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오페에 대한 단상

인간의 영성과 불모에 대한 조그만 이야기이자, 흔하디 흔한 기괴한 고백록을 통하여 구원의 부재를 실증적으로 느끼기 위한 소네트, 즉 칼리오페는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와 결혼했으되 아폴론과 야합하여 오르페우스와 리노스를 낳았으며, 스트리몬의 하신(河神)과 동침하여 트라키아의 왕이 된 레소스를 낳았는가에 대한 노래이다.


대학 1학년의 오월 어느 날, 불행하게도 나는 여자대학 축제에 초대되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모닥불을 운동장에 피워놓고 “자아! 지금부터 음악과 함께 젊음을 발산해 봅시다”라는 맨트와 함께 쿵쿵! 쾅쾅! <프라우드 메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이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전혀 예기치 못하게 나의 여자 친구마저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고, 주위의 공간은 낯설고 엄청난 크기로 넓어지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마저 귓속에서는 물먹은 듯 낮게 웅얼거렸다. 고적감이라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몰랐다.

나는 춤을 추지 못했고, 엉거주춤 춤을 추는 사람들 속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친구가 물었다.

– 왜? 춤 못춰?
– 그래, 출 줄 몰라.
– 너도 못하는 것이 있니?

그녀의 말 속에 야릇한 적의와 경멸과 아울러 승리의 도취감같은 것을 읽었다. 춤을 추어대는 사람들 틈을 뚫고 운동장 가의 어둡고 라일락 향기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벤치로 가서 앉았다.

오월의 밤 공기는 축제의 열기를 적당히 녹여냈고, 음악소리는 꽃향기와 바람 결에 데시벨이 낮아져 공터의 곡마단의 천막을 새어나오는 음악처럼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혼란스럽던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심호흡했다. 아카시아 향내와 함께 흙내음이 피어오르며 곧 여름이 다가오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 속에 몸을 밀어넣은 채 담배를 피워물자, 모닥불과 조명불이 머무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몸을 비비적대며 흔들고 있는 것이 흑백영화처럼 아련하고 나른했다.

음악이 끝나자, 한떼의 사람들이 달짝지근한 열기를 뿜으며 나에게 몰려왔다. 한결 친숙해진 웃음소리와 콧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여자 친구의 목소리는 유쾌함에 들뜬 듯 유난히 크고 높았다. 한참을 떠들어 대던,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 고고장에 한번도 안가봤어?

그 질문은 침울한 외로움에 깃든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한 동정심 따위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약점을 건드림으로써 야비하게도 흔쾌함을 누리겠다는 저의가 있었기에, 나는 흥분하기보다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 몇번은 가 봤겠지. 그러나 춤을 출 필요는 없었지.
– 몇번이라니?
– 내가 비록 금욕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해도 친구들이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어. 그렇지만 억지로 춤을 추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어.
– 그거 거짓말이지?
–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 뭐.

사실 <고고장>이라는 곳엔 한번도 가 보질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집요한 물음 속에 깃든 “네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재수를 하면서 고고장에도 다니고 그랬다. 임마!”라는 치졸한 그녀의 방백을 그대로 방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보였던 나에 대한 적의와 경멸은 아마도 현대사회로 주춤주춤 진입하려던 70년대말의 근거없는 보수성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어린 나를 만난다는 것에 아마도 수치심을 느꼈던 것 같다. 수치심이 비롯된 나에 대하여 그녀는 증오심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나의 치부를 노골화시켜 모욕하고 걷어차 버리고자 했는 지도 모른다.

나는 교활하고 비열했기 때문에, 유치한 수치심에 시달리면서도 나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그녀의 모순된 행동 속에서 결국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과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얄팍한 만남 속에서 일말의 변태적인 양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자학적인 상태였고, 나는 아직 사랑이라는 것이 필요치 않은 미숙 속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열기에 들뜬 그녀의 적개심에 대하여 무덤덤하지만, 애처로운 심정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때로 우리가 어린 것을 인정하고 사랑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도록 기다리자고, 말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정도로 진도도 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랑이 휩쓸고 다가 올 광기에 대하여 지레 겁을 먹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단지 지이드의 <좁은 문>을 읽어보라고 했다. 특히 <엘리사의 일기> 부분에 대해서 주목해 보라고 했다.

그녀는 다 읽은 후, 예쁘고 순진한 얼굴을 만들어가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나의 의도와 영 빗나가 있었다. 그때에는 잘 표현할 수 없었지만 엘리사는 사촌동생 제롬에 대한 사랑을 어거지로 신이라는 기표변화를 시킴으로써 <좁은 문>으로 들어서려 했으나, 그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국 세속적인 지옥을 맞이했고 그로 인하여 제롬의 삶마저 망쳐버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분노에 들떠 나는 그녀에게 희랍의 시인이 쓴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어린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같다. 사랑은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능금이 익듯 자연스레 여물며, 그 강렬함에 끌려 육체적인 결합이 이루어졌을 때 완결되는 것이라고 그 소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토로했던 것 같다.

나는 어떠했느냐 하면, 남녀 간의 교제에 대하여 그것은 일과성이라고 보면서도 내가 매료되었던 영화나 소설 속에서의 사랑을 꿈꾸었고, 그런 사랑은 나에게 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음울하고 퇴폐적 몽상에 빠져 있을 즈음에, 내가 <산 속에 사는 쾌락주의자>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르쿠제>의 에피쿠로스에 대한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했던 금욕주의는 <아타락시아>와 부합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말하는 <아타락시아>야 말로 감각적이고 순간적 쾌락을 부정하고, 지고선인 쾌락은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형태라는 것이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고등학교 내내 나도 그런 상태를 추구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조화와 정적>이라는 나 나름대로의 단어로 표현하곤 했었다. 쾌락주의자로 나를 이끈 것은 아마도 <헤세>이거나, <노자>이거나, 합정동에 깃들었던 <노을>이거나, 순교자의 묘지에 그림자로 서 있던 <미루나무>이거나, 아니면 그 모두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나의 대부분의 언어는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혹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들은 때때로 나에게 <전에 네가 이야기했잖아?>라고 했고, 나는 그것은 <네가 한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말해주어야만 했다.

그러니 젊은 쾌락주의자인 나에게 <춤>이란 하나의 열광이며, 광기에 불과했으며, <조화와 정적> 속에 깃들려고 하는 젊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의식에 불과했다. 이런 디오니소스적인 광란은 결국 트라키아 여인들에 의하여 갈가리 찢기어져 강물에 버려진 올페에 의하여 창도된 <오르페우스교> 속으로 습합되면서, 올리브 숲을 배회하던 교도들의 행렬은 알 수 없는 정적에 휩쌓여 숲의 새소리마저도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그들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이 영적 존재로서 불사와 영원의 행복을 얻는다는 <그리스도교>적인 교의를 믿고 있었으며, 그들은 이미 현상계와 이데아계를 교리 내에 간직하고 있었고, 피타고라스 학파 또한 오르페우스교의 한 지파로 수적 균제와 음악적 조화가 우주적 질서 속에서 형성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축제가 끝난 후 얼마되지 않아 그녀는 자신의 수치심에서 부터 벗어날 묘안을 강구해 내었다. 그것은 우습게도 서로 친구가 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깟 한살을 가지고 왜 그렇게 부담을 느끼냐고 했지만, 자신의 생일이 4월로 물경 18개월이나 일찍 태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가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타락>이었다. 알량한 수치심을 회피하고 미적지근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하여 <연인>으로 발전할 기회를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관계를 지속하려면 나는 더 이상 만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다보면 다시 연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그녀의 요구에 못 이겨 그만 친구가 되기로 수락했다.

내가 <그래, 할 수 없지 네 말대로 하기로 하지.>라고 말하자, 더 이상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높은 선반에서 굴러 떨어져 그만 하찮은 여자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집에 까지 바래다 주던 관례를 그날로 깨버리고, 학교 앞에서 그녀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싸구려 전축에 라벨의 볼레로를 걸었다. 하도 많이 들어서 때로 뚝!하고 골을 타고 넘거나 치익치익대던 그 LP판을 몇번인가 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여자나 사랑에 대하여 걸었던 기대가 얼마나 황당한 것들인가에 대해서 알았다. 지고한 사랑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시는 세속에 절어 있으며 연인들이란 형편없는 허구와 편견 속에서 자신들의 옹졸한 자존심만 스다듬고 사는 형편없는 인간들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습기찬 골목을 배회하는 족속들과 하등 대차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 후 간혹 그녀를 만났고, 더 이상 그녀의 눈 속에서 적의에 찬 눈초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에게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남자가 되었기에, 그만 용도 폐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의도한 목적을 드디어 이루어냈던 것이다.

마른 하늘에 타들어가던 그해 여름, 드디어 늦장마가 왔다. 나는 창틀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보며 <황무지>에 쓸데없이 주석을 달았고, <파우스트>를 읽었지만, 그 의미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해 남은 여름방학을 노을을 바라보거나 산보를 하던지, 읽혀지지 않던 책들을 펼친 채, 늘 들어왔던 서곡들과 몇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지냈다. 지직거리던 LP판도 바꾸어야 했지만 조만간 전축은 부서질 듯 진공관이 깜빡거렸기에, 판이 거들나던지 전축이 부서지던지 그냥 죽치고 들었다.

그래도 명백한 것은 내 속에 깃들어 있던 분노와 무료함은 판이 돌아가면 갈수록 가라앉았다. 그리고 가을에는 더 이상 진공관에 불이 올라오지 않았기에 전축을 내다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청계천으로 나가 가난한 사람에게 적당한 중고 오디오를 샀고, 다시 LP판을 구하였지만 더 이상 음악을 즐기기 보다는 그저 간혹 소리가 듣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음악이 삭혀줄 치열한 분노와 무료함 또한 없었고 더 이상 사랑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음악은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 오페라와 뉴 에이지에 바늘을 멈추었다.

오르페우스의 어머니의 이름은 칼리오페이며,
그녀는 뮤즈 중에 가장 연장자이자,
곧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자로
詩를 관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올페를 詩人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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