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27 11:34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그 해 겨울, 상사의 권고에 따라 간신히 다니던 회사에서 떨려났다. 언젠가 쫓겨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직을 하니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대책이 없는 나에게 사람들은 뭘 할 것이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 집요한 물음이 나를 피로하게 했다.

아내는 묻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했다. 아내는 내가 잠든 머리맡에서 불면으로 서성였고, 새벽에 잠들었다. 오후에는 거실 바닥을 내려보며 뭔가를 생각했다. 저녁이 다가오면 아내의 눈에 치열한 빛이 감돌았다. 치열한 그 눈빛을 보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나의 실직에 대하여 침묵했다.

더 이상 우리는 다가온 환난을 함께 헤쳐 나갈 만큼 사랑하거나 의지하거나 믿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대화를 안했고, 조금씩 미움을 키워왔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아내는 앞날에 대해서 짧게 물었다.
“좀 생각해 봐야겠어.”

클 만큼 큰 자식들은 소리없이 다가올 가난에 속수무책인 듯, 웃지도 않고 티브이를 멀건히 보거나,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시키지도 않는 공부를 했다.

집 안에 깃든 침묵은 나를 거실에서 집의 구석쟁이로 몰았고, 다시 집 밖으로 내 몰았다. 나도 불현듯 다가온 가난에 속수무책이라서 돈이 들지 않는 도서관과 근교의 산을 전전했고, 늦게 집에 들어갔다.

실직한 지, 한달 만에 아내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이라도 해야겠다고 했다. 가난은 심리의 문제다. 몇 년전의 간주퇴직으로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퇴직금이 들어온 통장은 어느 때보다 잔고가 많았다. 그럼에도 아내의 서랍에는 미납 공과금과 고지서가 쌓였다. 언젠가는 내야할 고지서를 들여다보던 아내는 한숨을 쉬며 현금인출카드를 나에게 건냈다.

“필요한 만큼 꺼내. 그리고 푹 쉬다 와.”

하루에 쓸 최소한의 돈이 얼마인가와 몇일을 보낼 것인가 몇 번이나 계산을 한 후, 돈을 뽑았고, 크리스마스 전날 호남선에 올랐다.

추수가 끝나고 잎이 진 들은 한없이 넓고 공허했다. 이유없이 들을 걷거나, 이유없이 차를 타고 이곳 저곳을 떠돌았다. 부둣가를 서성이다 선원이 되면 어떨까를 생각하기도 했고, 인부들이 일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란 꿈으로는 가능했지만, 현실에서는 모호했다.

바라본 세상은 들떠 있었다. 풍경은 아름답지 않았다. 깃들 수 있는 생의 나날들을 기억해 보았다. 없었다. 너무 게으르고 이기적이라서 삶에 다가온 시간들을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과 나누지 못하고 홀로 보내왔던 것이다.

아내에게 꽃 한송이 사다주지 못한 것처럼, 아이들과 손을 잡고 등산을 하거나 놀이터에 간 기억은 희미하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밤을 세며 이야기한 기억도 없다.

향기가 없는 나의 나날들은 자신에게는 올올할지 몰라도, 식구들과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날이 갈수록 희미해졌고, 무의미했다. 그것보다 더한 문제는, 그들의 나날들조차 나에게 가족과 친구라는 이름만으로 있을 뿐, 가슴 속에 와 차지 않았고, 무의미했다.

사랑과 우정과 생활의 모든 구석이 겨울 정원처럼 황폐와 먼지로 가득했던 것이다.

새해가 되려고 하자 메말랐던 남도 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길에 미끄러지는 시외버스에 앉아서도, 낯선 모텔에 불을 밝히고 천장을 바라보아도, 남은 날들에 대한 계획도, 가족들을 어떻게 안아줄 것인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지독한 감기가 들어 쿨쩍거리며 ㅎ읍에 들어서고 말았다. 아마 전설처럼 먼 세월로부터 뭔가를 끌어내서 망가져버린 오늘을 새롭게 생각해보려던 심사였는지도 모른다. 너무 소소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단 한 장의 편지 때문에 그곳으로 접어든 것이다.

젊었던 나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풍경에 취하여 더할 나위없는 고독에 빠져들었다. 그 고독은 황량한 것이 아니라, 뚜렷한 향기를 간직한 채 대나무 잎 끝에 바람으로 흔들리거나, 강 건너편 하얀 모래톱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외로움이 뼈저릴 정도로 따사로움을 간직한 채 다가온 것은 경이로웠다. 외로움 속에서 떠오른 그 향기의 뿌리를 알고 있었다.

배낭에서 우편엽서를 꺼내 풍경과 외로움에 대해서 썼다. “이런 감정이 언젠가 흘러가고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인 걸 어떡하지? 네가 내 옆에 없는데도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 없이, 모든 풍경들 속에서 너를 품을 수 있다니 이것은 기적이야. 그래서 이 엽서를 세상 모든 사람이 본다고 해도 이 말은 꼭 적어 넣고 싶어. 나는 너를 사랑해.” 쓰기를 마치자, 스무살의 수줍음에 주저하다 엽서를 부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안절부절 시외버스를 얻어 타고 우체국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이 바로 ㅎ읍이었다.

폭설 속에서 예전의 시외버스정류장 자리를 찾았을 때, 그 옆의 우체국이 없었고, 거기에는 이층짜리 은행이 있었다. 은행의 현금지급기로 잔고를 확인하니 십몇만원이 남아 있었다. 하루 일당도 안되는 현실 만이 디지털로 액정화면 위에 떠올랐다.

십만원을 꺼내 사만원 쯤 들어있는 지갑에 넣었다. 그 돈이라면 한 이틀 쯤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간다면? 잔고로 남아있는 몇 만원으로 한주일은 버틸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조금 더 미워하거나 기대할 것 없는 아침을 위하여 서로 등을 돌리고 잘 것이다.

ㅎ읍에서 엽서를 보낸 아가씨가 아내라는 것, 그 젊은 시절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아내라는 존재로부터 사랑의 향기를 발라낸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혐오스러운 작업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의 아가씨와 현재의 아내는 서로 다른 역사와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환상을 갖고 있다. 아내에게 그런 것처럼, 젊었던 나와 지금의 나 또한 다르다. 그래서 밤이 되면 어울리지 않는 네 사람이 같은 침대에 누워, 늙어버린 아내는 자신을 사랑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고, 세파에 찌들은 나는 엽서를 보냈던 그 아가씨와의 첫 키스를 생각한다. 아름다웠던 첫 키스와 포옹은 천년 전의 꿈처럼 사라지고, 등을 지고 자는 남편과 아내가 있을 뿐이며, 서로의 코고는 소리와 몸부림에 까칠한 불면을 맞이할 것이다.

이틀 후면 서울로 올라가 아내를 만날 것이다. 그러나 아내에게 해줄 말이 나에겐 없었다.

2007/06/27 11:34에 旅인...face
2007/06/27 11:34 2007/06/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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