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7 23:40 : 무지개, 24분지 1의 꿈

이 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다. 뭔지 모르지만 한 세상이 끝나가는 야릇한 기분을 느꼈단 말이다.

내가 중국문화에 매료된 것과 전직 대만 대령 출신의 무술교관으로 부터 중국무술을 배우게 된 동기는 아마도 김훈씨의 아버지인 김광주씨의 <사자후>라는 무협소설을 읽어본 것과 형이 읽다 집어던진 삼국지(이것도 김광주씨의 역이었다)를 다 읽어본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역사와 대륙 위에 살아간 사람들을 우리는 <짱꿰>라는 단어로 응결시키고 형편없는 것들로 만들었으며, 짱꿰보다 온건한 단어로 <뙈놈>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몸으로 체둑할 수 있는 중국문화란 <짜장>이고, 좀더 품위있는 사람에게는 <짬뽕> 정도 였다.

정확하게 중학교 2학년의 추석연휴 마지막 날, 내 동생과 나는 무척이나 무료했고 종로를 거닐다가 피카디리 앞에 멈추어섰고, 극장의 간판에는 형이 말한 그 감동적인 영화, <정무문>이 걸려있었다. 동생이 "형! 할 일도 없는 데 정무문이나 볼까? 나 돈도 있어."라고 말했고, 그때 양놈들의 영화도 볼 만 한 것이 없어서 "그래 형이 재밌다고 하니까 한번 볼 까?"하고 극장 문을 조그만 놈들이 겁대가리도 없이 들어섰겠다.

70년대 초반의 영화관이 늘 그랬듯 종로3가 ◇○양복점, ㅊㄹ조명기구, ㅊㅇ전파사 등등의 선전이 나오고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영화 예고편, 애국가, 대한늬우스, 그리고 종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관객들 보고 일어나라고 하더니, 요절한 위대한 무술배우 이소룡의 죽음에 묵념을 올리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어린 나이에도 이것이 뭔짓이냐 하며 묵념을 올리고 난 후, 중국영화란 것이 외팔이 시리즈와 틀릴 것이 뭐있겠느냐 하며 자리에 앉아 오징어를 찢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오징어를 동생과 나는 다 먹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진진의 발차기에 깜짝깜짝 놀라고 작신나게 얻어터지는 일본놈들의 몰골을 향하여 우리는 신나는 박수를 쳤고 짱꿰 띵호아! 이소룡 띵호아!를 부르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동생과 나는 어께에 바람을 잔뜩 넣고 세상을 향하여 눈을 부라려가면서 극장문을 나섰다. 누구 하나 눈 앞에 거슬리는 놈 있으면 내가 무도한 너를 이소룡처럼 작살내하리라 하는 호기를 뱃 속 가득히 넣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어쩌면 그 한편의 영화가 소설 속의 추상적 중국을 보다 더 몽매한 현실로서 조우하게 한 계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곧 이소룡의 영화는 제임스 딘의 영화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당산대형, 용쟁호투, 맹룡과강 그리고 찍다만 영화, 사망유희.

그리고 중국 아니 홍콩영화는 그렇게 흘러갔고, 나는 매화권이나 태극권같은 중국무술을 배웠다. 그것들과 함께 중국의 문화와 역사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이연걸이 나오고 황비홍 시리즈가 나오고 하더니, 이연걸은 더 이상 무술영화를 찍지 않겠다며 자신의 마지막 무술영화로 <무인 곽원갑>을 찍었다.

곽원갑은 실존인물로, 이소룡의 정무문에 나오는 주인공인 진진의 스승이다. 정무문의 시작은 독살당한 곽원갑의 영정 앞에 진진(이소룡)이 나타나는 것에서 시작하며, 이연걸의 무인 곽원갑에서는 곽원갑(이연걸)이 죽는 것에서 끝난다. 전혀 의도되지 아니한 묘한 시작과 결말이다.

무인 곽원갑을 보면서, 드디어 중국의 무술영화가 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으며 저물어가고 있다는 애틋한 감상에 젖어들었는 지도 모른다.

이제 중국의 무술영화는 끝났다.

참고> 霍元甲

2006/03/17 23:40에 旅인...face
2006/03/17 23:40 2006/03/1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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