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제 3제 중 2

작년 2월에 쓴 <일본대사의 망언과 한심한 이야기들>을 다시 올려본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일본대사가 23일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독도는 명백한 일본땅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노 대사는 이날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이름) 문제는 한일간에 분명한 시각차가 있다”면서 “하지만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다케시마가 일본땅이다”고 밝혔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다카노 대사의 이 같은 발언은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주한대사로서 한국땅에서 직접 언급한데다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이날 `독도의 날’ 제정 조례안을 제출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1.

한심한 남의 나라 이야기는 이렇다.

1871년에 琉球人들이 대만에 표류해와 죽임을 당함에 일본이 琉球가 일본의 번에 속한 바, 淸 정부에 항의하였으나 답이 없자, 일본은 1874년 대만을 침략한다. 이에 중일간에 협의하되 일군은 대만에서 자진철수, 청은 日金 50만냥 배상으로 종결됨. 이를 근거로 琉球를 속국으로 삼고 마침내 1879년에는 琉球를 日에 합병, 충繩(오키나와)縣으로 함.(대만 三民書局刊 李國祁編著 中國歷史 324쪽)

그 이전까지 오키나와(유구)는 왜에 의하여 강점되어 있기는 하여도, 淸의 영토였다. 그러나 淸의 배상의 의미는 유구인들이 자국민이 아닌 일인이라는 승인에 다름 아니었고, 일본은 이를 근거로 강점 상태의 오키나와를 자국영토화 하였다.

2.

성호사설의 천지문 울릉도편을 보면, 더 한심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이 글은 문장 상 석연치 않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요약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울릉도편은 동해 가운데 어쩌고 저쩌고 개괄을 하다가, 어부 안용복이 국경을 넘어 침범한 일로 왜인이 와서 따질 때, 「지봉유설」에 있는 말과 예조에서 회답한 문건 가운데 ‘귀국은 죽도(竹島)를 경계로 한다’는 말을 가지고 증거로 삼았다.[倭以漁氓安龍福犯越事 來爭 以芝峯類說及禮曺回答有貴界竹島之語爲證]라고 시작한다.

그런데 안용복이 국경을 넘어 침법한 전말은 후술되어 있으되, 다음과 같다.

안용복은 본시 동래부 소속 해군 노잡이로 왜관에 출입이 잦아 일본말에 능숙했다. 숙종 19년(1693년) 여름에 풍랑에 밀려 울릉도로 표류했는 데, 마침 왜선 7척이 와 섬을 다투는 분쟁을 일으켰다. 안용복이 이에 따지자 왜인들이 그를 오랑도(五浪島)로 끌고 가 구금하였다. 그는 도주에게 울릉도, 우산도는 원래 조선에 속한 섬이다. 조선은 가깝고 일본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 무슨 까닭으로 나를 잡아 가두고 돌려 보내지 않는단 말인가? 하고 따지니, 도주는 그를 백기주도(伯耆州島)로 송치한다. 도주가 그를 손님의 예로 대우하며 그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묻자 안용복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침략을 금지하고 이웃 나라끼리 친선을 두텁게 함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도주가 이를 승낙하고 에도막부에 보고하여 약속한 문건을 발급해 주고 돌려보냈다. 그가 장기도(長埼島)에 이르자, 도주가 대마도와 작당하여 문건을 빼앗고 대마도로 압송하였다. 대마도주가 에도막부에 보고했는 데, 막부는 다시 문건을 만들어 울릉, 우산 두 섬을 침략치 못하게 하고 본국으로 호송하게 하였다. 그러나 대마도주는 다시 그 문건을 빼앗고 50일 동안 그를 구금한 후 동래부 왜관으로 압송하였고 거기에서 40일을 억류한 후 동래부로 돌려보낸다.

문제는 여기에서 부터 시작된다. 안용복이 돌아와 이 사실을 호소하였는 데, 동래부사란 놈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국경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2년의 형벌을 내린다.

1695년 여름, 열 받은 그는 사람들을 모아 울릉도로 다시 간다. 그때 또 왜선이 이르러 왜인들을 포박하려 하자 우리는 송동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우연히 여기에 이르렀을 뿐이다 하기에 송도도 우산도에 속한 우리 땅이다 하고 그들을 잡으려 하니 그들이 도망하였다. 안용복은 옥기도(玉岐島)까지 갔다가 백기주도로 가서 전후 사정을 말하고, 조선 정부에서 외교 친선을 목적으로 보냈던 쌀, 면포, 종이 등을 대마도주가 그동안 횡령한 사실을 관백에게 전하겠다 하니 대마도주의 아비가 와서 사죄하고 백기주도 도주와 함께 말하기를 섬을 가지고 다툰 일은 모두 그대의 말대로 하겠다. 만약 약속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중벌을 처할 것이다 라고 했다. 안용복은 음력 8월 양양으로 돌아왔다.

관찰사는 다른 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여 분쟁을 야기시켰다고 장계를 올리는 한편, 공초와 함께 그를 서울로 압송한다. 조정에서는 그의 목을 베려 했다. 그러나 영돈녕부사 윤지완과 영중추부사 남구만이 대마도가 속여온 일은 안용복이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의 죄에 대한 판결은 보류해 두고, 울릉도를 두고 다툰 일에 대해서 분명히 따져 통렬히 물리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남구만은 조정에, ‘상책은 우리 조정에서 에도막부에 특별히 사신을 보내 그 간의 허와 실에 대해 직접 알아보려고 한다고, 대마도에 서신을 보낸다면 대마도에서는 반드시 크게 두려워하며 그 간의 죄를 자백할 것이다. 중책은 동래부를 시켜 대마도에 서신을 보내되, 먼저 안용복이 마음대로 글을 올린 죄상을 말하고 나서, 다음에 대마도에서 죽도를 자기 네 땅이라고 거짓말 한 것과 공문을 탈취한 잘못을 따진 뒤 회답을 기다린다. 하책은 안용복을 죽여 저들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인데, 그리 한다면 저들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협박할 것이다.’라고 건의한다.

어찌된 일인지 조선 정부는 중책을 채택하였고, 대마도주는 이에 스스로 굴복하고 허물을 전 도주에 돌리는 한편, 다시는 울릉도에 왕래하지 않았다.

그 후 안용복은 사형을 면하기는 했으나, 조정에서는 죄를 물어 그를 귀양 보낸다.

성호 이익은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며, 안용복의 영웅됨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나의 심회가 착잡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글은 독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울릉도의 영유권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정의 처리의 졸렬함은 오늘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저(왜인)들은 언제라도 독도가 자기 네 땅이라고 씨부릴 수 있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문제는 저들이 어떻게 씨부리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삼백여년 전, 조정에서는 왜인들이 우리 땅에서 분탕질을 쳐도 수수방관하였다. 그리고 외교분쟁이 두려워 한 영웅을 국익에 반한다고 귀양을 보냈을 뿐 아니라, 양국 간의 중요 영유권 분쟁을 일국의 정부가 외교적 책임이 없는 도지사(대마도주)와 그것도 막후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한 예다. 이와 같은 협상을 통한 외교문서는 정부로서는 책임이 있으나, 막부는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있다고 판단될 때, 번주를 해임함으로써 책임이 면탈될 수 있는 불평등한 외교행위를 그들은 자초한 것이다. 물론 번주와 외교문서를 작성한 지의 여부조차 이 글에서는 명확치 못하다.

3.

다카노 대사는 또 한일문서 공개로 인한 한일협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한국내 여론에 대해 “한일협정 자체가 지금까지 한일간의 강한 관계 유지에 많은 역할을 했다”면서 “재협정을 맺자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다카노의 발언은 망언이 아니라, 아주 교묘히 의도된 씨부림일지도 모른다. 독도가 우리 땅이냐 너희 땅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서 보듯이 제 밥그릇도 챙겨먹지 못하는 것들이 무슨 한일협정 재검토냐 하는 본의를 감싸는 현란한 포장지 쯤에 해당된다.

만약 그렇다면, 다카노를 대표한 일본 정부의 말은 하나도 틀릴 것이 없다.

국회 한일의원연맹 산하 21세기위원회(위원장 송영길)는 25일 여 야 의원이 함께 참여한 성명을 통해 “주한일본대사가 그런 망언을 한 것은 주재국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외교적 결례일 뿐 아니라 일본이 진정으로 한 일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의지가 있는 지 의심케 한다”며 “다카노 대사를 즉각 교체하고 성의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고 한다.

우리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촉구는 그동안 국회에서 서로들 쌈박질하며 의정활동을 해 온 것을 감안할 때, 아주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늘 그래왔기에 새삼스럽지도 않고 진부하기만 하다.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특별법이라는 누더기 법안이 통과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의 의원들의 항의를 바라보면서,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문제, 또 독도 문제에 대해서 저 사람들이(통칭 하여 우리) 뭐라고 말할 자격을 확보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를 약탈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을 수상이 참배한다고 하고, 교과서를 임의 날조하고 있다고 사과하라 고쳐라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자신의 잘못은 반성하지 못하고 묵은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친일문제와 과거사에 우리는 솔직하지 못하다. 친일의 문제는 어느 일개인의 부모나 조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친일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문제를 덮어 놓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 반일을 하고 항일을 외치며 일장기를 태우고 덴노, 수상, 일본대사를 규탄하여도, 영원한 친일의 굴레 속에 갇힐 수 밖에 없다.

친구가 있어 아들을 꼬드겨 집 안의 재물을 훔쳐 서로 갈라 가졌을 때, 그 친구 만 도둑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들 또한 도둑이 되어야 하며, 그 집 안은 도둑놈 자식을 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아픔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아들의 친구를 도둑이라 단죄할 수 없듯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밝혀야만 더러운 오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의 과거에 우리가 침묵하는 만큼, 우리는 전치 몇주의 진단서가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거친 항의도 저들에게 한낱 개거품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들은 또 한차례 우리를 구타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할 것이다. 통석의 념을 금할 수가 없다고…

다시 한 번 이 날의 기사의 한 조각을 감상해보자.

우리 정부는 이날 “조례안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한 주권 침해 행위”라며 즉각적인 폐기를 촉구한 바 있다.

다카노 대사는 그러나 기자 간담회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말고 평화적 방안을 찾아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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