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정석

정석이란 것은 늘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인 것이었다. 바둑의 정석, 수학의 정석, 그리고 이 작업의 정석에 이르기까지.

정석(定石)이란 바둑에서 최선(最善)인 것으로 인정되어 온 일정한 수(手)를 말한다. 그러나 장기의 정석은 없다.

바둑은 인류 최고의 게임이며 유희이다. 361개의 반상의 점, 그 위에 돌을 놓는(碁) 놀이다. 한번은 검은 돌, 다음은 흰돌을 놓는다는 가장 단순한 규칙 밖에 없는 이 놀이는 장기와 같은 복잡한 문법이 없다. 그래서 게임의 문법에 제한을 받지 않는 이 게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우의 수가 등장한다. 둘러 쌓이면 죽고, 채권(상대편의 돌)과 부동산(집)을 더 많이 보유한 놈이 이긴다는 자산축적형(Stock)의 자본주의적인 게임이다. 반면 장기는 각 말에 할당된 문법에 입각하여 움직여서 상대편의 왕을 죽임으로써 이기는 과정중심형(Flow) 게임이다. 대부분의 게임이 문법적이라는 점에서 장기를 닮아있는 것이다.

정석이란 문법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경험칙이다. 그래서 정석은 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에 좋을 뿐, 특수한 방식의 공격과 수비 패턴을 맞이하면 정석을 포기하고 기수에 응변해야 한다.

이와 같이 불변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법적인 게임에는 적용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정석은 바둑이라는 것에만 한정적으로 쓰이기에 몹시 소모적인 양태를 지니며, 정석을 고수하다가 완착이나 패착을 둘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수학의 정석으로 넘어가 보자. 지극히 불온한 책이며, 우리나라 수학교육을 망쳐버린 책이다. 고도로 개념적이고 지적인 역사를 지닌 수학(수학은 순수개념을 조작하기 때문에 추상을 그 기본으로 한다)을 우리의 중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들께서는 완벽하게 성적평가과정으로 환원시켜버렸고, 수학의 정석은 이러한 문교현실에 충실하여 수학을 <풀이의 기술>로 전락시킨 주범이다. 그러나 더욱 한심한 것은 내가 이 스테디 셀러를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즉 나는 이 책에 대하여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수학의 정석의 특징은 일단 대학을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는 데 있다.

유리알 유희를 읽으면서 그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문명과 고도의 사유와 문화 자체가 유희 속으로 스며들고 그것이 궁극의 목적이라는 데 있었다. 헤르만 헤세가 무목적과 무욕의 최종적인 경지에 이른 달인을 완전한 규율과 질서 속에 빚어지는 유리알의 유희 속에서 구현했다는 정도로 나는 이 소설을 이해한다.

그러니까 바둑의 정석은 바둑에만 유효하며, 수학의 정석은 고등학교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배우기에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함에도, 정석이 보편타당성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은 몹시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작업의 정석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한마디로 할 짓거리없는 년놈들의 <지랄의 정석>이다.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지랄이라고 할 때, 개봉 16일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하였다는 점에서 이 <지랄의 정석>은 성공한 작품이라고 이해된다. 추가로 수출판권 또한 있다.

21세기가 되면서 등장한 인간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바둑은 한가의 예술이자 게임이며, 수학 또한 장사치 그리스 놈들이 배가 부르다 보니 심심해서 돈 계산을 하다 보니 발달된 것이고, 작업의 정석 또한 배가 부르고 하초 부위의 단백질의 과잉으로 아랫도리에 불끈 힘이 가다 보니 심심하던 차에 작업이나 걸어 보자고 하지만, <백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스토커요, <저기요, 조용한 곳에 가서 차라도 한잔>하면 촌스럽고, 하여 하이테크의 <작업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나왔다는 것 인데…

나 같은 구닥다리 호모 바비엔스(Homo Babiens), 즉 밥 먹어야 하는 인간이 보기에는 루덴스(유희)란 생활의 윤활제로 필요한 것이지만, 유희가 윤리와 도덕의 금을 밟게 될 때, 자가발전적이고 소모성의 <지랄>로 밖에 치부할 수 없다. 아직도 나는 운동 좀 하라고 하면 “따순 밥 걸지게 먹고 기운 빠지게 뭔 운동이냐?”, 애들이 밥을 남기면 “니가 이 밥을 남기는 순간, 아프리카의 어느 동네 아니면, 북한의 동포 어린애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씨부리고 있다

이 작업의 정석을 보면서, 유희에 대한 이해가 이기고 지는 협소하고 천박한 게임의 법칙의 테두리를 벗어나 진정한 사랑의 정석 쯤은 깨우치는 쪽으로 The End를 장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국 이 두 작업 고수들은 작업의 정석을 완성해 나가기 위하여 BMW의 범퍼를 무수히 박살내거나, 앞니가 부러지거나 목에 깁스를 하는 파란만장한 역정을 보내다가 인생 조진다는 쪽으로 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작업의 정석이라고 할 만큼의 고도의 테크닠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고수들 간의 내공이 마주치는 긴장감이나 현란한 절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손예진이나 송일국 같은 인물이 무슨 작업의 정석이 필요하겠는가? 이들이 동원한 작업의 정석 내용을 보면, BMW 범퍼와 내슝과 돈과 무수한 시간을 소모하는 데 있다. 돈과 시간이 나에게 그만큼만 주어진다면, 이 나이에도 나는 작업의 달인이 될 수 있음을 보장한다.

작업의 정석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돈 없고, 시간 없고. 인물 없는 사람, 바로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지상렬과 나같은 사람이다.

철저하게 시간 때우기용인 영화, 작업의 정석.

참고> 작업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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