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16 17:19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Saipan ...

감각의 제국

사물의 이차적인 성질, 즉 색은 존재하지 않고 Impression만 있을 뿐이라고 할 때, 이 곳 사이판은 감각의 제국이다.

산호초(Coral Reef) 위에 솟아오른 이 섬의 바다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형언할 수 없는 색으로 시간들을 그리고 있다.

섬의 북단, 만세절벽(Banzai Cliff)에서 바다를 보면서 푸르름에 대해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파란색, 청색, 쪽빛, 군청색, Navy Blue... 등등의 단어로 묘사할 수 없는, 바다 그 본연의 빛을 보았다.

가장 강렬한 파람. 세상 모든 바다의 색이 여기에서 시작하여 번져나갔을 것 같은 파람이며, 그 빛깔 속에는 투명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바다의 근육을 보았다.

대일본제국은 귀축미영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결국 감각의 제국인 태평양과 싸우다 패배한 것이다. 그래서 2차 세계 대전의 국지전의 명칭이 "태평양전쟁"인 것이다. 이 찬란한 바다를 보면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미국에 항복하기 보다는 감각의 제국에 투항하기로 했을 뿐이다. 전범의 아들인 아키히토(明仁)가 집권 4년(평성 4년:1992년)에 세운 忠魂碑에는 뭐라고 쓰여있긴 하지만, 이 광막한 감각의 제국 앞에서는 무의미하며, 단지 쪽빛으로 열광하는 대양에 경배드리는 제단, 전망대로 전락할 뿐이다.

덴노 헤이까 반자이 - 오오가미이신 아미테라스의 자손이여! 뒈지지 말고 벽에 똥칠하며 영원히 살기를...!

관광과 여행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말하란다면, 이 곳 사이판은 관광은 할 수 있어도 여행은 불가능한 곳이다. 사색과 여유가 용납되지 않는 색들과 풍경의 소란스러움들이 스쳐지나면 열기와 습기와 정적만이 남는다. 그것은 지루함이다. 볼 것들(관광할 것들) 외에는 더 이상 볼 것 없는 이 섬에 오면, 사람들은  "삼일도 길어!"라는 식으로 자신이 이 섬에 있는 동안이 최선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극명한 풍광들을 잠시(오래 볼 경우 지루할 것임) 즐기던가, 그늘 아래서 휴식하던지, 바다놀이를 하든가 이다. 즉 관광과 레포츠의 땅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얼마만큼 자연과 친화성을 잃어버렸는 지를 알게 되었다. 자연과의 친화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루함과 단조로움,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가하는 태양과 그늘, 자신을 둘러싼 깊은 대양과 우선 악수를 해야만 한다.

남국의 바다를 상상했다면, 이 곳은 나의 상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풍광을 선사한다. 그러나 나의 상상 속에는 느슨한 인생들의 삶에 대한 애착없는 무기력함 또한 있었다.

그것마저도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 같다.

섬은 우리에게 상상할 때는 고독의 심상을 줄 지 몰라도, 거기에 있으면 고립감을 준다. 그래서 볼 뿐 아무 것도 느끼지는 못한다. 경험이 있을 뿐 사색은 없다. 종횡 23Km의 섬에서 생각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는 한, 남는 것은 지루함이다. 그것은 다양함 속에서 하나(나)로 내려앉는 고독이 아니라, 나와 여기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고립이다.

이 아름다움과 한가함 속에서 말할 것들이 이런 것 뿐 이라니...

그것은 나의 경험과 인식의 천박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행복이나 환희, 열광들로 부터 너무나 떨어져 버렸고 가슴을 열고 자연과 친교하지 못해서 이리라.

마나가하 섬의 산호 해변에서 열대어와 함께 멱을 감다가 마지막 배를 타러 야자수 밑으로 선착장으로 다가갔을 때, 바다는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을은 선원의 얼굴 한편에서 하이얀 잇빨을 보았을 때, 남국의 훈풍이 뱃전을 두드렸고 더 이상 오늘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2004/07/16 17:19에 旅인...face
2004/07/16 17:19 2004/07/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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