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사에 대한 낡은 이야기

티파사로 가는 길을 생각했다.

드넓은 평원과 사막, 며칠이고 같은 길을 달리는 것과 같은 미혹 속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이 사발모양으로 대지를 내리덮고, 그 곳에 당도하면 그림자의 유혹이 그토록 강렬할 지를 처음으로 아는 곳. 그리하여 거기야 말로 모든 길이 자글거리며 녹아나는 지구의 막다른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티파사의 끝, 초원도 아니고 사막도 아닌 쪽으로 난 흙벽이, 대낮의 태양 빛에 바싹 말라 손만 대어도 바람결에 먼지가 되어버릴 냉차집, 붉은 무명의 차양 아래의 그늘로부터,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어느 지점에서, 나는 버스를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왜 티파사를 생각했던 것일까?

단지 몇 장면 만 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떠올렸는 지도 모른다. 티파니가 뉴욕5번가의 보석가게임에도, 아침이 아침식사로, 보석가게인 티파티가 근사한 식당으로 환유되면서 나는 배가 고팠고 약간의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묘하게도 버스가 달리고 있는 이 지점은 티파사와 티파니 사이의 중간 쯤이었다.

나는 상인이다. 아니 상인의 하수인이기 때문에 장사아치다. 불행한 일은 내겐 팔 물건이 없다. 무엇을 팔아야 하는 지를 모르면서 그저께서 부터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한 후,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으며, 갈증을 느끼며 세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서 길을 달리고 있다. 설령 팔아야 할 것에 대하여 명료하게 안다고 하여도 비싸게 팔 생각은 없다.

나의 주인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그는 형편없이 작았으며, 생김새 또한 꼴 같잖았다. 몇 년을 그의 밑에서 일하면서 그가 우리를 경멸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마님이 마당쇠를 우습게 보는 수준이라면 괜찮다.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했다.

처음에는 지껄여대는 그의 말에서 지린내가 나는 것은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탐욕 속에 경멸이 깃든 것을 알자, 그의 탐욕에 봉사하기를 포기했다. 탐욕이 채워지고 기업이 비대해지면 그는 더욱 기고만장해질 것이다. 그의 모욕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더러운 입을 나의 구둣발 밑에 놓아두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돈을 벌어다 주기 보다 기꺼이 그의 경멸과 모욕을 달게 받기로 결심했다.

그러니까 정당한 노력의 댓가보다는, 경멸과 모욕의 댓가로 봉급을 받기로 한 만큼, 나는 장사아치도 못되는 매춘부나 접대부이며 그의 충직한 간신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받는 봉급은 아부의 댓가, 팁인 것이다.

고객들은 내가 방문한다는 것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줄 것이 내겐 없다. 그들이 물량에 대하여 말하면 가격이 싸서 팔 수가 없다고 했고, 가격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물량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거래의 때가 아니며 다음에 보자고 했다. 한사코 사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제발 우리의 물건을 사서 써보라고 했다. 좀 싸게 줄 용의도 있노라고 말했다.

모든 상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상담이 저들에게 무료하고 지리했던 만큼 나에게는 피곤한 것이었다.

내가 그의 모욕에 복종하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보고해야 할 꺼리는 마련해야 했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인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그것은 내가 그에게 제공해야 할 아부라는 서비스에 배치되는 것이다. 결실이 없는 출장이 용서될 수 있는 정도의 변명꺼리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하지만 변명꺼리를 만들기란 물건을 파는 것보다 더 피곤한 일이다.

3시간 30분이 걸린다던 목적지는 이미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먼 것만 같았다. 사실 이 놈의 나라에는 모든 것이 지멋대로였기에, 애시당초 소요시간이라는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 이유없이 몇시 몇분발 버스가 없어져 버리는 것보다, 30분 늦게나마 버스가 출발한 것 만도 다행이라고 마중나온 고객이 말했다. 그러니 3시간이 되었든 8시간이 되었든 목적지에만 닿는다면 되는 것이 이 놈의 나라다.

이미 해는 기울기 시작했다.

나에게 배정된 좌석은 낡아 등받이가 뒤로 제쳐져 눕는 것도 앉는 것도 아니었다. 잠을 자고 싶었지만, 몸은 기진할 정도로 피로했고, 버스 안에 마련된 화장실의 틈 사이로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차곡차곡 쌓여 염분처럼 결정화된 묵은 암모니아 냄새가 새어나왔다. 무엇보다도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든 것은 변경에 사는 이민족의 노래였다. 버스의 천장에 매달린 티브이에는 혐오스러울 정도의 상투적인 미소를 띈 여인들이 줄창나게 나와, 한결같은 고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잠시 조는 와중에도 그 소리는 머리 속을 뒤집어 놓았고,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했다. 그러면 화장실 냄새가 왈칵 몰려왔다.

충혈된 눈으로 도로의 주변을 보았다. 도로 양쪽으로는 가로수도 없었고 단지 둘쭉날쭉한 보도블럭과 맨 땅의 옆에 이삼층 짜리 건물들이 한시간 가량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 건물의 일층에는 철물과 채소, 그리고 탁자와 그릇들이 널려있다. 철물점과 청과물상, 식당이라기에는 장난처럼 제품이나 채소, 그릇들이 적었고, 손님은 없었다. 그리고 한시간 내내 그 모양 그 꼴의 상점과 식당들이 반복되고 있어서 지났던 길을 다시 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 였다. 그 식당들이 하루종일 받을 손님이란 한두명 혹은 서너명? 어떤 때는 며칠동안 아무도 없을 지도 몰랐다.

그래서 한두 사람이 한쪽 구석에서 멍하니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먼지가 잔뜩 낀 건물 이삼층의 창들은 깨어지거나, 문짝이 없었는 데, 그 사이로 짙게 깔린 그림자가 보였다.

오래된 그림자는 차갑게 굳어 차라리 푸르딩딩해 보였다. 햇빛이 사나흘 그림자를 두드려 패도 그림자는 녹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집요한 그림자의 망령들을 일거에 사라지게 하려면 티파사를 지배하고 있는 잔혹할 정도로 새파란 하늘과 가혹한 햇빛의 저주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싸구려 건물들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지자 유리창이 깨지고 창틀이 어긋나더니 타일이 떨어져 나가고 시멘트에는 염해와 같은 기포가 떠오르며 그냥 썩는 것이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하수가 도로변으로 길게 파여진 수로에 섞여 시궁창이 되어 흐른다. 때론 그 사이로 쥐가 잽싸게 어디로 숨어드는 모습도 보였다.

버스 안으로 햇빛이 흘러드는 것을 막겠다고 바른 푸른 셀로판지는 창 밖의 풍경을 인광과 같은 희끄무리함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찢어진 셀로판지 사이의 조그만 틈을 통하여 보아야만,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았고, 날이 흐리지 않다는 것을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울퉁불퉁한 보도 위로 자전거가 지나가기도 했다. 자전거에 올라탄 사람은 마치 말을 탄 것처럼 출렁거리며 버스의 뒤를 쫓아왔다. 조금 더 출렁거리면 핸들이 꺽여져 그만 시궁창에 빠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버스는 건물들이 끝나는 지점에서 한 십분 쯤 가더니 들 한가운데 있는 주유소에 섰다.

운전수는 알아듣지 못할 이국의 말로 명령하듯 뭐라고 소리쳤다.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버스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들이 한정없이 넓다는 것을 알았고 아득하게 먼 곳에 산이 분칠한 듯 희미하게 보였다. 늦은 오후의 들 냄새가 확 끼쳐왔다. 한낮의 햇빛에 지친 나무들이 가지를 드리우면서 색깔이 어둠 속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이제 저녁이 다가오는 것 같다.

긴 숨을 쉴 수 있었고 맑은 공기가 펌프질하듯 내 머리 속으로 밀려왔다.

그러자 오줌이 마려웠다. 주유소의 끝에 있는 화장실은 지붕은 없고 담은 배꼽 높이까지 올라와 있어서 풀밭에서 소변을 보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풀밭에 어두운 그림자들이 듬성듬성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석양이 노란 색을 뿌리면서 나무둥치와 건물의 그림자들이 들판으로 쭉쭉 밀려나가는 것이 보였다.

버스를 타러 갔을 때, 출입문 가에 붙어있던 화장실의 오줌통을 비우고 있었다. 버스는 황소처럼 주유소 바닥으로 오줌을 쏟아냈고, 오줌은 묽은 거품을 물고 버스의 주변을 둘러쌓았다. 하는 수없이 바지자락을 거머쥔 채 오줌 위를 절벅절벅 걸어 버스를 올라탔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왔던 길을 다시 이십분이나 역행했고, 다시 페허와 같은 건물들이 늘어선 도로 위에 올라서자 좌회전, 북행했다. 그리고 건물들이 끝났다. 대신 야트막한 언덕 위로 똑같은 나무들이 한없이 이어졌지만 나무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다가오기 시작한 저녁은 서서히 왔다. 어둠이 대지 위로 깔릴수록 버스 안의 노래소리는 더욱 높아졌고 지친 승객들의 고개가 흔들거렸다. 단지 몇몇 사람들만이 소근거렸고 지린내 때문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티파사가 되었든 티파니가 되었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버스는 어디엔가 도착해야 될 시간이었다. 도착만 한다면 어떤 댓가라도 치르고 싶을 정도로 피로했고 지겨웠다.

버스가 속력을 내고 있는 것인지 바퀴로부터 좌석으로 떨려오는 진동은 심했고, 때론 껍질이 벗겨진 아스팔트 위를 버스가 지나는 지 타다닥하는 충격이 몰려오기도 했다. 운전수는 간혹 중앙선을 넘어 앞 차를 추월했으며, 대항차에 경적을 울려댐으로써 지친 승객을 깨우곤 했다.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수에게 다가가 뺨을 철썩 갈겨주고 싶었다. 아니면 제발 티브이의 노래만이라도 꺼달라고 애걸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는 티파사와 티파니의 중간 어디 쯤 이었고, 나는 이방인 일 뿐이었다.

출발한 지 네시간 쯤 되자 아직 빛은 남았지만 밤이 되었다. 어두운 나무 그림자가 하늘 아래를 스쳐 지났고 지나치는 차들도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했다. 차는 어떤 사찰 앞을 지났고 동산의 아트막한 능선 그림자가 또 이어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도착해야 할 곳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간혹 길을 향하여 문을 활짝 열어 논 집들이 보였다.

한자 가량 높이의 기단 위에 초석과 기둥이 튼튼한 잿빛 벽돌집들이었다. 그 집들에는 창이 없었다. 사람들은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탁자를 문가로 밀어놓고 도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 위의 알전구의 빛은 오후의 남은 미미한 빛과 뒤섞이며 문 가를 노랗게 물들였다. 노란 불빛이 드리운 문가에는 속옷 차림의 사내와 허름한 옷을 입은 여자 그리고 문의 안쪽에 할머니가 있었다.

그들은 저녁 밥이 든 그릇을 들고 망연히 도로 쪽을 내다보고 있다.

그들의 얼굴 위에는 아무런 역사가 없었다. 단지 시간이 지나갔으며, 십년 전의 어느 날에도 그들은 오늘과 똑같이 밥그릇 위에 채소를 올린 채 젓가락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과 차들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것이다.

얼굴에 역사가 보이지 않는 만큼, 내일이나 희망같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어슴프레한 전구 빛을 받으며 어둠과 침묵 속에서 빛처럼 밝아 오르기 시작했으며, 아무런 기대감없는 삶의 거친 향기가 나의 눈에 번지기 시작했다.

“차를 세워라!”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차가 스쳐지나도 그들의 시선과 자세는 변치 않은 채 도로를 막연히 보고 있었으며, 그 앞을 또 다른 차가 스쳐지날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멀리 쭈그러들었고, 낮은 촉수의 전등불조차 어둠 속에 타들어갔다.

그들은 티파사나 티파니 어느 곳도 찾지 않았으며, 내일에 대한 희망과 과거에 대한 추억도 없이, 다만 가난한 탁자에 앉아 침묵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땅이 식는 냄새와 함께 저녁을 맞이했다는 것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 거칠고 무덤덤한 세계 속에서 초라한 인간이자 영웅이며, 기대할 것 없는 삶에 대한 무료한 고통 속에서 그림자로 떠오른 예언자의 초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무료함이 나의 가슴에 꽉 들어차기 시작하면서, 잠에 들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가 내리는 지, 버스의 앞 유리에 붉고 푸른 빛이 빗물을 따라 번지고 있었다. 차는 마침내 기착지인 섬 위의 도시로 들어서기 위하여 내륙에서 이어진 높고 길다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결국 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경배하지 못한 채, 티파사와 티파니의 가운데 놓여 있는 길을 따라 온갖 것들이 뒤엉켜 빗 속에 녹아가는 도시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가슴에는 내일은 좀더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주인의 탐욕을 위하여 비싼 값에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을 것이며, 더 가혹한 모멸을 받아들일 자신이 생겨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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