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0 13:30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오늘 친구 놈들을 만났습니다. 놈들이 제 블로그에 들어와 봤다는 것입니다. 놈들이 제 블로그를 방문했다는 것은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신호입니다. 자칫 하다간 제 인생의 초라한 부분이 놈들의 마누라를 통해서 우리 집 사람에게 꼬라 바쳐진다거나 해서 하여튼 언론의 자유를 상실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직면한 셈이며, 제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보고서 뭣 때문에 사는 데 영양가 하나도 없는 블로그에 시간 빼앗기고 기운을 축내느냐 하는 재수없는 소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싸가지라곤 하나도 없는 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만 적들에게 제 블로그의 주소가 노출되어 버린 것입니다.

열람 시 주의사항 : 너희들 와서 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와이프에게 이 블로그를 알려주어서 나의행적이 우리 집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여 주기 바람.

그리고 익명이나마 방문한 흔적을 남겨두는 것이 예의이니라!

남은 감기기운으로 땀을 삐질거리며 8시를 넘어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한놈도 없었다. 일흔셋의 나이에 돌아가신 고인을 뵙고, 식은 육개장에 밥을 먹고 있을 때 한놈 두놈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안식년동안 미국에서 탱자탱자 지내다 고인의 위독함에 급거 귀국하여 아버지를 보냈음에도 편안해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보자, 친구들은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우리 학교 다닐 때, 이 자식한테 술 받아 먹은 것 생각하면 우리 이 자식한테 잘해야 돼.>

나를 보며 그 말을 하는 친구에게

<내가 술 사준 적은 있어도 저 놈한테 술 받아 먹은 적은 없는 데... 쩝!>
<야 임마! 잘 생각해 봐. 너 사람이 그러면 안돼.>

오랜 세월 탓에 자신들이 젓가락을 두드려가며 술 먹던 그 나날들 속에 나의 존재가 늘 공백이었음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친구의 아버님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고 1때 처음 놈을 만났을 때, 그 분은 탄광의 갱도를 발파하는 폭파전문가셨다. 초등학교 때 전학을 하두 많이 한 관계(9번)로 친구는 초등학교를 7년동안 다닐 수 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나이가 많다고 했는 데...... 순 꼴통에 완전 고문관으로 제대한 놈의 병역수첩에는 무수한 전출로 전출명령란에 더 이상 칸이 없자 간지가 덧대지고 나머지 전출내역이 쓰여 있을 정도였다. 24번인가 부대전출 경험이 있는 놈에게 이른바 <명예제대>라는 것은 아주 적합한 말이었다. 고문관에겐 군대란 늘 적진이었기에 살아 돌아온 놈을 열렬히 환영했던 적이 있다.

여하튼 놈의 전출이력에 나로서도 간접적으로 나마 일조를 한 바 있으니...

우리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진학을 했을 때, 놈의 부모님께서는 갱도굴착 때문에 사북등을 전전하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화곡동에 3층짜리 건물을 샀다. 3층에는 자식들을 머물게 하고, 일 이층의 월세로 생활을 하게 했는 데, 월세 수입이 한달에 60만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을 입학할 당시 다방의 커피값이 50원, 그 해 겨울 300원이 되었고 대졸초임이 10만원/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세만 지금 돈으로 물경 천만원에 가까웠던 돈이다. 그런데 놈은 딸랑 20만원을 고등학교 다니던 여동생한테 <살림비용>이다 하고 던져준 뒤, 남은 40만원으로 친구 놈들과 니나노집이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신나게 젓가락을 두드려 대면서 탕진했던 셈이다. 쥑일 놈!

놈에게 학교 다닐 때 얻어먹은 것 생각하면 집 한채의 기둥을 몽창 뽑아도 아까울 것 없다는 친구의 입에 발린 말이 그른 점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나의 酒歷은 몹시 길다. 친가에 술을 드시는 분이 없어서 아버지께서 사내는 술을 좀 먹어야 한다며 한잔 두잔 권한 술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맥주 두병을 먹어도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말술까지는 못되어도 막걸리 석되는 마신다는 실력을 쌓았던 나는 대학 1학년 1학기 때에는 단과대 내에서 술 좀 한다는 축에 끼기는 했지만, 정작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고 다닌 위장병은 연속되는 술에 견딜 수 없었고, 술에 취한 흐릿한 정신을 나는 몹시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한달에 두세번 불가피하게 술을 하는 것이 다였고 학년말에 들어서는 카바이트를 듬뿍 찔러넣은 막걸리를 종삼에서 먹고난 후 장에 이상이 생겨 거의 반년동안 술에 입을 대지 않았다.

다시 놈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2학년 때에 친구 놈은 그간의 월세 전용 문제로 아버지께 준엄하게 박살이 난 후, 개털이 되어 과거의 <방석집> 즉, <니나노집> 등에는 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도라무깡으로 만든 선술집의 탁자 위에 감자탕을 올려놓고 김치 한사라 두사라를 추가해 가며 <야! 니들 가진 돈 다 내놔>하고 추렴한 후, 그 돈이 끝나는 데까지 막걸리를 시켜먹는 비참한 지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본 놈들의 주도는 마구잽이로 배운 술, 바로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술 한잔, 담배 한까치를 꼬살라 본 적이 없던 놈들이 어찌 알았는 지 <니나노집>까지 찾아가 탁자 위에 <배추쪼가리>를 떡하니 포개놓고 젓가락이 절단날 정도로 <목포의 눈물>과 <처녀뱃사공>을 불러댔으니... 놈들의 주법이란 첫잔에 <헤롱>이요, 두잔에 <인사 불성>, 석잔에 <완존 나는 개다 뜺냐>식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꼬장들이 어찌나 심하던지 까딱 잘못하면 어깨동무한다는 것이 레슬링의 압록 수준으로 들어가서 냄새나는 트름을 코 앞에서 끄억 해가면서 <너어 그럭케 살믄 안돼. 짜샤! 뭐 뜰븐 것 인냐? 잇슴 해봐 해봐! 읎지?> 하곤 했다. 그래도 정신이 아직 성한 놈이 친구가 집에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챙겨야 할 것 아니냐고 차를 타라 뭐하라 하면 택시 운전사와 시비가 붙기 일쑤고, 결국 <이런 빌어먹을~ 집에 가다 콱 뒈져라!>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는 데, 술취한 개가 어떻게 집에는 돌아갔는 지 아침이면 수업은 꼬박꼬박 들어오곤 했다. 그렇지만 뒷끝이 그렇게 말짱할 이유가 없어서 각자들 시내에 있는 파출소 등에서 <민주경찰>소리를 질렀다가 술 깬 뒤 순사 앞에 <다시는 공무를 집행하시는 데 방해를 않겠습니다>한 후 훈방되거나, <노상방뇨 금지>를 쪼구려 뛰기와 함께 마지막 구호없이 20회 실시한다던지, 무수한 일화들을 장가갈 때까지, 일부는 아직도 전개해왔던 것이다.

놈들이 젓가락을 들고서 술독에서 멱을 감고 세상의 음율을 농락하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느냐 하면 정말로 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발톱에 낀 젊음을 떨어내고 있었는 데, 놈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여자 뒷꽁무니를 쫓아댕겼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구지간에 못할 소리가 없다지만 이런 빌어쳐묵을 소리를 들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청춘공사에 매진해야 할 일학년도 거의 지나가고 있던 그 시절에, 지들끼리 학교 다니고, 지들끼리 술 쳐먹고, 지들끼리 농짓거리를 하며 놀고 있는 젊은 중생이 불쌍하여 여자친구를 사귀면 연애편지질을 통하여 문장력이 생길 뿐 아니라, 세수도 자주하고 목욕도 자주 가기 때문에 피부위생상으로도 양호한 조건을 확보함은 물론 빨래비누를 사용함으로 생기는 부작용 즉 머리가 이유없이 부수수 일어서는 것도 예방하며,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다 보면 자동적으로 술자리가 줄어듬은 물론 술 매너도 좋아진다고 했다. 이러한 이용후생을 극대화 한다는 실학적인 명제를 놓고 이야기해도 효과가 있겠지만,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하여 아가씨의 손금을 본다는 핑계로 그 야들야들한 손을 잡았을 때의 느낌이란... 하고 말했을 때, 녀석들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영화들 봤지? 거기서 연인들이 뽀뽀하잖아... 그때 기분이 으떤 줄 알아? 그리고 나는 기운이 빠지고 혈압이 어쩌구 저쩌구... 했다. 그랬더니 재수없이 한 놈이 <진짜? 너도 키스해 봤어?>하고 물었다. 그러나 사실 그때가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는 데 삼개월씩 걸리던 호랭이와 함께 담배피우던 유신공화국 시절로 나도 영화로나 보았지 경험이 없었다. 숙달된 조교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아~ 짜식! 내가 그걸 어떻게 니들같은 애들에게 야그할 수 있냐? 쪽 팔리게...>라고, 은근 슬쩍 넘어갔다. 그랬더니 자식은 나한테 손가락질을 하며 <짜아식 제법인 데... 여자 뒷꽁무니만 쫓아다니더니만 크크크...>하고 말 한 것이 그만 더운 밥 쳐먹고 할 일이 없어 여자 뒷꽁무니만 드립다 쫓아다닌 것으로 놈들에게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내가 헐렁한 놈들의 야유를 뒤집어 쓰긴 했지만 이야기는 꺼낸 김에 할 수 없이 여학교로 달려가 놈들의 특성을 감안하여 <얌전하고 성격 무던한 여섯명의 여학생>을 부탁했고, 그것도 안심이 안되어 내 친구들이 <여자 한 번 만나보지 못했지만 공부 밖에 모르는 건전한 아이들>임을 강조하면서 이러저러한 사정을 감안해서 인선에 최선을 다해 달라며 점심을 사고, 미팅이 끝난 뒤 근사한 경양식 집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너와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었고 <여자 경험이 없는 애들이라서 첫번 보았을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나보다는 장래가 유망한 청년들>임을 강조했다.

며칠 뒤 미팅이 끝나고 참으로 녀석들의 장래가 짠~하고 미칠 듯이 밝아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당시가 아무리 삼선개헌을 지나 유신헌법이다. 남녀칠세부동석으로 학교 담벼락을 쌓고, 깜장물 들인 교복에 스포츠다 이부가리다 하며 통제된 교육여건이라도 12년을 공납금을 학교에 갖다 꼬라박고, 부모님 등골을 쪽쪽 빨아 등록금을 대학에 쳐 발랐으면, 최소한의 상식 쯤은 건전한 만남의 자리인 거기에서는 통할 줄 알았다. 놈들이 긴장할까봐 <나도 처음에는 떨리더라... 긴장하지마. 커피잔이 막 덜덜 떨리고 그랬어>하고 말해주었다. 여학생들이 오자 번호표를 돌려 짝을 맞춰 주고, 서먹할 것 같아 이러저런 이야기를 한 뒤, <말씀들 나누세요.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잘 부탁드립니다>한 후, 여자친구와 학교 앞의 다방에서 나와 저녁 식사를 한 후 헤어졌다.

그 날밤이 가기 전에 전화가 왔고, <어떻게 그런 애들을 미팅에 끌고 나와 망신을 시킬 수가 있니? 내일부터 챙피해서 학교를 어떻게 가란 말이야>하고 여자친구는 수화기가 빠개지도록 소리를 쳤다. 나는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진정을 시키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여자애 하나가 현장에서 울었고, 그 분위기에 여자애들이 웅성웅성 일어나 나가려는 데, 더 있다가 가라고 왠놈이 손을 잡고 해서 무서워서 여자들이 한동안 공포에 떨다가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부리나케 놈들의 집이나 하숙집에 전화를 해 보니 한놈도 집에 없었다. 분명 놈들은 그 날의 일을 자평하면서 술을 쳐먹고 있을 일이었다.

아침에 학교로 달려간 나는 정작 무슨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했다. 강의가 끝난 후 몇군데를 둘러보니 놈들은 풀이 죽어 한쪽 귀퉁이에서 찌그러져 있었다.

<으떻게 된거냐? 난리 났었다며?>

<난리난 것은 없는데... 여자들이 그냥 가버리더라. 무슨 여자들이 그러나? 소개시켜 주려면 좀 똑바로 해줘야 할 것 아니야? 짜샤!>

<그럼 이야기나 자세히 해봐. 그래야 걔들이 문젠지 니들이 문젠지 알 거 아냐?>

녀석들 중 그래도 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이렇다. 문제의 요점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때론 완전히 한 물 간 놈의 이야기도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다방을 나간 후, 한 녀석이 자신이 깔고 앉았던 뒤호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여자 앞에 내놓았는 데, 바로 당시에 선풍적 인기를 끌던 <쥐포>였다. 그리고 <드세요> 하고 아가씨에게 정중히 권했다는 것이다. 아가씨는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고 놈은 먹기가 불편하여 그런 줄 알고 친절하게 그것을 뜯어서 <이제 먹기 편할 테니까 드세요>하며 아가씨 앞에 놓았다는 것이다. 염병할! 그런데 이 아가씨가 자신의 성의에도 불구하고 피식 웃고는 쥐포를 옆으로 밀치더니, 아니꼽게도 <저는 이런 것 못 먹어요. 불결하잖아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놈은 헷또가 돌아가는 것을 자제하며, 쥐포 한 조각을 들어 여자 눈 앞에 드리밀며 <이게 드럽다구요? 이거 먹는 겁니다...>하고 준엄하게 말한 후, <먹어봐요!>라고 조금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아가씨는 요지부동이여서 <자요!>하고 몇 번 권했더니 비쭉비쭉하던 이놈의 아가씨가 갑자기 울어버렸고, 옆의 여자가 일어나더니 몰상식하게도 도끼눈으로 자기를 째려보면서 <얘들아! 가자!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하고 자리를 떴다면서 <그 여자 그런 눈 가지고 시집이나 가겠냐?>고 했다. 한 녀석은 지말대로 라면 아주 말이 잘 통해서 그 아가씨도 자신한테 호감을 느낀 것 같은 데... 옆의 아가씨들과 부화뇌동 달아나는 것 같아 가지 말라고 덥썩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아주 잘들 놀았다는 이야기인 셈인데...

<넌 왜 쥐포를 사가지고 가서 말썽이냐?>

<임마! 술집 아가씨들 한테 갖다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 데... 그래서 좀 잘 보일려고 사갔다. 왜?>

순간 아찔했다. 니나노집에 한번도 가 본 경험은 없지만 젓가락과 쥐포와는 궁합이 찰떡일 것 같았고, 사실 여대생들이 쥐포를 씹으며 히히덕거리며 도시를 활보하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던 풍경이었기에 놈의 생각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놈들에게 여자를 이해시키기란 원시부족에게 양변기의 편리함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몇배나 지난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으래 잘났다! 너희들의 행동이 시쳇말로 너무 박력이 있었다고 하자. 그래서 아가씨들은 놀랐고 나는 한마디로 개떡이 되버린거다. 두 유 언더스텐드?>

<시방 니가 문지방에 뭐 낑기는 소리를 하고 있는 가 본데... 오냐 너도 잘났다.>

<뭐 낑기기는... 이 짜식들아! 언 놈이 앞주머니 불알 옆에 쑤셔박았던 먹을 것을 니들한테 먹으라고 하면 먹겠냐?>

<나 같으면 먹는다.>

<그게 아니라... 엉덩이에 깔고 앉았던 쥐포를 생면부지의 아가씨에게 질겅질겅 씹으라면 얼싸 좋다고 씹겠느냐고...? 니가 아가씨라고 생각해 봐! 유식한 말로 역지사지! 씹겠냐? 여자란, 아니 처녀란 내슝에 죽고 살고, 자존심에 살고 죽는다는 것은 육법전서에도 나와! 이 무식한 짜식들아!>

<아쭈! 여자 뒷꽁무니 쫌 쫓아다녔다고 저게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그래 뵈는 게 없다. 니들은 여자들이 남자가 없어서 환장한 족속들이라고 생각하는 가 본 데... 그거이 아니란 말씀이야. 세상에 반은 남자고, 서서 일보는 이 자식들 중에는 여자 꼬시는 것을 취미로 알고 이 여자 저 여자 찝쩍대는 놈들이 있는 데, 이상하게도 여자들은 이른바 날라리라는 이 곤충들을 좋아한단 말이야.>

<니들이 차지할 아리따운 아가씨를 날라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신사로써의 예의와 품위를 갖추고 여자를 확 휘어잡아야 한단 말이야.>

그리고 나서 한동안 이야기를 한 후 <니가 다시 한번 여자들 소개시켜주면 잘 할 자신있다>라고 했고 나는 또 다른 학교를 찾아가 미팅을 주선한 후, 다시 놈들에게 미팅을 주선하면 이름을 갈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놈들의 처량한 꼬라지가 보기 싫어 2학년으로 올라간 후 한번 더 미팅을 주선했고, 혹시나 하고 여자를 소개해주고 역시나로 나에게 보답하는 놈들의 은혜에 머리털을 쥐어 뜯으며 <니들은 그렇게 살던지, 아니면 각자 구생을 도모하라>고 여자 소개를 끊었다. 결국 녀석들은 여자들 손목 한 번 못잡아 보고 졸업을 했다.

사실 이렇게 말했지만 놈들은 사회에 나가서 정신들을 차렸는 지 아니면 자연의 섭리인지 대충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이십년이 넘도록 집사람들끼리도 서로 만나가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이 이야기가 새 나갈 경우 놈들의 가장으로서의 권위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내가 <여자 뒤꽁무니 만 쫓아다녔다>는 것에 대하여 변명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일년에 몇번씩 동부인을 하고 만나던 어느 날, 친구 녀석이 술 취한 김에 <저 놈이 옛날에 공부는 안하고 여자 꽁무니만 따라 다니고, 여자 친구가 많았다는 거 모르죠?>라고 마누라에게 씨부린 것이다. 그러자 마누라는 <이 양반이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다고요? 말도 안되는 소리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말을 잘라버린 것이다. 딴 여자 같으면 귀를 쫑긋 세우고 <그래서요?>하고 달려들 이야기를 존경하옵는 나의 어부인께서 잘라버린 것은 아마 나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는 무엇을 설명하는 데 <성악설>의 논리를 선호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극단적으로 해석하자면... 등등을. 그러나 정작 사물(인간도 포함하여)과 사건을 받아들이는 데는 <성선설>적인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잘 믿을 뿐 아니라, 좋은 쪽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남의 빚보증 서는 데 제격이며, 남을 실망시키기 보다는 남에게 배신을 당하는 쪽을 택하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사귀는 데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하는 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말을 종합해 볼 때, <당신이 여자 뒷꽁무니를 쫓아다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마누라는 단언해 버렸고, 사실 그것이 내겐 진실인 셈이다.

내가 뭔말을 하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 잘 모르겠으니까 앞으로 쭉쭉 돌아가 친구 놈의 24회에 걸친 전출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친구 놈은 고등학교 때 처음 봤을 때 부터 고문관이란 것은 알았다. 교련시간에 <아프로잇 까 >하면 남들은 오른 발에 왼손이 올라가는 데 놈은 오른 발과 오른 손이 함께 올라가는 고문관 증후군을 갖고 있었다. 남들은 <좌로 도라잇 까><뒤로 도라잇 까>에 발맞춰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 놈은 따로 운동장의 한 쪽 구석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여전히 왼발과 왼손, 오른발과 오른손의 기묘한 걸음걸이에서 탈출할 길이 없어 심심한 교련 선생의 몽둥이를 맞고 있었다. 내가 볼 때 군대 징집면제를 받아야 될 놈은 그 놈이었고 놈이 군대에 가지 않으면 국방예산이 상당히 절감될 것은 물론 그 놈 한 놈 때문에 벌어지는 소대, 중대 단위의 기합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감은 적중한 셈이다.

놈은 입대를 연기하고 연기한 후 석사학위를 받은 후 군대로 갔다. 천성적으로 고문관 증후군을 지닌 놈이 26살의 나이로 갔으니 분명 고문관 플러스 알파의 자질을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 고문관이 무서운 이유는 항상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다는 데에도 있다.

놈이 휴가를 나올 즈음에 입사를 한 지 오개월 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 신용카드라는 것이 처음 나왔고 그때만 해도 식사를 한 후 카드를 카운터에 제시하면 <이것이 무엇이지요?>라고 하거나 <꼴란 삼만원 어치 드시고 카드 주시면 저희는 어떡합니까?>하며 신용불량자 명단이 들은 책자에서 카드번호가 나오는 지를 한동안(대충 3~4분 걸림) 들여다 보거나, 남들 현금계산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한 후 수동카드기계를 찍거덕 눌러 계산을 하곤 했다. 그래서 카드는 대충 집에 놓아 두거나 카드대출이 필요할 때나 사용하곤 했다.

그런 어느 일요일 저녁 9시에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라고 했고, 아주 불길한 느낌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통 속에서 댓자곳자 <짜식아 나다. 나와라!>했고, <실례지만 누구신지?>하자 <이 새끼가~>할 때야 나는 불길함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에이~ 어떤 새끼가 통행금지를 풀어서 군바리 짜식이 일요일 오밤중에 민간인에게 술 쳐먹자고 오라가라 하는 거야?>하며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보니 호주머니 속에 돈이 달랑거렸고 그 놈의 씨잘 때 없는 카드를 주머니 안에 끼워넣고 신촌으로 나갔다. 놈 뿐 아니라 상기의 친구놈 증 한놈과 어깨동무를 하고 절반 쯤 꼻은 채 휘청거리는 놈을 만날 수 있었다. 돈이 달랑거리다 보니 카드를 받을 것 같은 제법 근사한 집으로 놈을 데려가 고기를 굽고 소주를 마신 후 카드로 계산을 마쳤다. 이미 자정은 넘었고 다음 날의 보고서 작성 때문에 어떻게 줄행랑을 지면 잘 쳤다고 소문이 날까 하고 고민할 때, <야! 임마 오늘은 밤새는 거야. 너 취직해서 돈 많이 버는 것 철책에 있으면 대남방송에도 나오드라.><나 돈없어><얌마! 너 카드 있잖아. 군바리라고 아주 우습게 보는 데... 카드로 짝짝 긁으면 된다는 것, 나도 다 알아. 어디 여자있는 곳 가자 으응?><아쭈 놀고 있네! 꼴에 밝히기는?>

<통행금지만 있으면, 야통위반으로 이 새끼 구로동 헌병대 지하 깜방 신센 데, 나 이거 완전히 똥밟고 날 밤이네...>하면서도 놈을 끌고 룸이 있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카드가 되냐고 물어대고 있었다.

간신히 한 곳을 찾아 들어가자 웨이터를 붙들고 <군바리도 양주 쫌 먹어보자! 양주 두병하고 아가씨, 아라찌? 임마>하더니, 아가씨가 나올 때 쯤에는 소파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남은 친구가 <미안하다. 일요일 저녁이라 너한테 전화를 안할려고 했는 데, 저 새끼가 곧 죽어도 너를 봐야 겠다고 하길래><괜찮아. 저 놈을 한 두번 겪었냐. 복학하고 공부하려니까 죽을 맛이지?>하면서 우리는 조용히 술잔을 비웠고 아가씨들은 옆에서 가만히 술이나 따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자고 있는 놈을 깨워 술값을 계산하고 나가려고 하니까 놈은 술값이 왜이리 비싸냐고 길길이 날뛰었고 나의 한달 봉급은 카드전표에 파란글씨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친구라고 놈을 도닥거리며 술집에서 끌고 나와 집으로 가려는 데, 녀석은 잠자느라고 술을 못먹었으니까 또 다른 술집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이미 세시가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놈은 신촌 로타리에 있는 싸롱에 불이 켜져 있다면서 그곳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놈의 그 집요한 고집에 분통이 터졌고 술집으로 들어가던 놈을 그만 길바닥으로 집어던졌던 것이다. 놈은 한참 날라갔던 것 같다. 로타리의 귀퉁이에 있는 보도의 폭은 대각선으로 3미터 정도 되었는 데 놈은 보도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날라갔고, 그 광경을 보던 친구는 <억!>하고 소리쳤고 놈은 나가 떨어진 보도블럭 위에서 한동안 꼼짝 않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혹시 병원 전화번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면서 살금살금 놈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꼼짝 않던 놈이 벌떡 일어서더니 <죽은 줄 알았지?>하고 말했다. 그러더니 대뜸 얼굴을 험상궂게 찌그러뜨리면서 <씨팔! 안먹으면 되지 왜 집어던지고 난리야? 새끼야. 다음에 휴가 나오면 전화하나 봐라>하더니 그만 혼자 택시를 타고 떠나버렸다. 나는 놀란 친구에게 몇번이나 미안하다고 했고, 녀석은 이렇게 나마 끝났으니 다행이라며 떠났다.

몇개월 뒤에 친구 놈들 중 하나가 놈이 <수도육군통합병원>에서 세차례에 걸친 성형수술을 받았고 얼마 전에 원대복귀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 입원했냐고 물었고 거꾸로 짚어보니 나와 헤어진 그 날 저녁에 놈은 학교 앞에서 선배 조교들과 술을 마시고 도로를 무단횡단 질주하다가 그만 트럭에 들이받혀 휴가를 무려 7일이나 남겨 논 채로 통합병원으로 즉시 후송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왜 연락을 안했냐고 했더니 놈이 나를 보면 무척 챙피하고 미안하니까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내상은 별 것이 아닌 데, 하악골이 조각이 났고 그러다 보니 턱을 맞추고 안면부위를 전반적으로 교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그 놈 얼굴이 변했겠네? 돈주고도 못하는 성형수술을 세번씩이나 받고... 그 못생긴 얼굴을 확 개비했겠는 데?>하고 말했다.

말년 휴가를 나온 녀석을 보았을 때, 나는 대한민국 수도육군통합병원의 의료수준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놈은 예전과 똑같이,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그 모양, 그 꼴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놈의 앞에서 <아이 대충 고치지 이렇게 완벽하게 고친 것은 무슨 심뽀냐? 국방부나 통합병원이나 고지식하기는...이래 가지고서야 국토방위가 원활하게 이루어 지겠냐고...>라며 울분을 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놈의 고문관 증후군에 더하여 늙은 나이, 첫 휴가 때의 즉시 후송, 삼차에 걸친 수술은 연대인사계의 입장에서 볼 때, 고문관 플러스 걸어다니는 크레무아 정도였고, 볼 것없이 타부대로 전출하는 것이 연대병력을 안전하게 보전하는 길이라는 판단에서 전출에 전출을 거듭한 것이다. 그러니까 녀석의 24번의 전출은 병원에서 자대복귀한 이후 잔여복무기간으로 나누어 볼 때 약 20일에 해당되는 기간으로 사단의 전출명령을 접수하는 데 걸리는 최단기간과 일치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상병 아무개는 공공년 공공월 공공일 부로 전출을 명받았습니다>류의 전출신고와 전입신고를 하다가 군대생활을 종친 셈인데, 이 귀하신 몸에 투여된 국방예산을 계산해보면 성형수술 세번, 전출에 소요된 기름값, 전출명령서를 조속히 처리하기 위한 행정병의 노고와 <어떤 자식이 이따위 자식을 나한테 보낸거야>하면서 PX에서 중대장이 소모한 소주값, 부대간의 알력에 따른 국방전력의 손실 등을 감안할 때 애시당초 <징집면제>가 가장 현명했던 것이다.

그래도 놈은 멀쩡히 살아서 우리들 앞에 돌아왔고, 얌전히 지낼 줄 알았더니 예전 그 꼴로 꼬장을 피우며 술을 마셨다. 박사학위를 따러 미국으로 가는 놈을 <그따위로 술 쳐먹다가는 박사학위고 뭐고 간에 추방되니까 정신 똑똑이 차려. 우리가 너만 보면 자식새끼 길거리에 내논 듯 불안하기만 하다>하고 전송한 후, 쫓겨 돌아오지 않고 몇년 후에 박사님으로 짠~ 나타났는 데 놈만 보면 <네 놈이 박사라면 나는 진짜루 도사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들은 놈이 미국으로 떠나던 그 때쯤 결혼을 했고 거의 같은 나이의 자식들을 낳고 지나간 날들의 치졸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서로 결합했고 서로의 기억을 뭉개가면서 거의 삼십년 가까이 지내온 셈이다. 놈들은 그래뵈도 박사고 전문경영인 사장이며 국장급인 데 나는 꼴란 회사의 부장이다. 그래도 아는 지 모르는 지 놈들이 보기에는 나는 예전에 <여자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가장 폼났던 대학 생활을 보낸 친구>인 셈이다.

그러나 놈들은 여자들의 뒷꽁무니를 쫓아다니기 위해서 편지를 내가 얼마나 많이 쓰고 나름대로 배려했으며 여자친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했는 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축적된 노하우가 세상의 아내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며, 아가씨와 아줌마는 별개의 인종이란 것을 모른다. 그것은 놈들이 한번도 진정한 아가씨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녀석들에게 아내란 어머니를 빼놓고 세상의 모든 여자이며 추억의 출발점이라는 것이 때론 나에게는 부럽기도 하다.

아! 또 아버님을 뵈러 가야겠다......

2005/06/10 13:30에 旅인...face
2005/06/10 13:30 2005/06/10 13:30
─ tag  ,
Trackback URL : http://yeeryu.com/trackback/524
◀ open adayof... Homo-Babiens ▶▶ close thedayof... Homo-Babiens ◀