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만족 vs 고객

아침에서 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교육에 붙들려 있다. 직장의 교육이란 그 내용이 대충은 살벌하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고객의 만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략목표를 세분화해야…

이러한 교육을 받으면 삶이란 치열한 투쟁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교육생은 자신이 투쟁의 도구로 이끌어지기를 원할까? 그러나 직장 내에서의 생존과 경쟁을 위하여 결국 성능 좋은 무기로 이용되어 지기를 택할 수 밖에 없다.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직장에서는 언어가 뒤틀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뒤틀린 언어가 사회에서는 의미분석이 없이 그대로 일상언어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고객만족>이라는 단어가 말이 만들어지면, 처음에는 그 회사에 있는 직원들은 <고객만족이라니? 이것은 무슨 말일까?>한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그 말의 내포된 의미가 <기업이윤 추구>의 도구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된다. 그러나 <고객만족>과 <이윤추구>라는 이율배반적인 명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로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고객>이란 <우리회사에 이익을 기여하는 존재>들로 개념이 정립된다. 이러면서 프라이비트 뱅킹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나같이 통장잔고가 딸랑거리는 사람은 무뚝뚝한 ATM기에 매달려 돈을 넣고 뺄 수 밖에 없으며, 새 통장을 만들 때나 창구의 직원과 눈을 한번 맞춰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백화점에서는 슈퍼 VIP고객 개념을 도입하는 반면, 우리는 인터넷이나 뒤져 좀더 값싸게 물건을 살 수 없나 하고 헤맨다. 그러니까 나는 <고객>과 <뭣도 아닌 놈> 사이를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고객>으로서 과거와 같은 <평등권>을 더 이상 향유할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나같은 놈은 만족시켜야 할 고객 축에 못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할인점의 점포수가 400개에 달하면 재래상권은 사멸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지금 할인점수는 300개를 넘어섰다. 앞으로 100개가 더 생기면 슈퍼는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슈퍼가 없어지면 영세상인들의 생계가 막연해진다는 것 외에도 납품업자마저 공급처가 제한되고 할인점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되어 자신이 누려야 할 이윤을 상당폭 할인점에 이전해야 한다. 그러면 과거에 분산되었던 이윤은 집중화되면서 중소납품업자는 이윤창출을 통한 재투자 여력을 상실할 뿐 아니라 생존에 급급하여 기업가 정신 또한 사라질 수 밖에 없고, 할인점에 집중된 이윤은 마땅한 투자 용처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생산된 富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만난 일본 굴지의 가전업체의 사람들도 이제는 가격주도권을 대형할인점에 빼앗겨 더 이상 <좋은 제품> 생산에 매진할 수 없고, <원가가 싼 제품>을 만드는 데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자신들이 한심스럽다고 한다.

때로 좋은 제품을 값싸게 샀을 때, 기뻐하기에 앞서 섬찟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에스콰이어나 금강제화에서 십몇만원을 주어야 할 구두가 할인점에서 사오만원 할 때, 과연 에스콰이어나 금강제화는 그 가격에 맞출 수가 있을까?

중국산 하이얼의 냉장고나 세탁기가 국내제품보다 30%의 가격으로 하이마트에 뿌려진다면 어떻게 국내기업은 경쟁할 것인가?

경기가 나쁘다고, 인건비가 너무 올랐다고, 3D 업종을 사람들이 기피한다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망해가고 있다고 하는 데, 거기에는 사회가 가진 문제도 있겠지만 이와 같이 창출된 이윤이 사회로 환류되지 못한 탓도 크다고 본다.

풍년인데도 지주가 소작으로 받은 쌀을 창고에 쌓아놓고 풀지 않아 보리고개를 맞이하듯…

무한경쟁의 사회에 살면서 멍청한 교육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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