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텐;Ecaten

ECATEN

이카텐이란 무샤어로 종결, 절망이다.

비아스몬 산맥이 해안을 옹벽으로 막고 내륙을 호위하다 한자락 바다 쪽으로 흘러내린 곳이 이카텐반도이다. 따라서 비아스몬산맥을 넘으면 이카텐이며 강수량 적고 척박한 표토 때문에 교목이 자라지 못하고, 관목류와 잡초만 자라는 불모지다. 비아스몬 산맥으로 부터 강(개울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이 발원하여 이카텐 반도 쪽으로 흘러들지만, 그 개울들은 하천을 이루지 못하고 광야 속으로 스미거나 말라버린다. 그래서 반도의 대지는 돌처럼 굳고, 다시 풍화되어 광야에는 메마른 햇빛과 먼지 그리고 바람소리 밖에 없다.

16세기의 시인 체오스는 “돌과 바람이여! 나는 여기에 와서 절망하노라”라고 노래했다.

반도의 남쪽은 높은 단구로 된 절벽이 다시 사면을 형성하며 우란테 골을 옹위한다. 따라서 해안으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고, 불모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어 사람들은 산에서 약초를 캐거나 소규모의 목축 등으로 살아간다.

우란테골 북쪽으로는 비아스몬 산맥과 광야가 우란테골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남단 해안으로는 높다란 절벽이 가로막는다. 결국 이카덴반도로 들어오기가 힘들지만 나가기조차 만만치 않아 여행자가 지나지 않고 이 땅을 떠난 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인 체오스는 순례자로 산맥을 넘어 광야를 지나 우란테골로 들어와 산등성에 가난에 지친 마을을 보고 더 이상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자 절망을 이야기했으리라.

일설에 따르면 이카텐은 예전의 이름은 네비야라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먼 곳으로 부터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얼마동안 살다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얼마지나지 않아 쇠갑줄의 밖으로 아마포의 붉은 겉옷을 입은 기사들이 쳐들어와 우란테골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이유인즉, 이단들과 피를 섞었으며, 음식을 함께 한 자들로 악마의 영혼을 등에 진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피의 정죄가 끝나자, 기사단은 동쪽으로 떠났다. 비아스몬 산으로 도망쳐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머리에 흙을 뿌리며 이 저주받은 땅의 이름을 이카텐이라고 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기록이 없어 추정할 수 밖에 없으나, 이 곳으로 들어온 이단들은 남유럽의 카타리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동유럽 또는 아르메니아 등 흑해 연안에서 발달한 보고밀파의 영향을 받아 12세기초 부터 라인란트와 남부불란서, 북부이탈리아에서 교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교황청에서는 이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한다고, 이단으로 선포하고 개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이 세력을 확대해나가자 교황청은 제후국들과 연합하여 북부 이탈리아에서 라인강 일대, 그리고 남부 불란서 일대의 이단에 대한 피의 숙청을 감행한다. 이때 동원한 군대를 알비 십자군이라고 한다.  

이러한 숙청의 와중에서 많은 카타리파들이 망명을 했을 것으로 보여지며, 망명 카타리파의 일부가 범선을 타고 보고밀파의 지역인 이 곳으로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붉은 겉옷을 입은 기사들이란, 교황 이노켄타우르스 3세가 보낸 이단을 정죄하기 위한 알비 십자군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의 카타리파는 15세기에 들어와 잔멸되었다고 보고되는 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이단들이 수도원에 숨어들어 연명하고 있는 장면들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