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스타크루즈(물고기좌를 타고서)

짧은 행복. 아쉽게도 긴 행복이란 없다.

아내는 <코타키나바루>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코딱지나 파라>라는 어감으로 다가오는 그 곳은 해변인지 산인지도 모르겠고 무척 심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번 생각해 보자 하고 얼버무리고 회사에 나갔고, 1999년의 여름도 빌딩의 틈새에서 에어컨이나 쐬며 아무 변화도 없이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배>를 보았으리라. 좁은 빅토리아 하버를 뚫고 입항하는 배, 그것은 아침 해를 받으며 들어오고 저녁 해에 비키며 항만을 빠져 나가곤 했다.

그 배가 접안을 하면 하버의 건너편, 침사추이의 마주 보이던 오션 쎈타(Ocean Centre)는 가려지고 너무 커서 움직이지 않고 항상 그 곳에 배가 있었던 것 마냥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배>를 타자고 했다.

아내는 <배애~>라고 볼 멘 소리를 한 후, <배 타고서 어디를 가는 데?> 라고 물었다.

<어디를 간다기 보다, 배를 타 본다는 것도 여행 아닌가?>

맞았다. 관광이 아닌 여행! 나는 관광이라는 것이 싫었다. 뭔가를 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관광보다는 그냥 흘러간다는 여행이 좋았다.

그 전 해에 마카오의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보낸 삼일 간의 휴가는 관광을 목적하지 않았기에 아주 달콤했고, 포르투갈 포도주와 음식 맛은 떫고도 매혹적이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파스텔톤의 마카오 거리를 산보하듯 걸었고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며 미지근한 풀장에 몸을 밀어넣기도 했다.

휴가기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나는 스타크루즈의 객실(Cabin)을 예약해야만 했다. 빨리 예약을 하면 객실의 할인율이 높았다. 그러나 케빈을 예약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케빈이 없다기 보다, 우리 식구의 구미에 맞는 객실을 스타크루즈에서는 고의적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 한 식구는 4명인 데, 4인실의 케빈(Inside Stateroom Quad)은 배의 안쪽에 위치하여 바다를 볼 수가 없다. 반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선측에 위치한 케빈들은 스위트 룸으로 몹시 비싸거나 아니면 3인실(Deluxe Stateroom)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수를 써 보아도 안되어 할 수 없이 케빈을 창측의 3인실과 내측의 2인실 둘을 빌리기로 했다. 요금은 도합 구십만원에서 백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기억하기로는 그 때 홍콩에서 베트남의 하룽베이로 가는 4박5일의 항로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코스는 가을에 재개되고, 단지 공해 상으로 나가는 1박2일 코스(주로 카지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연인들이 탑승)와 중국의 샤먼(廈門)으로 가는 2박3일(주로 경로용 또는 식구들이 탑승)의 코스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2박3일의 코스를 선택하였고, 샤먼에 있는 친구에게 <우리가 간다>라고 타전을 했다.

휴가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중국비자(접안항구의 국적 때문에 필요)를 받아 구룡 침사추이의 오션쎈타로 두시쯤 나갔다. 우리는 지리한 세관신고를 마치고 승선을 했을 때 거의 네시가 되었다. 하버의 건너편에서 보는 배와 바로 옆에서 보는 배의 규모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가 탔던 스타 파이시즈(Star Pisces: 물고기좌)는 그 때는 없었지만 새로 도입한 스타 버고(Star Virgo: 처녀좌)의 배수 톤수 76,800에 비하여 훨씬 적은 40,053에 불과했지만 바닷물이 배전을 두드리는 흘수부터 배의 꼭대기까지의 12층 이상이 되었고 그 위에 또 항법장치와 연기를 내뿜는 연통 등이 있었다.

우리는 커다란 벽의 장난같이 뚫린 문을 통과하여 배 안으로 들어갔다. 으리으리하다기 보다는 청결했고 밝았다. 6층에 있는 우리의 케빈은 2.5평(8.2 Sqm)으로 벽에 부착된 접이식의 침대가 3개 있었고 조그만 책상과 의자 그리고 화장실과 창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늑했다. 아들의 케빈은 몇실 안되는 독실로 바뀌어 있었다. 창이 있고 호젓하여 아들은 흡족해 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배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기 전에 우리의 케빈이 어디에 있는 가를 확실히 둘 필요가 있었다. 수치적으로 배의 길이는 177미터, 선폭이 29미터, 3층에서 12층까지 승객들이 돌아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엄청나게 컸다. 선실이 650개 하단의 침상수 1,109개(최대 1,700명까지 수용)로 통상 승객만 1,500명, 승무원이 약 750명이다. 이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갑판 위를 거닐고, 이곳 저곳을 둘러본 뒤, 8층 <해지는 큰 길>(Sunset Boulevard)로 나가자 정말 오후의 나른한 햇빛이 홍콩의 마천루의 벽에 부딪혀 금빛으로 발광을 하고 있었다. 오후 여섯시, 배는 닷줄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철제구조물이 얼어붙었던 결구를 푸는 키키키 소리가 울렸고, 피치를 올린 엔진소리가 쿵쿵쿵하며 역진 스크류를 돌렸고 선미에 물보라가 일었다. 출항하는 느낌은 마치 진도 2~3의 지진이 육중한 건물에 진동을 주듯 미약했고 니글거렸지만, 다가올 항해의 흥분이 그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게 만들었다. 그리고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자 배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홍콩섬이 뱃전으로 밀려나가는 듯 했다.

배가 출항을 하자 사람들은 저녁밥을 생각했다. 우리도 로비로 나가 우습게도 과연 공짜로 밥을 주느냐를 걱정하고 있었다. 로비에는 승무원의 조직도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배는 함장이 선박의 통제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호텔의 총지배인과 선장은 동일 위계에 놓여 있었다. 즉 배의 운항에 대한 권한은 선장에게, 객실의 운영은 총지배인으로 명확하게 갈려져 있고 상호 불가침의 묵계가 맺어져 있는 것 같았다.

저녁밥이 제공되었고 사람들은 홀로 밀려들어갔다. 침묵하던 사람들이 뷔페식 홀에 자리를 잡자 모두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접시를 들고 사람들이 움직였고 시끄러워졌다. 음식은 일류 호텔의 뷔페보다 더 다양했고 맛도 근사했다. 그 배에 탄 사람은 다 손님이거나 승객이었기에 식사 후 우리의 객실이 몇호이며 하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그 넓은 홀에 한국인은 우리뿐 인 것 같았다. 아니 배 안에 우리 만이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12층에 있는 선미 쪽의 풀장으로 가 멱을 감고 아내와 나는 상갑판으로 가 밤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배는 홍콩 앞 바다의 섬들을 밀어내며 난바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남국의 밤이 넓은 바다 저 편에서 몰려왔다.

별이 점차 빛을 발할 때, 상갑판에서 내려가 객실로 돌아갔지만 아이들은 배 안을 돌아다닐 생각에 골몰했다. 아이들을 보낸 후 아내와 나는 아래 층에 있는 카지노가 어떤 곳인지 보려고 갔다가 삼엄한 분위기에 다시 8층으로 올라가 <해지는 길>의 통로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맥주는 한병에 이천원(HKD15)을 조금 넘었다. 아내는 너무 싸다고 놀랐고, 나는 배가 파나마 기적으로 면세라서 싸다고 말해주었다. 맥주를 마신 후, 7층 구명정이 거치되어 있는 선측으로 나가 여름 밤의 미적지근한 바닷바람을 맞이했다. 평균 항속 18노트(약 35Km/H)의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고 검은 바다에서는 하얀 포말들이 일어나 저 멀리 육지 쪽으로 밀려갔다.

객실에 들어가 이층 침대를 내리자 무척 좁았지만, 잠을 자는 데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이 돌아오자 하루가 몹시 피곤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승선을 위하여 시간을 보내고, 출항을 기다리고 배 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한 것들이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딸 아이는 그냥 잠이 들었고 아내가 말했다. <정말 배타기를 잘 한 것 같아.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다음 날 아침이 밝자,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고 아침 바람은 차고 상쾌했다. 그러나 육지는 보이지 않았고 멀었다. 식당으로 가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 좀 한가했기에 우리는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천천히 골라먹을 수 있기에 음식들은 좀더 다양하고 맛이 어제보다 나았다. 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하듯 극장과 바(Bar)와 면세점 등을 둘러보고 도서실과 게임룸, 마작을 하는 공간 등을 보았다. 식당들도 여러 군데 보였는 데, 일식집의 경우 삼사천원(HKD20~30) 정도를 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 일식의 경우 급식단가가 높아 추가 요금을 내는 것 같았다.

여덟시인가 아홉시가 되자 배는 샤먼항으로 들어섰고, 우리는 배에서 내려 친구를 만나 관광을 한 후 오후 네시에 다시 승선을 했다.

배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배의 바닥에 있는 실내풀장과 자쿠지를 즐기기도 하고, 선실에서 책을 읽거나 했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그리고 밤이 지나면 홍콩으로 기항할 것이며, 여행이 끝난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아내는 <홍콩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한번 월남의 하룽베이도 가 보자?>고 했지만, 그 말이 나에겐 너무 막막하게 들렸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자 우리는 침사추이의 오션쎈타에서 하선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웃의 한국인들이 어땠냐고 물었고 우리는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좋았다고 했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밥>이 공짜고, 맥주는 이천원에 불과하며, 어떤 시설이 있다는 것 정도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와 <바다> 그리고 <하늘을 지나는 빛과 시간> 그 가운데 우리가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그 미묘한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버를 지나는 <그 배>를 우리 아이가 보았을 때, <아! 저 배!>하며 또 그 배가 어디론가 떠나며, 자신도 아득한 세상 속으로 떠날 것을 생각할 때, 항구에 저녁 불빛이 오르고 또 멀리서 온 상선이 닻을 내릴 때, <배>란 물 위에 떠서 어디론가로 가는 것만이 아닌 꿈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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