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14 23:27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새벽 3시는 생각했던 것만큼 어둡지 않다.
오히려 그 내부는 빛으로 고동치고 있다.

<베갯머리 꿈 중에서>

이런 글을 보면, 내가 얼마나 가볍게 글을 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단 한줄의 이 글은 새벽 3시의 모든 것을 일깨워낼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새벽 3시란 어떠한 단어로도 규정될 수 없는 시간이면서도, 깨어있는 3시는 피로가 응결된 고통과 터무니없는 사유가 교차되는 그런 시각이다. 더 잘 것인가 아니면 커피를 한잔하면서 해가 뜰 7시를 기다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다.

3년전의 봄(2004.3.27), 토요일이었다. 불현듯 집에서 보낸 주말의 봄이 아까왔다. 아내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지만, 아이들 때문이라며, 친구와 함께 가라고 했다. 전화를 하자, 친구는 회사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옆의 시트에 올려놓고 차를 몰았다. 봄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갈 곳이 없는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길 가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어 옥녀탕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커피를 사서 휴게소 앞에서 햇빛을 받으며 마실 때, 휴게소 밑에 민박이 있는 것을 보았다. 민박은 개울가에 있었고, 휴게소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봄날의 오후 2시의 햇살이 개울 위에 펼쳐졌고, 옥녀탕 주변 경치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몹시 조용했다.

멀리 갈 것 없이 거기에서 하루 밤을 보내기로 했다.

민박집 방에서 나는 이른 봄날의 늘어진 낮잠을 잤던 모양이었다. 낮잠 사이로 민박집에 사람들이 드는 지 소란스러웠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민박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녁이 되어 원통으로 가서 바위돌도 소화를 해내는 외박 나온 육군장병을 상대로 하는 것이 뻔한 식당에 들어갔다. 양으로 승부하는 식당의 밥은 맛이 없었다. 저녁을 반도 못 먹고 민박으로 돌아왔다.

밤은 이미 민박집과 휴게소를 덮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휴게소의 불빛이 하나 둘씩 꺼지더니 나의 방에만 불빛이 남았다.

TV를 켜고 <칼의 노래>를 읽었다. 김훈의 글은 잘 벼려진 칼처럼 가슴 속을 파고 들었다. 글에서 자꾸 냄새가 났다. 메주 뜨는 냄새, 옷섶에서 나는 냄새, 씻지 않은 여자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강고한 역사 속을 비집고 나온 비린내들.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한계령을 넘고 동해를 따라 남진하여 대관령으로 해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잠을 자야 했다. TV에서는 탄핵시국토론회를 하고 있다. 잠시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1시 30분, 자다깨다를 몇번이나 해도 2시가 채 못되었다. 속이 쓰렸지만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책을 읽는다. 눈이 아프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버려졌다고 느꼈다.

밖의 밤은 강렬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늘의 별들이 아드득거리며 아득한 공간을 십의 몇승이라는 속도로 치달리고 있었고, 지구가 빠드득거리며 자전하고 있었다.

더러운 전쟁에서 영웅이란 적에 의해 부여된 비참한 이름이라는 것, 김훈에 의하여 인간으로 조합된 이순신을 읽으며 어지러웠다. 사백년 전에 치루어진 전쟁 때문에 어지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휴게소 앞의 도로로 올라갔다. 그리고 밤의 무수한 색깔을 보았고, 새벽이 한계령을 넘어오는 냄새를 맡았다.

새벽 3시였다.

2007/03/14 23:27에 旅인...face
2007/03/14 23:27 2007/03/1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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