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01 14:38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사람들(I1)

사람이란 일반명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바치는 명사이다. 어떤 형식과 절차를 거쳐 그 특수성(이름)이 부여되고, 더 나아가 친구가 되기도 적이 되기도 하며, 혹은 애인이 되거나 가족이 되기도 한다.

여기 이란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잘 생겼다. 못생긴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차라리 쉽다. 유럽인처럼 생긴 사람들도 있고 인도사람이거나 혹은 어디에서 온 인종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은 명랑하기도 혹은 너무 깊이 나를 응시하여 그들의 눈길을 피하게 되거나, 때론 사막을 배회하던 강탈자의 눈과 같이 그 눈길이 어둠 깊숙이 가라앉아 있기도 하다. 이들의 천차만별의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곳 젊은 아가씨의 눈은 시원하게 크고, 눈망울은 맑아서 도무지 사악하거나, 음울한 생각에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턱과 코에서는 어디에서 나오는 지 모르나 긍지와 같은 것이 배어있어서 차라리 도도해 보인다.

이들은 과도하게 친절하거나, 음흉하면서도 빛이 풍족한 땅에 살아서인지 사교적이다. 문제는 이들의 친절과 배려는 상대편의 입장에서 존중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해되고 베풀어진다는 점에서 나를 몹시 당혹케 했다.

우리의 60년대 친구의 집에 방문하여 그 집의 환대로 배가 터지도록 먹었음에도, 나름대로의 배려랍시고, 그 집의 어른들이 자신의 밥을 덜어 나의 국그릇에 말아주고 그것을 다 먹으라는 그 호의처럼, 그들의 친절과 배려를 수용하기가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나의 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던 아니면 고의적이던 나는 몇 번이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함으로써 상담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나곤 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을 너무도 수월하게 하는 경향이 있고, 정부 고위관리와 누구누구에 대한 안면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자랑이며,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반드시 확인하곤 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육칠십년대와 같은 사고가 아직도 팽배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과의 대화는 지루하고 신물이 날 수 밖에 없다.

반면 이들의 눈에 우리의 태도는 야박스럽지 않았을까?

냄새(I2)

여행의 두려움 중의 하나는 냄새다. 음식의 냄새, 사람들의 채취, 건물들에 배어 있는 냄새들이 유발하는 역겨움이다. 그 역겨움은 때로는 멀미가 일어나게도 하거나, 배가 고파 어쩔 줄 모르면서도 정중하게 음식을 사양하게도 만든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자신은 너무 익숙해져서 맡을 수 없지만, 저들에게는 너무 생소해서 역겨울 수 밖에 없는, 나의 몸에서 나는 채취이다.

람셰로 가는 길(E-R)

4일째 아침, 람셰(Ramsheh)공단으로 향한다. 7시 30분에 출발하기 위하여 6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식사를 마쳤다.

시간이 없다보니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Esfahan nesf-e jahan ast)이라는 도시를 볼 새도 없이, 낡은 거리를 지나 이스파한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자얀데 강(Zayandeh Rud) 위의 시오세폴(Sio Se Pol: 33pol) 다리를 보며 이스파한의 도심을 벗어났다.

비라도 올 듯, 날이 흐렸다.

차는 이스파한의 남쪽을 가로막고 서 있는 산의 옆을 지난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토양이 유실되어 바위와 암석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산은 전혀 자애롭지 않다(仁者樂山). 단지 두렵거나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음에도 영기가 서린 듯 보인다.

저들의 산을 보자, 셈족의 신의 명칭인 알(Al)과 엘(El)에 대한 의미를 알 것 같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고대의 신의 이름은 엘(El, Eloah)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신의 이름을 엘 샤다이(El-Shaddai: 산이나 바위의 신)라고 했다. 또 모세는 시나이 반도의 호렙산의 떨기나무에서 자신의 신,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협박)하는 신, 야훼를 만난다.

보이는 것이라곤 지평 밖에 없는 유목민에게 바위와 산이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이정표이다. 그것이 미래에 대한 예언이 되지 못할 지라도, 보이지 않는 축복된 땅에 대한 예언과 다가 올 안식을 알리는 이정표는 된다.

그래서 셈족은 우물과 샘과 바위를 자신들을 구원하는 신들로 생각했고, 유대인이 먼저 야훼를 하나의 신으로 믿기 시작한 이후에도, 사막을 건너는 베드윈들은 마호메트가 오기까지 오랫동안 무수한 바위와 자연들을 그들의 신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이란인들은 원래 불을 숭배하던 배화교의 민족이었다.

산을 넘자 또 일망무제의 평야가 시작된다. 그 들에 새싹들이 돋는지 갈색의 대지 위에 보일 듯 말 듯 푸른 빛이 보인다.

그리고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자 남쪽으로 뻗은 도로 외에는 모두 하얀색으로 변했고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를 알 수 없다.

까만 색으로 남쪽으로 줄 그어진 도로를 따라 우리는 하염없이 내려갔다. 때로 조그마한 소읍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우리가 람셰의 공장에 도착하자 눈은 그쳤고, 온갖 것을 뒤덮었던 눈은 녹았는 지 다시 누런 대지가 드러났다.

석류(R1)

어렸을 적에 그림을 통해서 보았거나 간혹 그 맛을 보기도 했겠지만, 석류에 대한 기억은 중학교 때가 처음이었던 듯 싶다. 이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된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때, 좌판에 놓인 석류를 보았다.

그것은 처절한 모습이었다. 청동의 이끼가 끼어있는 듯한 표피는 찢어져 있고 피를 머금은 씨앗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정물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골동품과 같은 석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한알씩 꺼내먹었다. 씨알들은 앵두보다 작았지만, 그 달콤함과 서늘한 신맛은 강렬했다.

집에 돌아가자 어머니는 내 손에 들려져 있는 석류의 조각과 여름 교복 위에 흘린 과즙의 자국을 보고 “빨래를 하면 지워질까?”하고 걱정을 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그 후 석류의 맛에 대한 매혹적인 기억은 남았지만, 더 이상 석류를 볼 수도, 구할 수도 없었다.

사라진 맛에 대한 기억은 집요한 것이어서, 늘 고노와다(해삼창자젓)와 석류를 먹고 싶었다. 그 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면 고노와다는 간간히 먹을 수가 있었지만, 석류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5년이 지난 후 홍콩의 백화점이었다.

거기에서 <지상의 양식>에서 읽은 기억나는 타마린드 열매를 샀고, 그 옆에서 혹시나 석류가 아닐까 싶은 과일을 발견하여 집으로 가지고 왔다.

타마린드는 열대(북아프리카)에서 나는 열매인지라 끈적거렸고 달기만 한 것이, 곳감 맛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영문이름을 몰라 혹시나 하고 사온 석류를 쪼개보니, 석류가 맞았다. 씨알을 꺼내 먹으니 기억처럼 새큼하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적의 그 맛이 살아났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보니 석류가 수입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나는 석류가 서역에서 들어온 과일인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왜 우리나라에서 다산의 상징으로 애지중지하던 석류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을까?

이란에 도착하여 나는 석류를 찾았지만, 거리의 상점에는 없었다. 겨울인 탓일께다.

나는 람셰의 공장에서 석류를 대접받았다.

석류의 과즙을 빨아먹고 씨앗을 뱉았다. 그들은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더니, 내가 불경스러운 짓이나 한 것처럼, 아니면 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하여 힐난이라도 하는 것처럼, 왜 씨앗을 뱉아내느냐고 물었다. 석류는 씨앗을 먹어야 정력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쉽게 아이들을 갖는다고 했다.

나는 석류의 과즙을 빨아먹고, 씨앗들을 조용히 삼킨 후 그들을 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예배(R2)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공장에서 회의를 마치자 그들은 언제인지 모르게 양말을 벗었고, 얇은 옷만 입은 채 한쪽 방에서 한사람 씩 차례로 점심 예배를 올린다.

다양했던 그들의 모습은 예배를 올리는 동안 경건함으로 수렴되었고, 그런 경건함이 그들의 다양함을 하나의 신(Allah) 앞에 있게 했다. 뿌리없이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인샬라(Insh‘Allah), “신이 뜻하는 대로” 그들이 살아가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예배가 끝나자 그들은 만족스럽고 관대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자신들의 식탁으로 인도하였다.

2007/03/01 14:38에 旅인...face
2007/03/01 14:38 2007/03/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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