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눈, 그 가벼움에 대한 보상

눈이 내린다. 무거운 것들이 추락하면 뭔가는 날아올라야 한다. 가령 가벼운 것들 말이다. 그것들이 올라가 응결되어 무거워지고 다시 떨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거리에는 가벼워 순결했던 눈과 같은 것들이 세속과 먼지에 섞여 입춘의 열기와 타이어 자국에 비벼지는 데, 또 비가 온다. 무거워 가늠할 수 없는 어둠 또한 凍天細雨를 새까맣게 지우며 내려온다.

비워져 더할 나위없이 가벼워진 하늘을 향하여 떠오를 수 있는 것이란 나에겐 없다.

어둠 너머에 있을 텅비어 가는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무거워 거기를 채울 수 없는 나는 일말의 가책을 느낀다. 육신과 살비듬과 콧김 그리고 정기 뿐 아니라, 삶의 집요한 무게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어서 밤이 오는 창 가를 보며, 하루에 갈피를 접고 퇴근한다.

이번 겨울 삼남에 내린 눈은 닭장보다 높은 두께로 쌓였고, 마을을 지키던 노인네들은 더 이상 마실을 못가고 하늘이 쏟아져 내리는 긴 한숨으로 도시로 간 자식들에게 전화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염화칼슘으로 버무려진 도시는 짜디짜기 그지없어 방부처리된 겨울을 보낸다.

이런 밤을 중년의 나이로 건너가기란 힘이 겨워서 인사동에서 비틀, 거리에는 붉은 가로등 사이를 그으며 비와 눈이 내린다. 우산으로 들면 손이 시리고 안쓰면 머리가 젖는다. 그리고 종로에서 미끌. 아아 오뎅국물이 그립다.

낙원동 골목을 채운 멸치다시 냄새를 툭툭 털어가며 지하로 내려간다. 그때 나는 <삶은 무>를 생각한다. 국물에는 오랫동안 삶아 뼈가 녹아버려 씹히기 전에 녹아버릴 무덩어리가 떠다녀야 한다.

승강장에서 삶은 무를 생각하며 지하철에 올랐을 때, 오뎅 한그릇 제대로 사먹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 삶(生)은 無라고 굳이굳이 말했어야만 할까하고 두세정거장 뒤에 내릴 것만 같은 인상을 지닌 어느 놈 앞에 선다.

그리고 정녕 가벼워진 하늘을 채우지 못함은,
사랑하지 못하여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것에 대한 悲歌라고…

너무도 가벼운 그래서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이야기를 씨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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