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그렇게 지나가다

어제는 회사에 나갔다. 오후 세시에 강남 모처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그 곳을 들렀다가 다섯시 반에 친구놈들과 약속이 있어서 시간 떼우기를 위하여 강남교보에서 책을 골랐다.

보르헤스 전집을 채우려고 내용도 보지 않고 두권을 사서 짝을 맞춰놓고, 좀 새로운 책을 고르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해보아도 그다지 눈에 띠는 책이 없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어 집어 들면, 집에 읽지 못하고 밀려있는 책들이 허다한 데 꼭 사야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서점에 들어갈 때는 간만에 책 한번 사가자 하고 별렸던 일이 두시간 가까이 있은 끝에 달랑 세권 만 집어들고 나왔다.

시간도 남고 하여 약속장소인 역삼역 근처까지 한번 걸어가 보자 하고 걷기 시작했다. 강남이라 그런지 추운 날씨에도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거리의 풍경도 서울의 다른 거리와 달랐다.

그리고 이십분 쯤 걸어서 약속장소에 도착했는 데, 짐작했듯이 형편없는 음식점이었다.

앞앞이 전자풍로와 냄비가 놓여 있는 샤브샤브집. 아마 남편들 술 덜 먹으라고 마누라들이 고른 집인듯 싶었다. 종이장처럼 대패질한 소고기를 뜨거운 물에 살짝 대처 쏘스에 찍어먹는 이런 방식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배는 불러도 헛헛한 음식이다.

나와 따로 온 아내는 샤브샤브가 좀 맛이 없다고 고추가루를 달라고 했다. 하얼빈에서 온 종업원이 샤브샤브는 그런 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란다. 어처구니 없는 그 말에 친구의 집사람들도 세상에 맛있게 먹으면 되지, 돼먹지도 않는 먹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사장님 좀 보자고 했더니, 여기는사장님이 올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단다. 그리고 고추가루도 나오지 않았다.

계산을 하면서 사장에게 고추가루 좀 달라고 했는 데, 샤브샤브는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더니 사장이라는 작자 또한 샤브샤브는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란다. 샤브샤브에 고추가루를 넣어 먹으면 안된다고 헌법에 나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샤브샤브 하나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 되어 거기를 나왔다.

강남이나 역삼동 쪽에서는 샤브샤브에 고추가루를 넣어 먹지 말찌어다. 그리고 우리에게 준엄한 가르침을 주신 그 대단한 샤브샤브집의 옥호는 고기가 샤르르 녹는다는 <샤르르 샤브샤브> 역삼점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고, 새벽 다섯시에 깨어났다.

다운받은 <애심>을 보았고, 회상58ox을 쓰면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 회상58ox라는 잡글이 언제쯤 어떻게 끝날 것인지가 나로서도 궁금하다.

그리고 내일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동생과 함께 저녁을 했다. 참으로 간만에 학원에 간 아들놈만 빼놓고 사형제의 식구가 모두가 모였다.

먼 타국 땅에서 고생이 되는 지 동생은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하여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이고, 나와 띠동갑인 자형은 염색을 해서 오팔년 개띠라고 해도 무색할 지경인 데 올해 환갑이란다.

세꼬시 집의 종업원이 전에 자신이 일하던 해장국 집에 종종 들르시곤 하던 아버지를 알아보고 “할아버지 아직도 무척 건강하시네요”하는 데, 우리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르는 할아버지란 말이 이상하게 서글프게 들렸다. 늘 내게는 아버지요, 어머니인 것을 누군가 그렇게 부름으로써 당신들께서 늙고 있음을 새롭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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