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07 23:06 : 벌레먹은 하루

예전에 연수원 앞의 건물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일주일 쯤 된 때, 점심을 먹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상한 나무 세 그루를 보았다. 그 나무들은 목이 잘린 채, 전봇대와 같은 황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무들의 밑둥은 보기만 해도, 목이 잘리기 이전에 얼마나 멋진 가지와 수많은 잎들로 그림자를 만들었고 의젓한 자태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을까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근무하던 동료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저 나무들은 저렇게 처참한 몰골을 하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지.”

그들의 말에 의하면, 연수원과 주변 건물의 나무를 보살피던 정원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정원과 화단을 가꾸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시무시한 사장이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저 나무들 가운데를 자르게.”

정원사는 멋지게 자란 세 그루의 미류나무들을 쳐다보며, 왜 사장이 저 나무들의 가운데를 자르라고 했을까 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사장에게 왜 자르라고 했는지 묻고 싶었으나, 너무도 무서워 물을 수가 없었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톱을 가져다가 세 그루의 나무의 중간이 어디인가를 잰 후, 그곳을 잘라버렸다.

그래서 그 나무들은 전봇대와 같은 몰골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난 후 때때로 그 나무들의 앙상한 그늘 아래에서 햇볕을 지우곤 했다. 왜 사장은 가운데를 자르라고 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크게 자라니 나뭇가지들이 서로 얽히고 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을 걱정한 사장은 세 그루 중 가운데 한 그루를 자르라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원사는 그 무시무시한 사장이 가운데를 자르라고 한 그 말대로, 그만 잘 자란 나무의 한 가운데를 자르게 되었고, 세 그루의 나무는 그만 추악한 몰골로 그 자리에서 목숨 만 연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연수를 받던 중 잠시 담배를 사러가다가 그 나무들이 있는가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그 나무들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연수를 받으면서, 지식이란 기업이 성장하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그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며, 커뮤니케이션은 상호 간에 평심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늘 우리를 압박하며, 결국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에 복종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원에 들어가서 수강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기업에서 목표로 하는 이윤창출을 위해서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식의 부족으로 기업이 성장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사람의 성장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파겁이라는 말이 있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수영이론을 아무리 배워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열심히 허우적거리다 보면 “어 뜨네?”하는 순간이 오고 그 다음부터 자신이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 후 조금씩 수영이 느는 것이다.

언젠가 수영장의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웃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육개월동안 열심히 수영을 배워 수영장을 세로로 두 번 왕복할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럼 왜 물에 안 들어가고 밖에만 계시냐고 했더니, 수영을 배운 후 얼마 안되어 어느 수영장에 가게 되었는 데, 그날따라 수영도 재미있고 잘되어 무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영장 한 가운데에서 힘이 빠져 더 이상 헤엄을 칠 수가 없어서 바닥에 발을 디뎌보니 바닥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에서야 자신이 얕은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웠다는 것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그러자 몸이 뻣뻣해졌고 허우적거리며 물을 꼴까닥 삼키게 되었고 결국은 사람살려! 라고 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자신이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아 거의 죽게 될 즈음에 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을 들어올리며 “여기 깊지 않아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어나 보니 물의 깊이가 가슴 높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물이 무서워졌고 대중탕에 들어갈 때조차 겁이 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파겁을 하지 못하면 영영 수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때, 정당하게 “사장님 잘 자라고 있는 나무의 가운데를 자르라니요?”라는 온당한 질문이 가능하고 “아참 내가 자네에게 말을 잘못했는데, 세 그루가 나란히 있으면 세 그루 다 잘 자라지 못하니 가운데 있는 나무를 베어버리라는 것이지.”라는 대화가 통하는 것이다.

이제 나무 세 그루 모두 다 사라진 정원에는 또 다른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번에 배운 연수원의 교육내용은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내가 다 아는 것이라면 그만큼의 업무성과가 나와야 할 것 같은 데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런 성과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란 무엇일까? 나 또한 두려움에 질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2006/09/07 23:06에 旅인...face
2006/09/07 23:06 2006/09/0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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