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29 13:54 : 찻집의 오후는

밤 10시 반, 일을 끝냈다. 아니 하던 일을 접었다. 하루종일 내리던 장대비는 이제 가랑비가 되어 있었다. 맥주를 한 잔 했다. 11시 반. 택시를 탔다. 택시는 강북 강변대로로 올라섰다. 불야의 도시가 뿜어대는 불빛이 어둠과 섞여 강물 위로 흘러간다. 강물은 호우에 잠겨 교각의 목구멍까지 물에 차오르고 고수부지에 심어진 나무 밑둥은 물에 잠겼다. 강은 넓었다. 잠실대교 부근의 한강 고수부지에 배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 또한 강물에 잠겼다. 그러나 네온은 꺼지지 않은 채 불을 밝히고 있었고 건물은 넘실대는 강물에 실려 멀리 출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 큰 비가 왔고, 하교 길에 미 대사관에서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으로 건너가는 광화문로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물은 정강이까지 차올랐다. 길을 건너 집으로 가다 공사 중이던 웅덩이에 빠져 그나마 흠뻑 젖었던 책이며 공책이 걸레가 되어버렸다. 다음 날인가 학교에 갔더니 먼 동네에 사는 몇몇 아이들이 비와 함께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져 내렸다고 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나이가 든 뒤 뉴스에서 울릉도 바로 옆에서 발생한 용오름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다에서 하늘로 용이 승천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중학교 이학년 때, 우리 집은 멀리 서강의 언덕배기에 있었다. 그 해 여름인가 가을에 내리기 시작한  비(1972년 대홍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삼일인가를 내렸다. 산 아래 마을이 물에 차오르더니 지붕 만 보이기 시작했다. 창 가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는데, 몇몇 집은 차오른 물에 견디지 못하여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비가 그쳐서 와우산으로 올라갔다. 물이 점령한 서울이 보였다. 온통 물이었다. 한강이 범람한 합정동과 망원동의 개량가옥의 지붕들만 무논의 모자락처럼 보였다. 간혹 강변도로가 짧은 선분을 그리며 물 위로 떠오르기도 했고 아득한 물길 위로 집이나 돼지와 같은 것들이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햇빛이 대지를 뒤덮은 너른 물 위를 비추기 시작했다. 와우산에 올라와 홍수를 구경하던 모든 사람이 아~하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의 느낌은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 칠주야의 비 끝에 하늘이 열리며 처음으로 맞이하던 그 햇빛, 이제 홍수가 끝이 나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검붉은 땅이 맑은 햇빛에 드러날 것이라는 예언의 그 빛이었다.

합정동은 서울의 우물이 모인다는 낮은 곳이었다. 1984년 우리 집은 서울의 반대편에 있는 아파트를 샀고, 합정동의 집을 복덕방에 내 놓은 지 얼마되지 않아 비(1984년 대홍수)가 내렸다.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쏴아쏴아 하루종일 내렸고, 저녁이 되자 통장이 절두산 옆으로 한강으로 물이 빠지는 놋깡에서 강물이 역류되어 들어오니 피신을 하라고 다급하게 문을 두드려 댔다. 그 소리를 듣고 문 밖으로 나가니 집 앞 공터에 이미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어느 쪽 땅이 더 높아 피신하기에 좋은 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가 침수가 될 경우 잘 곳이라도 정해야 하니 여관방이라도 잡아 놓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방에서 책상을 꺼내 물에 젖으면 안될 것들을 올려놓고 계셨다. 물은 점점 차오르고 나는 대피가 가능한 수위를 가늠하기 위하여 공터로 나가 배꼽 높이가 되려면 집 마당에서 몇 번째 계단까지 물이 차오르는가를 들락날락하며 재었고, 조금 지나자 그 높이가 되는 두 번째 계단까지 물이 차올랐다. 대피하자고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는 집에 계시겠다고 했고 나는 가슴 높이가 되는 곳이 마지막 계단이기 때문에 그 전에 피해야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관에나 가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물이 차오르자 몹시 추었다. 나는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물이 계단에 금을 그리며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물이 마지막 계단을 삼켰고 현관에 놓여 있던 신발을 치워야 했다. “아버지 이제는 대피할 수 없으니 마루에 물이 들면 경찰이라도 불러야 해요”라고 말한 후, 전화기를 들었다. 아직 전화기의 신호는 뛰~하고 살아있었다. 나는 현관에서 마루 위로 차오르는 물을 지켜보았다. 물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마루로 차오르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지만 한동안 한 지점에서 멈추어있더니 힘이 빠진 듯 흔들흔들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물이 빠져요, 물이 빠져. 이제 우리 살았나 봐요.” 새벽 두세 시까지의 그 긴박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지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직도 집 앞 공터에는 물이 무릎까지 차 올라 회사로 전화를 했다. “집이 침수되어 회사를 갈 수가 없네요.” 전화를 끊고 공터 옆으로 절두산 쪽으로 난 길 쪽으로 가보니 물이 개울처럼 도로 위로 흘렀다. 오후가 되자 마당이 드러났다. 평소에도 물이 차곤 했던 지하실 때문에 사두었던 모타펌프를 틀어 한두시간 쯤 지하실에 꽉 찬 물을 빼내고 부삽으로 남은 물을 양동이에 퍼 담아 내다버렸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출근을 했고 직장에서 졸지에 수재민 취급을 받았다. 얼마 후 북한에서 구호물자로 쌀이 들어왔다. 통장은 우리 집의 문을 두드리더니 “이 집은 웬만큼 사니까... 구호미는 저쪽 동네에 줍시다.”라고 떠들고 돌아갔다. 그래서 북한 쌀로 지은 밥도 못 먹고, 통일벼로 지은 그 맛없는 이밥을 먹어야만 했다. 가을에 집이 팔렸다. 어머니는 물든 집이라서 천만원을 깎아주고 간신히 팔았다고 말씀했고, 우리는 이삿짐을 쌓아야만 했다.

밤으로 넘실대는 강물을 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한강에 대한 경외심을 맞이했다. 성수대교를 지나자 건너편 올림픽대로 위로 켜진 가로등이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희뿌옇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자 만수된 강물이 교각 아래를 흘러가며 자신의 근육을 내보였다.

아침이 되자 어제 피어오르던 물안개가 뚝을 넘어 서울을 온통 안개로 채우기 시작했다.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서울은 장마권를 벗어났으며, 오늘 낮 기온은 28도입니다.”

2006/07/29 13:54에 旅인...face
2006/07/29 13:54 2006/07/2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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