의 껍질이 얼마나 견고할 것인지를,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녀가 나에게 확약한 헌신이 내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될 것인지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그리고

 

가을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새들 위에도…

가을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새들 위에도
머리 위 로웬나무 잎사귀도 노랗게 물들고
젖은 들딸기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사랑이 시드는 시간이 닥쳐와
이제 우리들의 슬픈 영혼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자 우리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수그린 이마에 입맞추고 한 방울 눈물을 남기고서…

눈처럼 흰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나뭇가지에 잎이 자라듯
사랑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난 젊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 들으려 하지 않았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젊고 어리석었던 나에겐 지금 눈물만 가득하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다정하고 우아했던 시절을 사랑했고
그대의 아름다움을 거짓 혹은 진실함으로 사랑하였던가를.
다만 한 남자가 그대 순례자의 영혼을 사랑하였고
그대 변하는 슬픈 얼굴을 사랑하였던 것을.

나는 그대 목소리 듣노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숲속을 거닐면
나는 또한 그대 목소리 듣노라
그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그대 곁에..
그대는 내 곁에 있도다
해는 기울어 별이 곧 반짝일 것이니
아, 그대 여기에 있다면…

피로가 찾아든다.
이슬에 젖어 꿈꾸는 저 백합과 장미로부터
아, 꿈꾸지 마라 사랑하는 이여,
흐르는 별의 불꽃은 사라지리니
푸른 별의 불꽃을 꿈꾸지 마라.
이슬은 내리는데 낮게 걸려 서성이니
될 수만 있다면 떠도는 물거품 위
두 마리 흰 새가 되련만. 그대와 나는…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우주는 너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네. 고요하라,
나의 마음아 슬픔과 탄식으로 무거워진 하늘은
너의 노래들을 견딜 수 없으리라

그리고 빛나는 창살 가에 고개 수그려
조금은 슬프게 중얼거려요.
어떻게 사랑이 달아났고 높은 산을 거닐며
별들의 무리 속에 그의 얼굴을 감추었는가를.

다른 연인들 모두 멀어지거나 죽었고
무심한 등불은 갓 아래 숨고
커튼도 무심한 밤을 가렸으니
우리 예술과 노래의 드높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이 마땅하리.
육체의 노쇠는 지혜,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무지했어라.

햇빛이 바다를 비출 때
나는 그대를 생각하노라
달 그림자 샘에 어릴 때
나는 그대를 생각하노라
먼 길 위에 먼지 자욱이 일 때
나는 그대 모습 보노라
깊은 밤 좁은 길을 나그네가 지날 때
나는 그대 모습 보노라

<낙엽/예이츠>

This Post Has 3 Comments

  1. 예이츠의 시.. 참 오랜만에 읽는군요..
    시에 어울리는 기억입니다.
    섬세하고 여린 분같아요..

  2. 여인

    예이츠의 이 시를 읽고 나서 쓴 글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시도 모르지만, 다른 나라 특히 머나먼 이국의 시는 더더욱 모르겠는데… 이 시는 마음이 들더군요.

    저는 섬세하고 여렸으면 합니다만… 그런 것보다 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비겁함이나 우유부단이 아닌가 합니다. 섬세하고 여린 것은 자신을 벨 수는 있어도 타인을 해하지는 않지만, 비겁이나 우유부담함은 자신과 타인을 다 다치게 하지요.

    이 글은 하나의 반성문입니다.

  3. 旅인

    체인징파트너 08.10.25. 09:45
    햐!~ 이류님 글은 일단 제목부터 어쩜 그리 구미가 당기게 잘 정한다요 올려놓은 글 하나하나…첨엔 이류님이 여성분인줄 알았어요 ^^ 글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볼게요
    ┗ 이류 08.10.25. 10:48
    예이츠 시의 첫 구절입니다. 죄송^^
    ┗ 체인징파트너 08.10.25. 16:18
    이류님 글 전부가 제목이 좋단 얘기에요^^;;
    ┗ 이류 08.10.25. 17:39
    그러고 보니 지금도 사용하는 아이디는 여인(旅인)입니다.

    유리알 유희 08.10.26. 01:08
    이류님! 이 글은 아껴 두었다가 내일쯤 읽을게요. 내일은 돈벌러 가지 읺거든요. ㅎㅎ

    유리알 유희 08.10.26. 14:52
    님의 글을 읽는 걸로 휴무를 시작합니다. 감탄합니다. 한편의 성장소설을 읽는 듯, 비슷한 시절을 살았지만 제게는 이런 추억도 없으니 쓸쓸합니다. 다만 성냥게비를 가지고 기다림의 틈새를 메웠던 기억만이 떠오르네요. 전락이라고 펼치고 싶은 시각입니다. 근데 책들은 어디로 살살 도망가 버리는지, 전락도 조르바도 찾을 수 없어라. 느긋한 휴일 보내시길요.
    ┗ 이류 08.10.26. 16:54
    성냥개피로 기다림의 틈새를 메우셨다면… 무엇을 기다리셨는지요? 혹시….? 저도 최근에 책들을 다시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책은 너무 비쌉니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것 같습니다.

    truth 08.10.27. 1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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