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8 18:33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어제 타이쭝(台中)에서 열차를 타고 주난(竹南)이라는 곳으로 갔다. 전날에 58도짜리 금문고량주 큰병을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바닥을 비우고 호텔로 돌아가 아침에 벌떡 일어나 세면대에 가보니 사용한 칫솔이 보였다. 분명 TV를 본 기억은 있는 데, 이빨을 닦은 기억은 전혀 없다. 눈동자는 충혈되어 있고 머리는 무겁지는 않으나 독주를 퍼부은 위장은 허하기가 그지 없다. 간신히 조찬으로 죽을 비우고 역으로 갔다.

타이쭝의 역사(驛舍)는 세월 속에 녹아나고 있고, 대만 세번째의 도시임에도 초라하여 아무런 권위도 없어서 대합실의 그늘은 시원하고 편안하기만 했다. 북상하는 열차를 타자, 잠이 쏟아졌고 비몽사몽 간에 열차에서 내렸다. 주난이었다.

우기인데도 아침의 햇빛은 맑고, 시골 소읍이 간직한 부드럽고 정감어린 풍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3층을 넘지 않는 건물들 사이로 코울타르를 먹인 오래된 적산건물들과 함석이 삭아내리는 집들. 비록 도로는 골목처럼 비좁지만 지나는 차들이 드문하여 한적한 거리를 걸어볼 수 있다는 것은 즐겁기까지 했다.

일을 마치고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김치라면>이라고 번역될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김치우동>이라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대만사람들이 김치에 매료된 지는 꽤 되었다고 한다.

그곳을 떠나기 위하여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먼나라의 조그만 소읍의 역에 대한 연혁이 쓰여진 글을 읽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글을 읽어본다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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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남역 준공의 줄거리

죽남의 옛이름은 중항(中港)으로 중화민국 건국 10년전(1902) 8월10일에 신죽과 죽남 간 철로 연장공사가 끝나고 중항역이 설치되어 정식으로 철로여객 및 화물운송 사업을 시작했다. 민국3년(1915) 역사가 좁고 걸치적거려 사용에 적합치 않아 다시 짓고 민국9년(1921년) 지방의 이름에 맞도록 "죽남역"으로 개칭하여 여태까지 쓰고 있다.

죽남역의 위치는 대만철로의 추뉴(지도리와 매듭)로써 민국3년전(1909) 철로 타이쭝선(山線)이 지나고, 민국11년(1923)에 철로 종관선(海線)이 지나서 본역은 마침내 대만 산해선(山海線)의 분기점이자 요충이 되고 만다. 민국20년(1932) 기정(崎頂) 죽남간 복선(雙線) 공사가 준공된 후, 민국21년(1933) 기륭 죽남 사이, 만화(萬華) 타이뻬이 사이를 제외하고 전노선이 복선 운영되고, 죽남지구의 공업과 상업의 번영의 움직임에 따라 죽남역의 지위의 중요성이 다시 두드러졌다.

민국24년(1936) 대만 중부의 대지진으로 재난의 정황이 엄중하여 죽남역 또한 그 피해를 보았기에 재앙이 지난 후 철근골조의 시멘트 건물로 개조했다.

근년에 들어 사회의 부단한 진보와 죽남지구의 상공경제활동의 빠른 성장으로 인구가 밀집하게 되자 마침내 본시 있었던 낡고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나날이 증가하는 여객운송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민국84년(1996) 5월 다시 앞날의 업무를 위하여 60년의 오래된 역사를 없애고 그 부지에 다시 세우는 동시에 철로 산선의 죽남 풍원(豊原) 간 선로 개조와 복선화공사를 계획하고 역내에 전자연쇄열차연락설비를 고쳐 씀으로써 광섬유시그널 중심으로 적절히 안배되었다.

새로운 역사는 본국(대만철로관리국)산해복선공사처에서 죽남지구에 보다 신속 안전 쾌적한 여객운송 업무를 위하여 중화민국의 최신 건축기술기준에 의하여 책임을 지고 설계 감리 건축하였다.

이에 차례로 건물을 세우는 역정과 연혁을 간략하게 서술함으로써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기를 삼가 기록하여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특별히 세운다.

대만철로관리국 국장 진덕패 근기

중화민국 85년 7월 1일

사실 죽남역의 역사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이 비석에 새겨진 이 역의 중요성과 역사적인 준공의 기념치사가 이 죽남역을 보면 하나의 공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시 알 정도로 초라한 역이다. 그러나 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는 나의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이 가볍게 스쳐지남에도 거기에 의미를 매달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죽남이라는 도시가 인구 몇만에 지나지 않는 소읍이며, 텅빈 대합실과 거리를 내다보면 장개석의 뒷통수가 보이는 동상이 있고, 무엇 때문에 먼 이국의 이곳에 와서 나는 쓸데없이 비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며, 이것은 무슨 우연의 장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옆으로 보이는 낡은 집에 대한 매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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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차를 타고 다음 고객을 만나러 타이쭝으로 향했고, 대만이란 곳이 1895년(民前 17년)에서 1945년(민국 33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러니까 죽남역의 역사의 대부분은 일정시대의 일들이며, 역의 옆에 쓰러져가는 건물조차도 그토록 오래된 것이 아닐까 싶다.

타이쭝에 도착하여 시간이 없어 만날 수 없다는 고객의 연락을 받고 남진했던 길을 거꾸로 돌아 타이뻬이로 북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 여섯시 반에 타이뻬이에 도착을 하여 식사를 하고 숙소에 들었다. 이슬비가 내리는 발코니에서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101빌딩(101층)의 절반은 습기와 안개 속에 보이지 않고 희뿌연한 빛만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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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어 깨어나 보니 햇빛이 들다 다시 비가 온 후, 다시 날이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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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지점에 들러 올해의 영업에 대하여 논의를 한 후, 중정공항으로 가서 귀국했다.

2006/01/18 18:33에 旅인...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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