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31 17:20 : 무지개, 24분지 1의 꿈

어제 관객동원 팔백만이 넘었다는 <왕의 남자>를 보기 위하여, 아내와 꼭 봐야만 겠다는 딸내미를 데리고 극장으로 갔다. 아들은 과외수업이 있어서 그만 빠졌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우동집에서 늦은 점심을 때우며 나눈 영화에 대한 강평

왜 팔백만이 넘었는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조건 시류나 유행에 영합하는 경향이 있다.(나)
당신한테 꼭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왜 보러 가자고 했느냐? 도대체 주제를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면서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다.(마누라)
기생 오라비같이 생긴 이머시기가 멋있다고 애들이 그랬다. 그래서 시대조류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따라 붙었다. 그러나 머가 좋은 지는 모르겠다. 나도 당신들과 동감이다.(딸내미)

골치 아프게 이것 저것 생각할 필요없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 세 아마추어의 결론이다. 배우들의 연기 면에서도 짜릿하게 하는 면이 없다. 광대가 백척간두 죽음을 앞에 두고 연산군을 만나는 그 시점에 조차 긴박감이 불어터진 라면과 같다는 점에서 영화와 연속극의 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팔백만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을 했는 지, 그 요인을 나는 도저히 추론해낼 수 없다.

광고전에서 성공을 했거나, 여성들의 게이 취향에 편승했거나, 아니면 항상 조역에 불과했던 연산군을 주역으로 올렸다는 점일까?

나는 연산군에 대한 재평가를 하고 있었다.

연산군은 우리에게 성도착증적인 폭군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기생년 장녹수와 놀아나다 그것도 심심해서 남색을 해볼 요량으로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광대를 지분거린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은 예교주의적인 사대부들에 대한 폭정일 뿐이며, 그 폭정을 통하여 조정권신들이 향유하고 있던 권력을 왕에게 수렴시키는 절대왕권 수립을 위한 광대극이었을 지도 모른다. 금삼의 피도 단순히 생모인 윤씨에 대한 보복차원이 아니라, 훈구와 사림간의 권력투쟁을 격화시키는 가운데 선비들이 균점하고 있던 권력을 왕권 하에 흡수하려는 노력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의도되지 않았더라도, 훈구대신을 중심으로 한 중종반정이 일어나지 않고 후계구도에 의하여 왕권이 이양되었다면 절대왕권 체제가 구축되었을 것이며, 중종, 인종, 명종, 선조로 이어지는 약체 왕권은 수립되지 않아 임진란을 맞이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분명 연산은 향락에 젖어 있었으며, 두차례의 사화를 통하여 엄청난 피바람을 부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녹수를 궁에 불러들인 점등은 하나의 혁신이며, 선비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개방적이란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구석이 있는 것이다.

참고> 왕의 남자

2006/01/31 17:20에 旅인...face
2006/01/31 17:20 2006/01/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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