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린투스;Cerinthus

Cerinthus(c. 100AD)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한일서 4:2)는 가현설을 부정하는 언명이다. 즉 그리스도인 예수는 인간의 육체로 와서, 가르침을 펼치고, 그 육체로 십자가를 감당하여 죽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시몬 마구스(사도행전 8:5~25)를 최초의 영지주의자로 몰아 세우려고 하지만, 시몬 마구스는 단순한 요술가 또는 사기꾼에 불과할 뿐 어떠한 신학적인 사유도 없다. 또한 니골라당(요한계시록 2:6, 15~17)을 영지주의분파로 내세우고 있으나, 명료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케린투스는 최초로 기독교 복음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했던 영지주의자다.

그는 이교도의 창시자로 초기교부 사이에 유명함. 초기의 기독교에 반하여 케린투스 학파는 유대의 법을 따랐으며, 유대의 교리에 입각한 복음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들은 최고의 신이 물질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에 반대하며, 예수의 신성에 대하여 거부한다. 케린투스의 해석에 입각하면, 그리스도는 세례시 예수에게 들어갔으며, 그의 가르침을 이끌었고, 십자가의 고난 시 예수의 몸에서 떠났다고 한다.

그는 예수가 재림 후에 감각적인 열락에 가득한 천년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가르쳤는데, 그의 가르침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포된다. 케린투스는 마태복음의 한 종류를 경전으로 사용했다.

케린투스는 기독교가 유대의 전통과 연결되어 있던 시기로, 기독교 신학 안으로 그리스적 사유가 자리잡지 못한 시기다. 즉 기독교가 아직 유대교의 분파로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의 유대율법과의 연계와 예수에 대한 완곡한 평가는 에비온파나 다른 유대-기독교 종파와 비슷하다.

세계의 창조자를 데미우르고스라고 하는 그의 정의는 그리스의 이원론를 수용하면서, 향후의 영지주의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肉이 없는 靈이나 사람인 예수의 몸에 잠시 머물렀다고 하는 설명은 후에 발렌티누스의 영지주의와 이어진다.

초기 기독교의 전승에서는 케린투스를 요한복음을 쓴 사도요한과 동시대의 인물이며, 신학적으로 반대 입장에 서 있다고 봄.


이 글의 내용을 보면, AD100년경에 이미 성경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으며, 기독교가 아직 유대교에서 독립된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유대교의 분파로 존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 등에서 보면, 예수의 열두제자의 행적은 거의 예루살렘 주변 부위에서 머물고 있으며, 후반으로 가면 바울만 남고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제자의 이름은 포맷되어 실종된다.

이는 바울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와 예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유대-기독교 간의 균열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 또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