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kdar’a

<위스크달라>라는 노래가 벌써 한 달이상 어느 골목을 지나거나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릴 때, 위스크달라… 위스크달라… 위스크달라… 마치 LP판의 골이 무너져 바늘이 걷도는 것처럼 떠오르고, 그 다음은? 이라고 머릿 속에 물으면 허밍과 같이 리듬만 남아 흐려져 버리는 것이다.

<위스크달라>는 무엇일까? 최소한 그것은 새의 노래소리만큼 무의미한 것이면서도 명료하게 <글>로 적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새나 개의 소리는 늘 뚜렷하게 적을 수가 없다.

무엇이 이 터키의 노래를 내 머리 속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이 허전하거나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면 울림통에 자갈이 부딪듯 위스크달라를 떠올리게 하는 지?

나에겐 <위스크달라>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머리 속에서 이 노래가 뱅글뱅글 돌면서 막연히 그것이 지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래의 가사에는 위스크달라로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고 되어 있다. 터어키에서 비가 어떤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슬픔일까? 위스크달라가 이스탄불의 인근 항구로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유럽으로 떠나가는 장사아치들이 짐을 부리는 곳이라면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이고, 내가 생각하던 아나톨리아 반도 깊숙히 자리잡은 건조하고 먼지만 날리는 조용한 소읍은 아니었다.

Eartha Kitt는의 노래 속에서 “Uskdar’a는 터어키의 조그만 도시이고, 옛날에는 많은 여인들이 남자 비서를 부렸지요. 오, 이런, 이것이 터어키랍니다!”라고 속삭인 후, 다시 Uskdar’a gider iken… 하고 노래를 부른 후 “그들은 위스크달라로 부터 빗 속에 여행을 했고 그만 사랑에 빠졌답니다. 남자는 빳빳한 칼라가 달린 긴 양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얼굴을 가린 베일 너머로 간절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지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의 입에 캔디를 넣어주었지요. 오, 이러한 터어키라니!” 하고 환호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머리 속에 <위스크달라>를 뱅글뱅글 돌도록 만든 것이 클레오파트라 머리에 불란서 장교복을 입고 따랏따 따따에 맞춰 머리와 어께를 흔들어대던 <만사마> 때문임을 알았다.

그러니 이 노래는 하나의 코미디이며, 이제 위스크달라에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고 헤어짐을 말하는 노란 손수건도 없으며, 수줍은 사랑과 아나톨리아 반도 깊숙히 자리잡았던 나의 <위스크달라>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단지 흑해와 지중해 사이에 가로놓인 보스포러스 해협과 모스크들이 밝은 태양 아래 찬란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든 마르든 그 놈의 <위스크달라>로 가서 달콤한 캔디를 핥아먹으며 보스포러스 너머로 보이는 하얀 집들과 수풀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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