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21 09:07 : 벌레먹은 하루

아침 6시40분. 지하철이 당도했는 지 많은 사람들이 개찰구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여기는 서울의 끝, 사람들이 변두리인 이 곳으로 이처럼 이른 시간에 몰려든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들의 지치고 무표정한 얼굴은 일을 하러 간다는 것을 강변하고 있다. 그도 개찰구를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무표정했던 만큼 일을 하러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을 하려고 먼거리를 달려가야만 한다는 것이 그만 우스워졌다.

그러니까 진정한 일은 단지 출퇴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혹은 졸기도 하면서... 그가 회사의 자리에 앉기만 하면 해야할 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온갖 소음과 약간 어스름한 조명과 비스듬한 통로를 마주한 채, 그는 고독 속에 빠져들었다.

불과 몇년전 만해도 그는 일에 치어 살았다. 일은 늘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많았고 감당하기에 벅찼다. 그리고 일은 자라나기도 했고, 책상 위에 소복하게 쌓였다가 불현듯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불현듯 알아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자신의 일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몇년이 지나자 주변의 아무도 그가 일을 하지 않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하찮은 것에 매몰되어 일을 한다고 쩔쩔매고, 주위를 혼란 상태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한달동안 회사에 나가지 않더라도 일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것은 동료나 직원들이 자신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단지 일의 정당한 필요성이란 허덕대며 뭔가를 하고, 주변과 갈등에 시달리며, 혼란 속에 깃듬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일깨우고 당당하게 봉급이 적다고 투덜대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포기했고, 이제 너무 고독해져 주변에서 그가 있는 것조차 간혹 알 수 있을 뿐이며, 너무 고독 속으로 내려가 더 이상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부서의 실적은 좋아졌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가 회사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며, 무슨 갈등을 겪고 있는 지, 그리고 자신의 봉급에 얼마만큼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지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일을 적어본다. 거기에는 단지 그런 것이 적혀있을 뿐 이었다.

연수원의 교육과제물 작성
정기검진 신청
사업계획의 틀에 대한 논의

그러니까 조직을 위하여 할 일은 없고, 개인적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강요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가끔 그는 묻는다.

중이 신도들을 위하여 염불을 외우고 말도 되지 않는 설법이나 점을 쳐주거나 채마밭을 일구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다 때려치우고 참선에 매달리는 것이 온당할까?

2005/09/21 09:07에 旅인...face
2005/09/21 09:07 2005/09/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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