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 국도를 따라 서울로 가고 있었다. 아침에 출발한 광천으로 부터 백리넘게 떨어진 신례원에서 잘 생각이었다. 장항선의 역이었음에도 신례원에는 잘만한 숙소가 없었다. 신례원은 역에 내린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기 위한 대합실마냥 썰렁하고 엉성했다. 신례원을 조금 지나자 밤이 도로 위에 내렸다. 낮에 내린 겨울비가 몸 속으로 스미고, 발바닥은 감각이 둔해졌지만 무릎으로 부터 관절이 부딪혀 덜걱이는 느낌이 거북스러웠다. 낮 동안의 햇빛과 겨울비가 뒤섞여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있어야 할 지점에 이정표는 없었다.

1977년 겨울

여행을 떠난 후, TV도 없는 여인숙과 하숙에 누워 천장에 걸린 알전구를 보며, 싸구려 벽지의 어긋난 문양을 맞춰보거나, 문풍지에 우는 겨울바람 소리를 들었다.

외로운 바람 소리 속에 국도를 달리는 트럭소리와 손님이 여인숙을 드나드는 소리가 섞였다.

그들은 돈벌이를 위하여 밤길을 달리거나, 아무도 모르는 저들만의 사랑을 하기 위하여 그 겨울 밤을 건너왔다. 저들의 은밀한 살냄새와 체온같은 것, 기나긴 불면의 밤 끝에 맞이하는 먼 동네의 아침, 그런 것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이불을 아무리 여며도, 구들이 뜨거워도 찬 바람은 내 옆에 누웠다. 베개 속의 쌀겨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벽 건너에 있을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잠에 들었다.

아침은 여지없이 왔고, 또 길을 걸었다. 아무런 흥미없이 길과 헐벗은 가로수들을 지났다. 21번 국도는 바다와 산과 실개천과 옹졸한 마을들을 펼쳐보였다. 마을을 지나는 시간을 가늠하며 식사를 했다. 마을에 식당이 없으면 다음 마을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며칠동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말 할 필요도 없었지만, 먹고 자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런 말을 해야만 했다. 짜장면주세요, 방 있어요? 얼마예요? 라는 극히 짧고도 명료한 말, 왜 도보여행을 해야 했는 지... 아무런 이유도 없다.

안개와 어둠의 끝에 온양에 다달았을 때, 그 날 걸은 길은 80킬로였다. 끙끙거리며 옷을 벗고 이불에 깃들자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웃는 웃음. 외롭고 싶어서 여행을 떠났지만, 외롭지 않았다. 줄곧 사랑과 분노, 희망 등을 생각하면서 걸었으나, 그것들과 아무런 연고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절망과 고독은? 아니었다. 명료한 것은 감정결핍이라는 것.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숭고한 감정과 타락 등의 것들을 내가 느낀다고 하여도, 그 속알맹이의 형식은 공허였다. 모든 감정들이 포말처럼 떠올랐다, 공허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성환에서 숙소를 정하고 낮잠을 잤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 막걸리를 반되시켰다. 서울에서의 한되 분량의 막걸리를 어거지로 다 먹었다. 피로 때문인지 체했다. 다음 날, 해(日)와 비(雨)가 오락가락했다. 길을 걸으며 온 몸을 떨다가 다시 식은 땀을 흘렸다. 몇시간 그렇게 걷자 멀미가 났다. 결국 수원에서 전철을 탈 수 밖에 없었다. 도보여행은 중지되었다.

도시의 어두운 뒷거리가 뺨을 스치고 지났다. 추위와 멀미를 느끼며 간혹 졸거나, 또 차를 바꿔 타고 난 뒤, 그 해의 여름날처럼 비칠거리며, 합정동의 기나긴 골목을 마침내 걸어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1978년 시작


<후기>

도보여행은 소년시기가 끝나가는 어느 날, 권태로움으로 행복과 열정을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머나먼 길에 부딪히면, 어디에서 어디까지 좌표를 정할 수 밖에 없어, 결국 자유를 포기하게 된다. 길의 마지막이 돌아감이라면, 우리는 변화될 수 없는 자신의 삶에 깃듦으로 해서 다가올 열정은 사라져 버리고 행복은 물 건너 가버리는 것이 된다.

조금만 옆 길로, 21번 국도를 벗어나 오른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더라면, 값싼 권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길과 대지가 손짓하는 온갖 유혹에 항복하기에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구속되어진 안정과 한 그릇의 밥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다.

21번 국도를 계속해서 걸음으로 해서, 방탕과 타락에 빠지지 않고 바람직한 자식으로 집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타락이 무엇인지를 결코 알지 못했다. 젊은 나날에 권태로움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죄악이었다.

유예된 이별을 마감하고 꼬불쳐 둔 사랑을 회떠 먹고자, 21번 국도를 지나 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갔다.

그러니까 고독과 우울과 절망은 관념이었을 뿐 전혀 현실적이지 못했다. 관념이 아니었다면 유예된 이별 속에 아직도 발라먹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던지......

2004/12/20 11:13에 旅인...face
2004/12/20 11:13 2004/12/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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