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것에 대한 경쾌하고도 음울한 몽상

  1과 담배.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담배를 피우면 못다한 일들의 앙금이 보이고 그 밑의 구겨진 신문을 밟고 뒤늦게 온 봄이 지하철로 내려갔다. 여기는 사호선이 멈추어선 밑바닥 7센치 즈음. 가벼운 것들은 희미하게 사라져 버리되 무거운 것들은 땀을 흘린다. 압축과 정제와 여과의 형식이 시간이라 했지만, 나의 존재는 그저 무용지물일 뿐이었고, 나의 시력과 감각은 사물의 경중을 가릴 수가 없다.

  2와 소금.

시간은 사물의 싱거움에 반하여 몹시 짜고 굵다. 미래는 늘 과거 위에 포개지고, 현재는 한치의 빈틈도 없어 그 사이에 무늬를 수놓았다. <기억이었다.> 아내는 추억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렸고, 나의 이름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는 것을 오래 전에 알았다. <쁘와레>의 마담은 자기 취향으로 술집을 꾸미고 거만하게 다가와 자신의 모든 세월이 추억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추억이 온갖 세월이기에는 47분짜리 CD분량. 사랑은 그렇게 짧고 푸념은 남은 세월을 값싸게 하겠거니와 오늘 만은 당신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그 말은 결국은 여기도 항구의 뒷골목에 불과했다는 반증이었다.

  3과 3/7.

읽어보지 못한 책 속의 132페이지와 3/7에는 날아가는 것들의 불확정적 자아의 소멸에 관한 연금술에 대하여 쓰여 있지만, 그것을 읽을 즈음에는 무게를 둘러싼 집요한 논쟁에 휩쓸리고 있었다. 무게란? 너무나 가벼워 날아 가버릴 지도 모르는 모든 것들, 추락하지 못한 시금털털한 조락에 불과한 것들, 가령 불순한 정신의 화합물을 꾸겨 담아 놓은 영혼이라는 봉지에는 한낱 욕정의 부산물인 사랑이 폐기된 채 부패하고 있었고, 탈구된 일상의 그림자인 나의 인생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햇빛과 부뚜막을, 하다못해 수채 구멍을 이해하도록 준엄하게 그들은 심판하였고 그만 그 무게에 나는 짓눌리고 말았던 것이다.

  4와 5%.

일이란 80%의 시간에 15%의 질료를 5%의 노동으로 용해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노동은 사소한 것은 아니며 모두가 그렇듯 삶의 무게만큼은 육중한 것이다.

  5그리고 사라지는 것.

나비는 단지 사라질 뿐이다. 웨스트포인트 연병장 옆에 가을이 오면 여름의 찬란했던 색은 꽃잎과 함께 바래어 희미해지고 날개는 더 이상 공기를 어깨에 짊어질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집요한 가을 태양이 가슴과 머리와 생식기관 속으로 쑤시고 들어와 세포를 낱낱이 갈라놓으면 드디어 가을바람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그러면 나비는 웨스트포인트의 병영 속으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 뿐이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유리알 유희 08.10.21. 01:36
    헉! 이런 형식을 무어라고 해야 하남요? 하긴 무언들 어떠리. 몽상이 아니라 잠언으로 들립니다.
    ┗ 이류 08.10.21. 10:33
    이 글을 잡종입니다. 시를 쓰려다 실패한 것이고, 남의 글(블로그에서 본 탁월한 사람의 글)을 흉내내려다 추락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냄새가 나서 만족합니다.

    다리우스 08.10.21. 17:58
    독특한 항목식 열거 형식의 시,,,치밀한 밀도들이 느껴짐.
    ┗ 이류 08.10.21. 21:46
    날아가려다 추락한 것이니 밀도가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 다리우스 08.10.21. 22:55
    전 왜 추락한 것들이 오히려 좋지요? 헉~^^;

    러시아황녀 08.10.21. 21:36
    정통 시인들은 오히려 이런 류의 시를 부러워 합니다..
    ┗ 이류 08.10.21. 21:47
    그런 점에서 아마추어가 상당히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지건 08.10.22. 04:12
    ‘몽상’…..가슴 시리다…’몽’땅연필이 되도록…..’상’상을 끄적이다…이렇게 시린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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