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날들

술을 한 잔하고 돌아가는 퇴근길은 즐겁지가 않습니다. 어느 놈이 나에게 세상 사는 법이 글러먹었다고 하더군요. 그에 대하여 별로 항변할 마땅한 변명꺼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습죠. 술에 취해서 택시에서 내리면서 동전을 챙기고 뒤뚱거리다가 집 앞에서 자빠졌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냥 밤일 뿐 입니다. 세상은 더럽고, 즐거운 일이라곤 딸애가 중학교를 입학했다는 것이며, 아이는 빕스인가 베니건슨가에서 칼질을 했고, 입학식에도 가보지 못한 저는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으며 세상 사는 법은 물론 제대로 걷는 법조차 알지 못하여 그만 바닥에 쳐박혔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떠나간 애인보다 그 놈의 돈이란 것이 그리웠습니다. 돈만 있다면 왕희지 필체로 꽉꽉 눌러채운 사직서를 놈들의 면전에서 책상이 두쪽이 날 정도로 탕! 하고 집어던진 후, 바바리 코트를 들쳐입고 봄기운이 가득한 찬바람을 맞으며 총총히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란 것이 있다면 얼마나 관대해질 것이며, 또 얼마나 자유로와질 수 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돈이 지닌 무력과 권위란 얼마나 강하고도 견고합니까? 지랄하고 놀아도, 돈 있는 놈은 노는 것도 뭔가 다르다고 할 것이고, 자비로운 나의 웃음 속에서 저들은 날카로운 지폐의 벼려진 날들을 볼 것 입니다. 아아! 돈의 언어를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로또복권 하나 사는 법을 모릅니다. 그러니 세상 사는 법이 글러먹었다는 적들의 외침은 그다지 틀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니, 아내의 얼굴은 피로에 절어 부어 있습니다. 피곤한 아내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합니다. 취미삼아 시작한 과외가 이제는 직업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과외로 번 돈을 자식들의 학원비와 과외비로 탕진한 아내가 지어준 저녁을 먹으면, 어쩐지 밥은 설익은 것 같고, 뜨겁기가 한량없으며, 밥 그릇의 무게는 천근입니다. 나는 늘 혼자 먹습니다. 자식들은 학원에 가 있고, 아내는 과외 중입니다. 섬같은 식탁에 앉아 집에서 먹는 단 한끼의 성찬을 쿨쩍 쿨쩍, 후르룩, 쩝쩝 홀로 대화하며 먹습니다.

무엇이 아내를 피로하게 했으며, 무엇이 새끼들을 야심한 밤중까지 학원에 머물게 했고, 무엇이 나에게 세상 사는 법이 글러먹었다고 했을까요?

어깨가 아픈 이유는 알지 못하는 그 놈의 무엇을 초라한 육체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십견입니까?”
“아직 오십견이라고 하기에는…”

나의 살 속 깊히 침을 쑤셔박으며 한의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하고 시비하듯 묻고 싶었지만 그는 나의 살에 침을 찔러대고 있어서 나는 더 이상 묻지를 못했습니다. 소문에 난 한의사의 침은 효험이 있으려는 지 짜릿짜릿 몹시 뻐근합니다.

어깨의 통증은 피로나 육체적 외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십견이 아니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음악을 켭니다.

음악은 아름답고, 어쩐지 세상의 온갖 구름들이 다 걷혀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잘못되었다거나 내가 세상타는 법을 잘몰랐다던가 하는 것에 대하여 따지는 것을 하루 이틀 정도 미루어 두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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