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기행 1- 해후와 자금성

<이 글은 1999.11월에 북경을 방문한 후, 본 것이 없어서 무엇을 보았지 하고 생각하던 중 쓴 글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행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20% 쯤 부족한 글이다. 대신 주역이나 역사, 지리 또는 사회주의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벌써 북경을 갔다온 지 한달이 지났다. 11월의 북경은 안개 속에 휩쌓여 뿌연 그런 도시였다. 장대하지만 퇴락한 건물, 넓다란 거리, 지평은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다. 과연 거기가 중원이었을까?

공항잡설 1

비행기는 십여분을 떴다 가라앉았다하면서 착륙을 지체하고 있다. 한번 가라앉았다면 활주로로 기착을 해야 함에도 비행기는 일몰 후의 북경 하늘을 좌선, 우선, 다시 비상, 하강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착륙. 비행기의 도어를 열고 출구를 향하자 VIP 마중이라는 명패를 찬 사람들이 거의 비행기 안까지 들어올 정도로 서 있다. 특권과 예외, 이것은 후진국의 특성이고 모든 사람이 같을 수가 없다는 의식의 반증이다. 프롤렐타리아여, 빈민, 무권자들이여 단결하라. 공항청사가 이유없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공안들이 비자를 들여다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짖는다. 그리고 이유없이 줄을 선다.

해후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訪來)하면 불역락호(不亦樂乎)아! 반면 친구를 찾아가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환대가 크면 미안해진다.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전에 담배가 그리워 담배를 태운다. 그리고 반가운 사람들을 하나씩 만난다.

자금성

韓·中·日의 건축을 비교한다면 중국과 일본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점이 있으나 한국만은 예외라는 느낌이다. 완벽을 추구하다보면 만날 수 있는 꼼꼼함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여유의 부재가 중국과 일본의 건축물의 한켠 모퉁이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자금성의 방대한 규모 속에서도 추구된 모서리까지의 디테일이 결국 생활 공간 속에 개재되어야 만 하는 여유를 실종케 한 점. 자금성의 어디에서도 한가로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둘러쳐진 궁의 담벼락과 장대한 건물들의 획일화된 추녀들이 위압적으로 눈앞을 가로막는다. 반면에 한국의 성이나 건물들은 어떠한 가? 하늘의 넓이를 추녀 끝으로 재어보는 듯한 여유,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소백산의 연봉들이 구름과 산 내 속으로 아스라이 남해 쪽으로 달려갈 때, 가을 오후의 고즈넉함이 주는 붉은 단조의 떨림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가?

자금성의 넓이가 남북으로 960미터 동서로 750미터라면 크기에 있어 경복궁과 상응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자금성이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은 면적보다는 건물의 장대함. 넓다란 평원 속에 10미터를 넘게 우뚝 서서 대지를 내리누르고 있는 궁의 모습에서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 그리 말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경복궁이나 창경궁, 창덕궁 등을 보면 산자락에 살포시 앉아 있는 형국이요. 광화문을 지나 정무를 보는 정전을 벗어나면 마장토로 들이 덥힌 전각들과 한갓진 정원들이 있어 마음을 편케 하는 반면 자금성은 두터운 돌로 땅이 덥혀있고 건물들이 시선을 위압한다. 건물의 정교함은 단청 하나만 보아도 그렇다. 상량과 기둥, 들보 등을 상감을 한 후 단청을 입힌다던지 목재 재질의 견고함 등과 석재들이 일반 화강암이 아닌 석영으로 된 석질을 사용하여 견고하기가 이를 때가 없으며, 화강암 속에 든 철분이 녹이 슬어 검게 변색됨이 없도록 한 것 등이 그렇다.

자금성은 좌조우사(左祖右社), 오문(五門), 삼조(三朝),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전통적인 궁의 배치를 그대로 본받고 있다. 우리의 궁궐도 여기에 대비해보면 시사점이 있으리라.

즉 천안문의 뒤 좌우로 사직단(社稷壇)과 태묘(太廟)가 자리하고

입조를 하기 위해서는 대청문(大淸門: 현 천안문 광장 전의 前門), 천안문(天安門), 단문(端門), 오문(午門), 태화문(太和門)을 다섯개의 문을 통해야 한다.

조정에 들면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太和殿·中和殿·保和殿) 3조가 있고,

건청문을 분기점으로 임금과 로열 페밀리가 자는 곳(寢), 금궁내원(禁宮內苑)이다.

내원에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乾淸宮·交泰殿·坤寧宮)이 있다.

종묘(宗廟)는 제왕가의 신주를 모신 사당을 뜻하며, 사직(社稷)은 땅의 신(社)과 오곡의 신(稷)을 뜻하며 종사(宗社)가 끊어진다는 것은 왕국이 망함을 뜻하였다.

내원의 궁의 이름을 보면 건청궁의 의미는 건(乾)의 괘덕(卦德)이 자강불식(自强不息)으로 하늘의 덕은 끝이 없다는 뜻이다. 청나라(황실)가 끊임없이 영속하라는 왕권안보적 차원의 이름이며 건이 남성과 용의 상징인 바 황상이 거주하던 궁을 말할 것이며,

곤녕궁의 곤(坤)은 땅이자, 암말의 상징인 바 황후가 거처하던 곳이리라.

교태전은 남녀가 교접하는 상으로 상괘가 여자, 하괘가 남자로 일견 여자가 남자 위에 올라탔으니 흉상이라 할 것이되, 음기는 내려앉고 양기는 오르는 성질이 있다고 하여 여자가 남자 위에 있지 아니하면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 주역에서는 태괘(泰卦)를 생생불식(生生不息)의 가장 좋은 괘로 보았으며, 달로는 정월이다.

반면 남자가 위로 가고 여자가 아래에 있어 정위를 이루는 것 같은 천지비(天地否 : 상건 하곤)는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니, 서로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하늘과 땅이 격절하여 생명이 화육할 수 없는 대흉괘로 보았으니 역(易)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달로는 7월이다.

시간이 없어 자금성을 벗어난다.

북두성의 위를 보면 희미한 자색을 내는 성좌가 있는 바 여기를 자미궁(紫微宮)이라 하며 북두가 모든 별들이 움직이는 중심이라 하여 필시 여기에 옥황상제가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자금성의 紫는 자미궁에서 나왔으며 禁은 금단의 성역임을 지칭할 것이다.

십이소식괘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