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26 08:01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나는 손문을 잘 모른다. 그만큼 중국의 근 현대사에 대하여 무지할 뿐이다.

비행기가 기착한 廣州(꽝쪼우)는 광동성의 성도이며, 광동성을 약칭 월(월: 유에)이라고 한다. 이 월이라는 단어는 越과 같은 의미를 가지며 이곳은 중국인은 예전에 오월동주에 나오는 월나라 사람의 후예라고 한다.

손문은 광주의 밑에 있는 향산(香山: 지금의 中山)의 빈농의 아들로 1866년에 태어났다. 그는 14살에 하와이로 가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18세에 돌아와 지금의 홍콩대학의 전신인 서의서원(의학교)를 졸업(1892년)한 뒤, 마카오와 광주 등지에서 개업했다.

그는 외과의로 명성을 얻었다고 하는 데, 의사로서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했던 것 같다.

습기와 열기가 가득하리라고 생각했던 그곳 날씨는 공항청사를 벗어나 보니 아직 건조하고 꽤 쌀쌀했다. 차를 타고 광주 시내에 있는 호텔에 든 후 지점 사람과 저녁을 한 후,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순덕의 勒流(러리우)에 있는 업체를 방문한다, 광주에서부터 몇 개의 강을 건너 그 공장으로 갈 때, 佛山이 광주에서 계속 연이어져 있다. 내가 알기로는 불산은 광주의 서남, 순덕은 광주의 동남으로 펼쳐져 있는 위성도시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규모나 경제력 면에서 더 큰 순덕이 불산에 합병되어 순덕구로 전락했다고 한다.

오래 전 불산에 들렀을 때 아직도 황비홍이 나올듯한 분위기를 지닌 오래된 도시였다. 도시를 흐르던 개울가로 버드나무가 기나긴 가지를 드리우고, 붉은 벽돌의 오래된 집들과 습기에 절은 이끼들이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그때 이제야 중국에 온 실감이 난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반면 순덕은 주강 지류들 위에 넓은 터를 잡고 있어서 선박의 입출이 자재로운 가운데, 심천과 동관 등에 더 이상 투자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외국자본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차곡차곡 쌓이고, 너른 들 위로 공장 건물들이 이어지고 평야가 있고 또 공장 건물들이 이어져 강과 평야와 공장과 도로 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주강의 지류 위로 무수한 평저선(동력이 달린 바지선)이 원료를 실어오고 제품을 실어나가고 있었다.

경제적인 원리로 볼 때, 불산이 순덕에 합병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주룽지인지 고위관리가 불산을 들렀을 때, 낡고 비좁은 시 청사에서 관리들은 열심히 일하고 식사 또한 소박한 곳에서 접대를 하였는 데, 순덕을 가보니 시청사의 크기가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접대 또한 외국계 회사의 고위 경영자를 부른다 뭘 어쩐다 하면서 걸지게 벌였다고 한다. 그 중앙정부의 고위층은 북경에 돌아가서 순덕시 관리들과 불산시 관리들을 조사한 후, 순덕시의 관리들은 부패하고 무능하여 더 이상 순덕시를 관리할 능력이 없으므로 불산시가 순덕을 관리하도록 지시했고, 몇년 전인가 순덕이 불산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의 현주소이다. 중국 정부는 효율성에 입각하여 행정구역을 가르고 부패한 공직자가 있다면 제도적으로 이를 척결, 쇄신해 나가기 보다, 감정적, 정리적으로 통치하는 일면이 있는 것이다.

나는 고객들의 공장을 방문하여 올해의 사업현황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을 둘러본다. 설비의 레이아웃은 한국의 공장보다 적절하고 규모 또한 클 뿐 아니라 작업장의 근무태도 또한 엄정하다. 그들의 제품 진열실의 상품은 외관 또한 품위가 있고 가지수가 다양했다.

올해 30%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들의 말을 대변하듯 공장의 옆에 새로운 공장의 골조가 올라가고 있었다.

다음날 심천으로 간다. 나는 이 도시를 혐오한다. 이 곳은 뭔지 모르게 사기스럽고 잡스러울 뿐 아니라 싸가지가 없다는 냄새를 물씬 풍긴다. 중국의 발전된 도시를 방문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보고 “역시 중국이야” 하고 경탄을 하다가 한 구석에서 시스템이 맞물리지 않고 겉돌고 있음을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엉성함을 포개서 저런 웅장함을 만들어냈구나 하며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중국의 큰 도시들은 늘 봉합수술을 하거나 그도 안되면 새 길을 내고 한 곳은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데 바로 그 옆에는 또 다른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 안정되지 않고 표리부동하며 붕괴에 직면한 도시에 사는 인민들 또한 싸가지가 없고 사기스럽다.

심천은 그 전형이다. 대륙의 온갖 잡놈들이 떼돈을 벌어보겠다고 몰려들어 한탕처럼 건물과 공장을 세운 이 곳은 어쩐지 더욱 그렇다.

몇 군데의 거래선을 만나 현황을 이야기 듣고 상호 성장발전을 위한 공생공영의 길을 모색해보자고 한 뒤, 珠海로 향한다.

광주, 순덕, 불산은 珠江이 뱉어낸 뻘 위에 앉아 있으며, 또 주강은 자신이 토해낸 뻘 사이를 비비적거리며 다시 강과 개천, 지류가 되어 흐른다. 흐른다기 보다 멈춰버린 듯 강의 흐름은 완만하다. 그 흐름은 완만하여 큰 비가 내린 후면 배수가 안되는 물들로 어디가 강이고 뭍인지를 알 수 조차 없다. 강들은 손금처럼 주강 삼각주의 바닥을 가르던 많은 강들은 다시 합류하여 虎門을 지나 바다가 되고 홍콩에 이르러서야 남지나해에 합류한다.

나는 호문에서 강을 건넌다. 다리는 한없이 길고 강은 한없이 넓어서 어디쯤에서 바다와 강이 살을 섞는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 관념의 저 밑바닥에서 바다와 강이 마주치며 헐떡이는 조수소리가 쏴아쏴아 하며 몰려왔다. 그러나 다리의 우편으로 보이는 강과 좌편으로 보이는 바다 모두 조용하다. 다리를 건너자 땅인지 섬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대지 위로 도로와 다리와 공장들이 올라서는 데. 다리를 지나며 보는 강들은 물들로 충만하고 폭이 넓어 숲이 우거지면 강변이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 없다. 해가 질 녘이면 서쪽으로 내려앉는 붉은 석양이 비치는 느긋한 반짝임이 대지 이곳 저곳에서 잔잔한 헛기침을 해 댄다.

중산을 지나 주해로 들어설 때, 거의 여섯시가 넘었다.

아침에 심천과 중국의 도시에 대하여 욕을 해댄 것을 아는 냥. 주해는 깔끔하고 단정한 도시이다. 스쳐지나는 길에 보이는 낡은 집들 사이로 골목길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으며 야자수와 나무들이 집과 골목에 어울리게 자라나 있다. 길은 넓고 한적하며 차들도 교통신호를 준수하고 있다.

호텔에 들어서자 창 밖으로 해변과 바다가 보인다. 바다와 해변 위로 밤이 몰려오고 있다.

그 날밤 나는 누구에겐가 전화를 했고, 그와 함께 저녁을 했다.

아침이 되었고 52도 짜리 알코올로 방부 처리된 머리 속은 마치 포맷된 하드디스크처럼 공허했다. 그러나 창 밖에 보이는 아침 해변은 나를 유혹했다.

머리와 육신이 어긋나 비칠거리며 내려간 해변은 파도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잔잔했고, 북회귀선의 밑이지만 아침은 싸늘하고 희뿌연 안개로 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는 상쾌하였다. 해변의 나무 밑에서 노인들이 모여 태극권을 하고 있다.

나는 마카오가 어느 쪽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도무지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마카오의 북단과 대포대에서는 이 곳 주해가 한강 건너편처럼 빤히 보였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하여 길을 건너니 거리의 이름이 “연인들의 길”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나는 어제의 술로 속이 쓰리고 외롭기만 하다.

아침을 먹은 후 두 군데의 거래선을 방문했다. 방문한 한 곳의 거리는 신시가지인 듯 도시 전체가 엄밀하게 정비되어 깨끗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부족했고, 한 곳은 약간 낡고 번잡스러웠지만 사람들이 사는 냄새가 났다. 그 구시가를 지날 때 마카오 북단의 건물과 집들이 보였다.

거래선에서 나와 홍콩으로 가는 배를 탔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배는 출항을 했고 호문 앞 주강이 바다와 합류하는 지점을 가로지른다. 홍콩에 있을 때 자주 놀러 가던 청짜오인듯한 섬을 스쳐 지난다.

이 바다는 오래 전 흑선들이 지나던 바다이며, 때론 해적들이 분탕질을 치던 좁은 해협이었다. 포르투갈인들은 1553년에 물에 젖은 화물을 말리겠노라고 명나라 정부에 애걸복걸, 겨우 마카오에 상륙할 수 있었으며, 간신히 중국 본토와 교역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중국 대륙은 환상의 제국이었으며,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제국이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간신히 중국과 교역을 하며 동잉(東瀛)이라고 불리던 일본으로 가서 총포를 팔고 문물을 전했다. 그리고 1840년에 아편전쟁이 발발한 후, 제국과 아시아는 그 바다와 대지의 일부분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강의 뻘물이 흘러 드는 홍콩 앞바다는 흐릿하고 대륙에서 몰려온 공해로 하늘이 뿌연 2월 22일 오후 6시, 배는 구룡반도와 홍콩섬이 부딪힐 듯 좁은 빅토리아 하버로 들어섰고 좁은 협만으로 스쳐 지나는 가파른 해류로 배는 출렁거렸다.

나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홍콩을 바라보았으며, 6시 10분 하선을 하고 6시 30분쯤 온갖 소란에 휩싸인 거리로 내려선다.

2006/02/26 08:01에 旅인...face
2006/02/26 08:01 2006/02/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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